2012.03.04 01:21
이 글은 일과건강 2008년 11월호 [노동일기] 기사 입니다. 글의 필자는 금속노조 인천지부 콜트악기지회장 방종운 님이며 저작권은 일과건강에 있습니다. 기사와 사진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와 필자를 명기하셔야 합니다.
11월 25일. 등촌동 콜텍 본사 점거노성에 들어갔던 콜트 콜텍 노동자들이 6시간만에 전원 연행되었다.
길고 긴 싸움인 것 같았는데 벌써 2년이 돼간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면서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도 통하지 않는다. 흥국생명도 행정소송에서 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행정소송에서 졌다고 포기할 수 있는가 위장폐업이라는 것을 꼭 밝히리라 다짐한다.
할 일 많다 해도 섭섭한 심정
10월 15일 콜텍 김길봉 조직부장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방지회장님! 이인근 지회장이 철탑 고공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성산대교와 양화대교 중간에 망원 주차장 철탑입니다.”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갔더니 기자회견이 끝나고 난 후였다. 콜텍-하이텍 지회장 두 분이 올라간 자리를 보는데 왠지 눈이 따갑다. 마치 너는 왜 안 올라갔느냐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겁다. 딱 부러지게 말하지 않고 “항상 뭐가 있을 것”이라며 여운을 남긴 소리가?고공농성으로 밝혀졌다. 15400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철탑을 결정한 것을 우리도 몰랐다는 콜텍 조합원들 소리도 들린다. 새벽 1시에 차를 타고 와서 3시에 이슬내린 철탑을 올라갔다는 소리를 들었다. 무엇이 두 지회장을 저렇게 하게끔 만들었는가? 둘이 올라가서 먹고 자는 문제, 생리현상 처리하는 문제도 만만치 않을 텐데…
본사 점거농성이 아니고 왜 이곳이냐는 나의 말에 대충지부 김기덕 부지부장이 여의도에서 보이고 하이텍 박천수 집이 서빙고 신동아 아파트이고 등촌동 서울콜텍과 방배 박영호 집을 상대로 잡은 것이라는 말하였다. “그래도 그렇지, 나에게 알려 주지 않는 것이 뭣 내 섭섭하다.”고 했다. 김 부지장은 “보안을 유지해야 될 상황”이라는 말로 얼버무리면 “고공농성에는 안 올라갔지만 방지회장이 밑에서도 해야 할일은 많으니 그것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화도 났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라 오직 위로 올라간 두 지회장의 안부가 걱정이다. 열 받은 조합원들이 등촌동 서울콜텍 항의 집회 및 서울방배 사장 집에서 노숙투쟁을 하는 날 박영호 아내와 아들이 성경책을 끼고 노숙농성을 하는 조합원을 피해 불이 나게 도망가는 모습을 보았다. 왜 저렇게 사는 줄 모르겠다.
사장 집에 들어가 문에다 도배를 해놓고 락카로 뿌린다. 정성희 사장 처는 일본 렉서스 차를 타고 다닌다. 그 차와 사장 아들 차에 사장 얼굴이 보이는 선전지로 도배를 해놓았다. 이렇게 해결할 문제가 아니지만 법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갑갑하기만 했다. 투쟁 중에서도 비정규직 사업장과 장투 사업장은 보이지 않는 연대를 한다.
창피한 짓을 왜 하누
동병상련의 마음일까? 20일 4시 기륭집회에 갔다. 집회 중에 권명희 조합원의 가족이 엄마 소원이라며 이모들이 꼭 복직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말을 하고 남편이 항의 표시로 쇠문을 오함마로 두들기는데 닫힌 문이 열렸다. 안은 구사대와 용역들 그리고 전경들이 들이 차 있었다. 집회를 하면 아시바로 10미터 철탑을 세우고 김소연 분회장과 이성규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이 그 위로 올라갔다.
이 행동에 전경들이 집회대오를 밀어내자 일부가 고립된 상황 속에 안에 갇힌 조합원들과 함께 투쟁하였다. 숫자에서 우세했다고 생각했는지 구사대, 용역들이 나왔다. 철탑을 흔들며 동지들을 안으로 끌고 당기며 두들겨 팼다. 밀리고 고립된 투쟁 속에 MBC기자들이 서치라이트와 카메라들 들이대자 구사대와 용역들은 얼굴을 가리고 숨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저렇게 창피한 것을 왜 하는가 새벽이 다가오면서 철탑은 지켜지고 소강상태가 되었다. 예술인들이 ‘콜트-콜텍 기타노동자에게 삶의 노래를’이란 공연을 청계천에서 하기로 했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왔다.
한겨레신문에 기사가 나와서 그런지 시사투나잇도 취재하느라 같이 있었다. 콜트 기타가 예술인이면 꼭 가지고 있는 기타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런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가 이렇게 고통을 받는다는 소리를 듣고 소희, 연영석, 위기의 삼촌들 많은 분들이 출연료를 받지 않고 공연을 해주었다. 이날은 투쟁을 빡세게 해온 콜텍에게 왠지 미안함이 있었는데 오래간만에 콜트·콜텍이 하나가 된 것 같았다.
화가 난다! 고공 농성에 단식이라니
공연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기륭이 침탈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소연 분회장과 콜트-콜텍 문화제에서 시를 낭송하기로 한 송경동 시인이 끌려갔다는 소식에 걱정이 태산 같았다. 24일에는 콜텍, 하이텍 지회장이 또 속을 뒤집어 놓았다. 밑에 있는 동지들의 마음도 생각해주지 않고 오후3시, 서울콜텍에서 집회를 열고 오후7시에 단식 결단식을 한다는 것이다. 화가 난다. 고공농성을 하는 것만 해도 힘이 드는데 거기에 단식까지 해야 하는가?
정말 화가 났다. 오후 3시 집회에서?서울콜텍에 항의서한을 주려고 했는데 그 안을 전경이 막고 서 있었다. 악질자본 박영호가 저렇게 고공에서 단식까지 하는데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것 때문인지 힘들게 지나와서인지 조합원이 달려가 정문 유리창을 깨고, 소화기를 뿌려댔다. 마지막 투쟁발언을 나보고 하라고 해 하였지만 무슨 내용을 했는지 모르겠다. 오후 7시. 어둠이 깔린 한강 고수부지 주변 한쪽으로는 낭만을 찾아 가족들과 대화를 나눈다. 철탑 밑에서 집회를 하는 사람들도 추워서 떨고 있는데 저 철탑 위는 얼마나 추울까? 그런데 단식 결단식이라니…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현재 지부간의 의견차이로 콜트-콜텍 대책위는 가동되지 않아 콜트·콜텍·하이텍 3사 공동투쟁을 벌이자고 했다. 하지만 인천지부는 콜트 투쟁을 장기전으로 본다며 끝장 투쟁은 거리를 두고 싶지만 콜텍·하이텍 대책위에서 결정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따르겠다는 선에서 콜트는 정리되었다. 하지만 고공농성에 단식은 너무한 처사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섭섭한 마음을 두고 돌아왔다.
11월 4일. 등촌동 서울콜텍에 사장을 잡아 놨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달려갔다. 하지만 투쟁이 벌어지는 곳곳에서 전경들이 사장을 비호하며 노동자를 탄압했다. 그 과정에 뒷문으로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는 사장을 보고 쫓아가서 항의하려는데 경찰이 막아서며 사장을 빼냈다. 사장은 과장 차를 타고 꽁지가 빠지게 도망갔다.
망원동 한강시민공원 송전탑에 올라간 콜텍 하이텍 지회장. 누가 이들을 여기까지 올라가게 했나?
ⓒ ojsfile.ohmynews.com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매주 화요일, 목요일 철탑고공농성장에서 문화제를 한다는 대책위 결정이 있었지만 현재 상황으로 문화제 참석 인원들이 이곳에 다 모였다. 동지애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데 또 소식이 왔다. 대우자동차판매가 점거농성에 들어갔는데 용역 300명이 와 있고 경찰과 대치중이라는 소식에 그곳으로 달려갔다. 며칠간의 대립 속에서 안에 있는 동지들에게 단전단수와 음식을 들여가지 못하게 하며 쌍욕을 하는 용역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며 연실 찍고 있었다. 경찰들 묵인 하에 사진을 찍는 용역이 경찰이다. 11월 6일 민노당 홍희덕 의원이 오면서 음식과 물품이 들어가고 대우자판 김진교 지회장이 나와 연설을 하였다.
기독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 등 4대 종단 교직자들로 구성된 인천지역 종교인대화모임 주최로 ‘콜트악기 해고자 겨울나기를 위한 음악회’가 오후7시 부평구청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11월 5일 대우자판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이 있었다. 노동계가 아닌 종교계에서 우리에게 힘을 주신다는 데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대우자판 집중으로 참여 여부는 기대를 안했지만 지역에서 이렇게 많은 님들이 오실 줄 몰랐다. 천주교인천교구 김일회 신부님의 인사말로 시작한 음악회는 김정식님, 생명평화기독연대노래패·박준님, 최은식 신부님, 연화원 수화사랑합창단, 이산하님, 소리지기, 철의노동자, 박향미님 등 풍성한 음악공연으로 이어졌다.
감동!
힘을 받네요.
콜트악기 투쟁 상영될 때
옆자리에서 원불교인께서 눈물을 닦는 것이 어둠 속에서 들려오네요.
그렇구나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구나
소리지기 한 말이 가슴에 남네요
인간답게 살기 위해 노동자 투쟁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에 지지한다는 말,
정말 고맙습니다.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자본은 따라하기도 빠르네
11월 8일, 11월 9일 철탑에서 이인근 지회장에게 연락이 왔다. 건강을 묻는 물음에 노동자 대회 전에 전노협이라는 일본 노동단체가 오는데 콜트 최대 바이어 아이바네즈의 설명을 하고 부탁할 것을 부탁하라고 해서 갔었다. 노동자 대회 참석을 위해 약식집회로 이어진 전노협 위원장의 “두 지회장이 왜 철탑위로 올라갔는지에 깊은 성찰이 있으면 현실에 타협하지 말고 끝까지 투쟁하자.”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어 허영구 민노총 부위장님의 발언이 있었다. 경제정책 실패를 노동자에게 전가시키려는 이명박 정권이 1%의 부자만을 위한 정책을 쓰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균열이 생기면서 무너지는데 이명박 정권은 이것을 답습하고 있다. 2009년, 민중이 헤어나지 못할 어려움을 맞겠지만 노동자들이 연대 단결하여 투쟁해 나가자는 말을 하였다.
이인근 지회장님의 가족이 왔다. 어머님의 눈물, 아버지의 “내 자식이 스스로 자청하여 올라갔는데 어찌 할 도리가 없다. 위에서 밥은 먹고 있느냐! 빨리 잘 해결하고 내려오면 좋겠다.”는 말에 왜 이리 마음이 아픈가! 송전탑에서 울어 대는 칼바람처럼 마음을 후려친다.
돌아갈 곳이 없다. 콜트악기 행정소송에서 말도 되지 않은 판결을 내린 사법부는 미친 것처럼 노동조합을 상대로 신종탄압을 만들어 냈다. 하이텍 자본도 법인분리라는 신종 노동탄압의 마각을 전면에 드러냈다고 한다. 2007년 11월 자본금 5000만원으로 법인을 분리한 구로공장을 폐쇄하고 11월 말까지 남아 있는 비조합원 모두에게까지 사직서를 받기로 했다는 것이다. 하이텍 지회가 무리한 요구를 해 어쩔 수 없이 폐쇄를 결정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갖다 붙였다고 한다.
자본은 이렇게 빨리 벤치마킹을 한다. 철탑고공농성에서 돌아오다 라디오에서 대우자동차가 생산라인을 멈추고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기업도 구조조정의 칼날을 비켜 갈 수 없다. 미국의 신자유주의 붕괴 서브프라임이 쓰나미가 되어 이 땅에 천민자본주의를 강타하는 날이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모든 제조업체에 압박을 주는 가스 값, 전기 값이 올라가 물가상승으로 이어져 민중에게 전가되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도 이명박 정권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후안무치한 발언을 한다. 이 땅 노동자가 진정한 주인으로 자리 매김하는 날이 다가오고, 하나가 된 투쟁으로만 해방되는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는 꿈꾸어 본다.
ⓒ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잊어진 게 아니라 잊지 못했던 마음이었습니다
마음이 급해 주위를 안돌아 보고
급하게 걸어 왔습니다.
어두운 밤이 오면 이 걱정, 저 걱정,
고공농성 중인
콜텍 이인근 지회장, 하이텍 김혜진 지회장 걱정
가까이 대우자판 걱정
핸드폰에 입력해 놓은 전화번호가 투쟁 중에 망가져
오랜 전에 사용했던? 먼지 쌓인 전화부를 뒤적여 봅니다.
어떤 번호는 전화를 받고,
어떤 번호는 전화를 받지를 않는데
신호만 가면서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참 콜트악기 노동조합이라는 구심체에서
인노협, 민주노총, 금속노조
뚜벅뚜벅 걸어온 길에서 만나
울고 웃으면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구나,
힘들고 어려웠지만
아련한 추억들이 아름다움으로 다가옵니다.
잊어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잊지 못했던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렇게 밤을 세면
또 새로운 태양을 맞아
희망을 찾으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