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4 00:34
전국건설노동조합 노동안전국장 박종국(mjn19971003@hanmail.net), 일과건강 2008년 2월호
지난 1월 7일에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 (주)코리아냉동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무려 40명의 노동자들이 숨지고, 17명이 심각한 중상을 입는 참화가 발생했다. 사상자 중 상당수가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새벽인력시장 통해 전전 긍긍하며 살아가는 건설노동자들이다. 또한 조선족 동포를 포함한 이주노동자들이 많은 후진국형 대형 참사라 국제적인 망신살까지 사게 되었다. 건설현장의 산업재해는 새삼 어제오늘이 아니라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언론지상에서 잠깐 떠들다가 잊어지곤 했던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다.
지난 2005년 10월 이천 GS물류센터 신축공사현장 2층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던 중 9명이 숨지고, 1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2007년 한해만 해도 충남 당진 동부제강 거푸집 붕괴사고로 5명의 실종사고, 5월에 공사장 타워크레인 붕괴사고, 전남 소록도 연도교 가설공사 붕괴사고, 청주 하이닉스공장 증설 현장에서 지금까지 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10월 22일 GS칼텍스 여수플랜트공사 현장 2명 사상, 같은 달 30일 동일사업장에서 2명 사망 등 건설현장 중대재해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건설현장에서는 하루 평균 8명 사망, 연간 600~700명이 사망, 1만 8천여 명이 부상을 당하고 있다. 영국의 12배, 미국의 6배, 일본의 3배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건설현장의 현주소다. 오죽하면 건설현장에선 “죽고 싸우면서 건설하자!” 구호가 상식화 되어 있겠는가? 최근에는 건설현장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안전대책이 시급한 상태다.
#죽은 자만 억울하다
이천 화재사고가 터지고 얼마 후 희생자 보상 문제를 놓고 사측의 무성의한 태도에 유족들의 분통이 터졌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법에 의하면 건설노동자들의 산재적용금액은 평균생활임금에도 턱없이 미치지 못해 보상을 한다고 해도 전혀 현실성이 없다. 하루빨리 개선이 되어야 할 부분이다. 또한 이제 모든 사업장에서 주5일제가 실시되고 있는데 유독 건설현장에서는 새벽에 출근하여 저녁 늦게까지 일요일도 없이 하루 10시간 이상 중노동 시달리는 것이 우리나라 건설현장이다. 이로 인한 근골격계질환을 비롯한 각종 직업병을 달고 사는 것이 현실이지만 산재적용은 10%도 미치지 못한다. 이것이 정부가 그렇게도 외쳐대던 “내수경기의 효자, 경제발전의 원동력” 등 온갖 미사어구를 동원해 건설노동자들을 우롱한 작태다.
지금까지 사고현장에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비롯한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상수 노동부장관 등 각계 정치인과 관계기관 인사들이 현장을 목격하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그러나 책임자 처벌은 요원하고 사고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과 대책을 언급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각 언론 매체에서는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을 정확히 조사하지 않고 주변 정황증거만 취재해서 현장노동자들의 부주의로 몰아갔다. 옛말에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지금도 구천을 떠돌고 있을 고인들을 생각하면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너무나도 관대한 대한민국이다. 사실 지금까지 건설현장 산재사고 후 사업주 책임을 물어 기소가 되는 경우는 0.5%도 되지 않는다. 거의가 약간의 벌금형에 그치는 실정이다.
한국산업안전공단에서 발표한 ‘07년 상반기 건설업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242명이고, 공사금액 3억 미만 현장에서 77명(31.8%), 3억~120억 현장에서 104명(43.0%)으로 나타났다. 이중 건축현장 사망이 177명(73.1%)이었고 이 중 플랜트, 아파트, 주택상가 현장에서 103명(58.1%)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타워크레인 같은 건설 중장비 사고도 급증하고 있다.
#모르면 차라리 입 다물라!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하면 건설업 20억 공사현장에서는 안전보건책임자를 선임하여 노동부에 보고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제30조에 의해 3억 이상 120억 미만의 건설공사는 노동부장관이 지정하는 재해예방전문지도기관(한국산업안전공단)의 지도를 받아야 하지만, 대부분 형식적으로 진행되며 당 현장과 같이 3개월 미만의 공사는 재해예방 전문 지도기관의 지도를 받지 않아도 되지만 이천 화재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화재 현장에는 환기시설도 없었고, 내부는 출입구가 마치 미로처럼 되어 있었으며 우레탄 원료통, 프레온 가스, 신나, 스치로폴 등 창고 안은 마치 대형 시한폭탄인 상황에서 건설노동자들이 목숨을 담보로 작업을 강행했던 것이다.
그래도 작업자의 과실로 치부 할 것인가? 언론은 건설현장을 모르면 차라리 그 입 다물라! 더 이상 유가족들과 200만 건설노동자들을 욕되게 하지 말라!
정부는 97년 외환위기를 핑계로 총 99건의 산업안전보건 규제관련 조항 중 35건을 폐지하고 37건을 완화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그나마 노동부가 강제하던 각종 안전검사제도를 폐지하고 기업체 입맛에 맞게 “자율인증검사지정제도” 개악안을 통과 시켰다. 이천 참사를 두고 노동부가 “해당업체에서 공사신고를 하지 않아 알 수가 없었다.”는 것은 너무나 심각한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최고 7단계의 불법 다단계하도급 구조가 이번 참사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적은 공사금액과 인건비를 최저낙찰 받아 적정 기능인원을 확보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공사를 하다보면 앞 다투어 서두를 수밖에 없고 체계적인 안전관리는 지켜 질수 없다. 따라서 “적정공기, 적정인원, 적정금액”이 보장되지 않으면 이천 참사 같은 대형 산재사고는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현재 이명박 정부는 자고나면 기업 규제완화를 부르짖고 있다. 앞으로 추진될 “대운하사업 그리고, 각종 재건축뉴타운사업, 행정중심복합도시사업, 공공기관 지방이전사업 등” 대형SOC사업들을 앞두고 있는 지금, 건설현장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해소되지 않고서는 끊임없이 대형 인명 피해가 발생 할 것이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아깝게 머나먼 타국에서 운명을 달리한 조선족동포 및 이주 건설노동자 등 40명의 건설노동자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하며 다시는 이러한 대형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건설노조는 제도 개선을 위해 투쟁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