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화학물질에 방치된 현장과 노동자

2012.03.04 00:27

조회 수:14725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우지훈(woojihoon@empal.com)
일과건강 2008년 4월호


물질안전보건자료(이하 MSDS) 법 제도는 화학물질을 취급하고 노출되는 노동자에게 그 화학물질의 건강영향 등을 알려주어 노동자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중독 예방, 응급사항 때 대처방법을 알려주어 발생 가능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도입되었다. 실제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장소는 MSDS를 작성․비치하고, 그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들에게는 해당 물질의 MSDS 특별 교육을 실시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대부분 형식적으로 시행되거나 심하면 시행조차 안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한 전국금속노동조합(이하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에서는 지난 2007년 6월부터 금속노조 각 단위 사업장 현장에 작성, 비치된 MSDS를 일부 수거하여 검토하였다. 일부 샘플만을 수거하여 검토하였는데도 일하는 현장에 MSDS가 게시․비치되지 않았거나, 있다하더라도 MSDS의 주요 내용 중 구성성분과 함량비, 주용 건강영향 등 꼭 필요한 정보들이 대부분 허위로 작성되었거나 누락된 채 현장에 비치된 심각한 문제들이 파악되었다. 결과적으로 그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알권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침해 받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이에 금속노조는 사업장의 화학물질 취급과 관련한 실제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노동자의 알권리와 건강권을 확보하고 나아가서 작업환경을 개선하고자 2008년 2월부터 각 단위사업장을 방문하여 현장실태조사를 실시하는 중이다. 

사업초기에 계획하였던 일정에서 약간의 변동은 있었지만 지금까지 인천지부, 충남지부, 경남지부, 경주지부, 대구지부의 단위 사업장을 방문하였고 앞으로 광주전남지부, 전북지부, 경기지부, 부산양산지부, 기업지부 방문이 남았다.


이 중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이하 연구소)와 함께 방문한 사업장은 충남지부, 경남지부, 경주지부, 대구지부이다. 연구소는 MSDS의 기본인 게시, 비치와 교육 문제들을 기본으로 △MSDS 내용과 유해물질의 작업환경측정결과와의 정확성 △노출요인과 노출수준에 따른 작업환경개선을 적용하는가를 중점 파악하였다.


약 20여개가 넘는 사업장을 방문한 결과를 간단하게 결론하면 모든 사업장들의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물론 사업장별로 차이는 있지만 100점 만점으로 평가한다면 평균이 40점 정도이다. 문제가 심각한 사업장은 10점도 후한 점수였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업장별로 차이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업장이 화학물질을 취급하면서도 MSDS를 게시, 비치하지 않았거나 있더라도 형식적인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일반적으로 화학물질이라면 단일물질인 경우가 드물고, 두 가지 이상의 물질이 혼합된 경우가 많다. 현장에 비치하는 MSDS는 제품명과 함께 각각의 구성성분 함량과 그 성분들이 유발하는 건강영향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구성성분 중 ‘톨루엔’과 같이 잘 알려진 한 가지 물질만 제시되었거나 제품명과 함께 간단하게 “흡입시 신경장해” 등으로 일반적인 증상만 표시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심각한 장해를 초래하는 발암성이나 유전독성, 환경독성 등의 정보를 명시한 경우는 하나도 없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흔히 들어 알고 있는 납사를 예를 들어보자.


납사(경)를 노동부에서는 발암성 물질로 지정하지 않았지만, 미국 산업안전보건청, 미국 국립독성계획단, 국제발암성연구소는 발암성이 있다고 인정하였다. 또 미국 산업위생전문가협의회는 동물에게는 발암성이 있으나 인체에서는 발암성이 확인되지 않은 물질(전범위 납사) A3로 규정하였다. 일반적으로 납사(경)는 C4에서 C10까지가 혼합되어 있다. 그러므로 발암물질인 벤젠(C6, 노동부 발암성 추정물질, A2)이 함유되어 있을 수 있다. 납사(경)에는 보통 1% 정도의 벤젠이 포함된 것으로 판단해 일반적으로 혈액장해, 발암성이 있다고 간주한다. 

이번 조사기간 중에 다수의 사업장에서 납사(경)을 원료로 사용하고 취급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취급공정이나 원료보관용기, 작업공정의 휴게실 등 그 어디에도 MSDS가 없었다. 회사 관리부서에서 어렵게 찾은 두꺼운 MSDS 장부 중 포함된 MSDS에는 “노동부, 미국 등 어느 곳에서도 발암성이 밝혀진 바가 없음”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납품업체 중 한 곳의 MSDS의 구성성분에 벤젠이 0.5~2%함유되었다고 제시되었으나 발암성 언급은 없었다. 특히 이 사업장은 발암성 물질을 취급하면서도 전회 2회 연속 측정치 기준 미만으로 연 1회 작업환경측정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 납사(경)를 취급하고 노출되는 노동자는 자신이 취급하는 물질이 암을 발생시킬 수 있는 벤젠이 포함되었고 벤젠의 주요 질환인 백혈병 정보를 알아야 한다. 또한 옆 공정 노동자나 신규로 배치되는 노동자를 위해서 현장에도 이러한 정보가 비치, 게시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장은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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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예로 염화메틸렌을 들어보자. 

염화메틸렌(디클로로메탄, 이염화메틸렌, 메틸렌클로라이드 등도 같은 물질임)은 노동부에서도 발암성 추정물질(A2)로 규정하였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청(발암성물질), 미국 국립독성계획단(인체 조사결과 발암성 예상물질), 국제 발암성연구소(인체 증거 불충분, 동물 실험결과 충분, 2B), 미국 산업위생전문가협의회(동물 실험결과 발암성 물질, A3) 등에서도 발암성을 인정하였다. 

회사에서 보관하는 MSDS를 검토한 결과 염화메틸렌이 99.9% 순도인 제품을 사용하는 곳도 있었으며 80% 수준의 순도제품을 사용하는 곳도 있었다. 어느 경우도 발암성을 명시하지 않았다. 사진에 보이는 세척조에 담긴 것이 염화메틸렌이다. 세척조 옆에는 디클로로메탄(염화메틸렌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물질명이 부착되었지만 발암성은 표시되지 않았다. 경고표시도 유해물질 표시가 아니라 발암성물질에 해당하는 해골그림(먹거나 흡입하면 사망할 수 있음)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앞에서 말한 발암성 물질들을 제외하고도 현장에서는 기형아를 출산하게 하는 등 2세에도 영향을 미치는 유전독성물질, 또는 정자 수를 감소시키는 등의 생식독성물질 등 다양한 유해화학물질을 노동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취급,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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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현장에서 몇 번 이름을 들어 보았을만한 TDI(톨루엔디이소시아네이트), MDII(메틸렌비스페닐이소시아네이트) 취급실태이다. 

TDI나 MDI는 이소시아네이트류의 한 종류로 페인트 제품에도 포함될 수 있고, 보통 발포와 관련된 제품 원료로도 많이 사용된다. 이소시아네이트류의 화학물질은 주로 호흡기를 통해 흡수되며 발암성이나 생식독성 등과는 관련이 없지만 주요한 건강장해로 직업성 천식을 유발한다. 국내에서도 이소시아네이트류 화학물질에 의한 직업성 천식은 꾸준하게 발생하고 있다. 

직업성 천식은 근무경력 동안 한 번이라도 호흡기가 이소시아네이트류의 화학물질에 반응하여 발생한 직업성 천식은 회복이 어렵다. 증상이 평생 지속되는 경우가 많아 호흡기가 반응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노출을 유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때문에 노동부의 노출기준도 매우 엄격하게 규정된 유해물질이다. 특히, 이소시아네이트류의 화합물은 단 한 번이라도 고농도에 수초 또는 수분 노출되면 천식 증상이나 기관지 과민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때는 증상이 수년간 지속될 수 있어 노동부는 이소시아네이트류의 단시간노출기준(STEL)도 규정하였다.


조사한 사업장 중 몇몇 사업장은 현장에 TDI, MDI라고 제품명과 함께 기본정보를 게시, 비치하였다. 하지만 직업성 천식과 관련된 언급은 한 곳도 없었다. 모두 간단하게 ‘자극성 물질’이라고만 명시했다. 작업환경측정결과를 검토하였을 때도 노동부가 제시한 노출기준 미만이면 모두 “기준미만”으로 적절한 작업환경이라고 제시하고 있었다. 이소시아네이트류의 화합물은 노출기준 미만이더라도 항상 주의하여 작업을 관리해야 한다. 또한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이소시아네이트류는 단시간이라도 고농도에 노출되면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작업과정 중에 발포액을 보충하거나 교반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작업환경측정을 할 때에 작업자가 단시간이라도 고농도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작업은 단시간노출을 측정하고 기준과 비교하여 관리하는 등 주의할 점이 많다.


지금까지 간단한 예로 설명한 납사(경)이 함유된 벤젠, 염화메틸렌, MDI, TDI는 모두 특수건강진단 대상 유해인자이다. 그러므로 이들 물질에 노출되는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이 물질들에 대한 특수건강진단을 받아야한다. 특히 이소시아네이트류에 노출되는 노동자는 폐활량검사, 비특이 기도과민검사 등 호흡기계 검사가 매우 중요하다. 이소시아네이트류에 의해 직업성 천식이 의심되는 증상이 보이거나 의학적 소견이 있는 노동자는 수시건강진단을 실시해야 한다. 

이번 조사에서는 특수건강검진 현황 조사는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유해화학물질 정보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이므로 특수건강검진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아닌지는 굳이 검토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다.


열거된 유해화학물질을 관리하는 방안으로 우리 현장에서 흔히 채택, 적용하는 방법은 국소배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고자 이러한 국소배기시설을 간단하게 점검하였을 때도 현장 문제는 다양하고, 심각하였다. 앞의(페이지 수 표시) 사진도 문제가 심각하다. 앞의 공정은 금형에 묻어 있는 기름때를 제거하려고 공장 내 한편에 마련된 세척실이었다. 물도 아니고 퐁퐁도 아닌 발암성 물질인 염화메틸렌을 사용하는데 세척실은 환기가 되지 않았다. 염화메틸렌 가스가 발생하면 공장 내로 그대로 새어 나갈 수 있는 구조였으며, 세척조 위에 설치된 후드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특히 사진의 후드 형태는 세척을 위해 노동자가 허리를 굽힐 경우 노동자의 코와 입 밑에서 발생한 염화메틸렌 가스가 그대로 노동자 머리를 거치는 과정에서 흡입되고 남은 가스가 후드로 빨려 들어가는 형태였다. 구소배기의 원래 목적인 유해물질이 노동자에게 노출되기 전에 제어해주는 원칙을 완전하게 어긴 형태이다. 그 외에도 아예 국소배기장치가 없는 공정, 형식은 적절하다 하더라도 대부분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시설 등의 다양한 문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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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부분 조사에서 발견한 현장의 문제점은 글에서 말한 것들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아직 경기지부, 부산양산지부 등이 남았고 이번 조사에 참여하지 못한 지역지부들도 있지만 일부 지역의 조사결과이지만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것이다. 

①아직도 현장에는 우리가 모르고 넘어가는 유해화학물질들이 무수하게 존재한다. ②이들 물질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으며, ③이런 시간들 중에도 주변 노동자들은 알권리와 건강권을 보장 받지 못한 채 유해화학물질에 중독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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