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3 20:20
우리나라에는 일하면서 병들고 다치는 노동자들이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들이 모두 다 드러나지는 않고 있습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 영세사업장노동자, 외국인이주노동자, 그리고 여성노동자들의 문제는 잘 파악도 안됩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 사회가 제조업 정규직 남성 노동자 중심으로 안전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노총은 이러한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노동안전보건위원회 산하에 취약분과를 건설하였습니다. 취약분과는 자신의 건강권을 아직 주장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문제를 찾아내서 사회적으로 알리고 대책을 만드는 활동을 하는 기구입니다. 서비스 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제공하라는 요구도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 취약분과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지금부터 우리의 요구를 간략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서비스연맹과 민주노총은 2006년 12월부터 서비스 여성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사업을 기획해왔습니다. 2007년 한 해 동안은 서비스 여성노동자 중에서 유통서비스 여성의 건강과 안전문제 종류를 파악하였고, 해외의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 건강을 위한 사업과 활동 사례를 조사하였습니다.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의 건강문제는 감정노동에 의한 우울증 등 정신건강문제, 중량물 취급과 고정된 자세 및 반복작업 등에 의한 근골격계질환, 하루 종일 서서 일하면서 발생되는 근육피로와 통증 및 하지정맥류, 화장실을 자주 못가면서 발생되는 방광염, 실내공기질에 의한 안구건조와 각종 이비인후과 질환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매우 다양한 문제가 존재하고 있었으며, 국가와 사업장 차원의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여성노동자 건강문제는 최근까지 심도 있게 다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건강보호를 위한 정책대안이 국가와 사업장 단위에서 충실히 개발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권리조차 지켜지지 않고, 국가의 근로감독 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의자와 화장실 같은 매우 기본적이고 생리적인 차원의 문제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산업안전보건법이 존재하며, 산업안전보건법 산업보건기준에관한규칙 제277조에는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때에는 당해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비치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백화점과 할인마트를 비롯하여 편의점과 고속도로 휴게소, 패스트푸드점, 그리고 아이스크림전문점 등 대부분의 유통서비스 직업에서 의자가 제공되지 않고 있으며, 의자가 있더라도 고객만 앉을 수 있고 노동자는 앉지 못하도록 내부 규정으로 통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직업에는 주로 여성노동자가 일하고 있었고, 어린 여성 학생들 아르바이트도 많이 있습니다.
의자에 앉을 수 없기 때문에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피로를 더 크게 느끼며, 장기화 될 경우 무릎과 관절의 이상 뿐 아니라 하지정맥류가 발생하는 등 여러 가지 건강문제가 발생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서비스 여성노동자들에게 서서 일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여성 노동에 대한 무시라고 규정합니다. 의자도 제공하지 않는 사업주의 태도로 말미암아 서비스 여성노동자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천하게 취급을 받게 되며, 이것은 서비스 노동자에 대한 고객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결국 서비스 노동자는 지나친 감정노동에 시달려야 하며, 고객과 상사로부터의 폭력에 의한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영국 등에서는 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제공하고 그들의 노동을 존중하자는 캠페인이 이미 진행되어 왔습니다. 외국에서는 여성노동자에게 쓸데없이 서서 일하지 않도록 만드는 사회가 여성노동을 존중하는 사회라는 인식에 도달한 것입니다.
서비스 연맹과 민주노총은 이러한 문제가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이 발생하고 있으며, 오히려 해외 어느 나라보다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자각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백화점과 할인마트,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아이스크림 전문점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동의와 지원도 중요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서비스연맹과 민주노총은 서비스 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제공해야 하는 이유가 잘 드러나도록 2차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2008년 5월까지 백화점 화장품 판매직 여성노동자를 중심으로 서서일하는 노동의 실태와 그로 인한 문제점을 다각도로 조사하였습니다. 설문조사와 현장조사 뿐 아니라 하지정맥류에 대한 검진, 서서일하는 여성노동자의 근피로도에 대한 실험연구 등이 추진되었습니다.
조사결과 앉아서 일하는 여성보다 서서 일하는 여성에게서 하지정맥류가 확실히 많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서서 일하면서 높은 굽의 하이힐을 신을 경우 다리 피로도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모든 백화점에서 손님이 없을 때 노동자가 의자에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었습니다. 일부 백화점이 임신여성에게만 의자를 제공할 뿐이었습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층층마다 화장실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쉬는 시간동안 화장실 갔다 오려면 직원용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 해야 해서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조사결과가 정리되었으며, 국민적인 공감대 속에 여성노동자에 대한 존중을 위한 캠페인을 추진할 준비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서비스연맹과 민주노총은 6월 18일에 여성단체와 진보적 사회단체들을 모시고 “서비스 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 준비를 위한 워크샵을 개최합니다. 그리고 6월 30일 캠페인단을 공식 발족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서비스 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 사업을 통해 단순히 의자만 얻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사회는 남성중심적인 문화가 지배하고 있으며, 여성의 노동을 깔보는 시각이 팽배합니다. 우리는 작지만 의미있는 도전을 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백화점에 할인마트에, 아이스크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에 의자가 놓이고 노동자들이 앉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은 그들의 몸이 소중하다는 것을 사회가 인정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업을 통해 우리가 욕심내는 것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수많은 서비스 여성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은 이래서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직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서비스 여성노동자들이 조합원이 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많은 동지들의 관심과 동참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