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27 10:28
요즘은 죽음이 트렌드가 된 것 같다. 계속되는 죽음은, 한국 사회 불안정성의 결과이자 경향이다. 1964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시행된 이래, 일터에서 죽어간 노동자 수는 8만1393명이다. 2010년 '활동하는 의사 수 8만4489명'과 비등한 숫자다. 의사가 그렇게 죽어나갔다면 세상은 멈췄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죽음은 어쩔 수 없는 것, 일하다 죽을 수도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에서 화재참사로 40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 법원이 해당 기업에게 내린 벌금은 죽은 노동자 1명당 50만 원이었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 수가 우리나라의 14분의 1(2010년 기준)에 불과한 영국은 2007년 '기업살인법'을 제정했다. 일터에서 발생한 죽음에 대해 '살인 행위'에 준하는 처벌을 하지 않는다면, 재해 자체를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영국은 기업살인법을 제정한 후, 노동자 1명의 사망사고를 발생시킨 기업에 약 7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제 노동자의 목숨 값이 낮은 한국 사회에, 일하다 죽은 이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왜 '기업살인법'이 필요한가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편집자주(노동건강 공동행동) |
▲이름조차 불리지 않는 죽음. 죽음은 일상이다. 2012년, 조선업 경쟁력 세계 최고라는 한국의 현실이다. ⓒ정기훈 |
ⓒ정성희 |
"나야 뭐 반장이 시켰으니까 했지."
안전관리 직원이 도는 시간, 하청업체 반장이 와서 노동자들에게 말한다.
"어이, 작업 좀 멈춥시다. 알아서 딴 데들 있다 와요."
노동자들이 순순히 자리를 피한다. 숨는 것이다. 안전관리 직원 눈에 띄면 피곤해진단다. 안전관리 직원이 하는 일은 매뉴얼에 따르지 않는 편법 작업들을 잡아내는 것. 용접 옆에서 도장 작업을 하고 있는 노동자를 발견하면, 안전관리 직원은 훈계를 한다.
"도장 작업 옆에서 용접하면 안 된다는 거 모릅니까?"
"…알죠."
스프레이로 페인트칠을 하는 도장 작업은 가스가 잔류하게 마련인데, 이것이 용접 불꽃과 만나면 폭발 화재를 일으킨다. 안전관리 직원은 다시 묻는다.
"그런데 왜합니까?"
용접공은 속으로 생각한다.
'당연히 안 되지. 안 된다고 만날 듣는데. 그런데 왜 했냐? 나야 뭐, 반장이 시켰으니까 했지. 그럼 시키는데 목줄 내놓고 안 된다 하나.'
그가 속으로 삭이는 사이, 벌금 스티커가 발급된다. 시킨 대로 일한 것 밖에 없는 용접공은 억울하다. 일이 바쁘면 하청업체 반장들은 뭐든 시킨다. 감전 위험이 높은 장마철에도 천막치고 용접을 할 정도다.
원청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납기일을 맞추는 것이다. 공사시수의 절감, 그것이 조선소의 경쟁력이라 여긴다. 그러니 하청업체 또한 납기일 맞추는 데 목숨 걸 수밖에 없다. 수백 개의 업체가 들어와 서로 납기일을 맞추겠다고 하니, 한 공간에 2~3개 혼재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은 비일비재다. 조선소 폭발 사고는 대부분 이런 연유에서다.
그럼에도 동시 작업이 성행하는 이유는 운이 좋으면 사고는 안 날 수 있지만, 안전수칙을 지키면 백퍼센트 납기일을 못 맞추기 때문이다. 원청의 안전관리 직원도 물량이 촉박한 시기나 장마철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때는 정말로 불법(안전관리 위반)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작업 현장에서 안전은 딱 이 정도로 취급된다.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지고, 생산성에 밀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받는다.
하청업체 노동자는 하소연 조로 말한다.
"회사(원청)는 납기일 안에만, 요 기일 안에만 블록이 생산만 되면, 그 다음에는 무엇도 신경을 안 써요. 무조건 오더(order)를 내리는 거예요.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업체는 해야 하는 거고."
"노동자가 공장 안에서 죽으면 안 돼요."
그러나 원청도 신경을 쓴다. 중대재해는 원청에 피곤한 일이다. 작년 12월, 4명의 하청 노동자가 밀폐 공간 작업 중 폭발로 사망하였을 때, 원청 세진중공업은 속이 타들어갔다. 죽은 이 중에는 27살 밖에 안 된 청년도 있고, 장난감 사오기를 기다리는 어린 아이들의 아빠도 있었지만, 세진중공업은 좀 다른 의미에서 속이 탔다. 그들은 노동부에 요구했다.
"배가 나가야 하니 작업 중지를 풀어 달라."
사건 현장 보존을 위해 중대재해가 나면 사고 난 구역의 작업이 중지된다. 그러면 납기일에 차질이 온다. 게다가 산업재해가 '공식적으로' 발생하면, 안전보건시스템(kosha 18001)이나 무재해 사업장에 주는 자율점검 권한(노동부는 2006년부터 조선업종에 한해 자율안전관리제도를 도입, 회사가 산업안전수준을 자체 평가하게 하였다)이 해를 입을 수 있다. 산재사업장으로 관리되어 노동부로부터 안전시설을 점검을 받는 것이 원청 입장에서는 시간과 자금 낭비이다. 그러니 무재해여야 한다. 조선소가 안전시설에 신경쓰는 이유다.
그런데 안전시설 확충은 생산을 더디게 한다. 사다리 하나를 설치해도 밑에 미끄럼 방지 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설치하는 일에 돈이 들고, 작업마다 장치작동을 시키느라 시간이 든다.
"원청에 있어, 안전하게 일한다는 것은 비효율성이 증가한다는 말이에요. 그러니 꺼려하고. 그러다보니 산재를 막는데 한계가 생기는 거지요."
그 한계를 원청 회사는 새롭지 않는 방식으로 메운다. 산재 은폐. 벌어진 산재를 없었던 일로 만든다.
조선소 곳곳, '안전제일'이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 그 옆에는 '무리하지 말자, 서두르지 말자, 대충하지 말자'라는 3불(三不) 표어가 있다. 공장 안에는 병원이나 119 소방서가 들어와 있기까지 하다. 그런데 막상 노동자가 죽어 가면 트럭으로 이동시킨다. 빠르게 이송시켜야 해서라 주장하지만, 지난 9월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가 심장질환으로 쓰러진 후 탈의실에 한 시간 동안 방치되었다가 트럭으로 이송된 사건을 보면 그 주장이 맞아 보이지 않는다.
조선소 노동자들은 말한다.
"앰뷸런스 부르면 그게 기록에 남으니까. 그러면 산재거든요. 또 노동자가 공장 안에서 죽으면 안 돼요. 공장에서 죽으면 중대재해가 되니까. 죽기 전에 빨리 옮기는 거죠."
산업재해로 기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숨을 못 쉬는 사람이, 장이 파열된 사람이, 머리가 깨진 사람이 트럭에 옮겨져 공장 밖으로 내보내진다.
더울 땐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땐 추운데서 일하는 사람들
조선소 현장은 뜨거웠다 고철 덩어리들은 그늘 하나 없이 초가을 햇볕을 그대로 받아냈다. 미관을 위해 심은 것인지, 산을 파내고 현장을 만든 것인지 조선소 뒤편에는 숲이 울창한데, 조선소 안은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다.
점심시간에 건물 뒤편으로 갔다가 일렬로 늘어앉은 사람들을 보고 놀란 일이 있다. 곧 건물 뒤 처마마다 저렇게 그늘 안에 몸을 웅크리고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휴게공간을 보지 못했다. 휴게실은커녕 사람들은 배 위에서 점심때까지 내려오지도 못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직원들이 나와 '시간엄수' 내용의 현수막을 들고 선다. 화장실도 없는 배 위에서 12시가 땡 치기 전까지는 내려오지 말라는 것이다.
12시가 되면 노동자들은 배 위에서 내려와 길게 줄을 서 점심 배급을 받는다. 그것을 후딱 먹어치우고 그늘 안으로 몸을 숨긴다. 나는 이들을 보며 무한도전의 박명수가 한 말을 떠올렸다. 세속적인 캐릭터로 나오는 박명수는 수능시험 응원을 해달라는 고3 학생에게 말했다.
"공부 해. 안 그러면 더울 땐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우면 추운 데서 일한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울 때는 더운 데서 추울 땐 추운 데서 일한다. 이렇게 일해도, 정규직이 되고자 젊은이들은 훈련소 생활을 거쳐 하청업체에 소속되는 유배생활까지 견딘다. 이들이 어딘가 부족해서 죽어가며 트럭에 실리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그들에게 휴게 장소를 주지 않았다. 누군가 그들을 트럭에 태우고, 위험으로 내몰았다. 누군가 그들에게 더울 때 더운 데서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해야 하는 환경을 주었다. <다음에 계속>
<일과건강>이 참여하는 노동건강 공동행동이 현재 프레시안에 연재 중인 기획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