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3 13:18
원진교육센터 한인임(uldam@dreamwiz.com)
일과건강 2006년 9월호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이 전면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직 언론들은 ‘마녀 사냥’을 시작하지는 않은 것 같다. 시간이 좀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니면 포항시내 전체를 ‘공황상태’로 빠져들게 한 포스코의 극악한 노무관리 태도와 뭘 믿고 그러는지 현 정권의 ‘노동자·민중 때려죽이기’ 전술로 아직 취재할 게 남아있는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노조가 설립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던 2002년 38일간의 장기 전면파업을 수행했던 노동조합이 2006년 다시 파업을 얘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그 속에는 1999년의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원흉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더 나아가 그 끝을 모른 채 날뛰고 있는 우리나라의 신자유주의 정책이다. 정부가 존재하기는 하는 것 같은데 공공성을 담보하겠다는 정책은 눈 씻고 찾아보려 해야 볼 수가 없다. 이걸 노동자들이 지켜가겠다고 하고 있으니 정부의 실종, 이로 인한 노동자들의 과잉 부담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이하 발전노조)의 조합원들은 2001년 4월 이전에는 전국전력노동조합의 조합원이었다. 정부는 IMF 구제금융을 맞으면서 기다렸다는 듯이(자기반성도 없이) ‘공공부문 팔아먹기’를 시작하였다. 이것이 1998년 연속적으로 발표된 ‘1, 2차 공기업 민영화 추진계획’이었다. 이는 다음해인 1999년 ‘전력산업구조개편 기본계획’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2000년 국회통과, 2001년 4월 발전분야 6개사 분할로 이어졌다. 전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공기와 같은 기본적인 필수에너지이다. 그간 한국전력공사는 발전-송·변전-배전의 일관체제를 유지하면서 국제적으로도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력을 공급해 왔다. 이런 중요한 공공산업을 정부는 노동자·민중의 극렬한 반대를 무시하고 일사천리로 ‘팔아먹으려’ 했던 것이다.
즉, 정부의 최종목표는 초우량기업이었던 한국전력을 파는 것이었다. 그런데 덩치가 너무 크다. 그래서 살 놈이 없을 것 같았다. 무려 자산이 58조나 되었으니까. 그러니까 빨리 팔 수 있는 방법은 쪼개서 파는 것이었다. 그래서 발전도 6개사로 쪼개고 이게 잘 되면 배전도 6개사 정도로 쪼개서 잘 팔아보자는 생각이었다.
다행히 배전분야가 6개사 정도로 쪼개지는 건 2004년 막아냈다. 그래서 전력산업 구조개편이란 걸 원점으로 돌린다고 했다. 노무현 정권이. 그런데 발전회사들은 이전처럼 통합되지 않고 있다.
이즈음에서 독자들은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없던 일처럼 한다고 했는데 통합이 되던 안 되던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우선, 발전사 분할 6년차로 접어들었다. 현장의 경력 있는 노동자들은 아우성이다. 분할이 되고 나더니 무슨 평가다 무슨 경쟁이다 하면서 해외 최신 경영기법은 다 들여와 난리를 치고 있는데 영양가 있는 건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본 업무보다 부대업무에 쫓겨 본 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발전소 안전과 안정적인 전력공급의 핵심인 발전소 계획예방정비(Over Haul)도 그 기간이 현저히 단축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특별한 기술발전 없이, 특별한 숙련의 축적 없이 이루어지는 정비기간단축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는 정부에서 진행하는 공기업 경영평가의 주요한 대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과거에는 전력노동자로서 일종의 자부심과 ‘공복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현재는 자부심 없어진 지는 한참 되었고 당연히 ‘공복의식’이 있을 리 없다. 왜 노동자들이 이렇게 변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쪼개진 발전 6사는 상호 경쟁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서로 도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동일한 기술을 적용하던 조직에서 이제는 옆에 있는 발전소가 다른 회사 소속이고 또 강력한 평가 대상이기 때문에 좋은 기술이 있어도 나누지 않고 부품 여유가 있어도 결코 나누지 않는 것이다. 이는 발전소 경영자들의 기본적인 경영방침이다. 과거에는 한 조직이었다가 분할되어버렸으니 책임소지가 분명하지 않은 영역은 서로 미룬다. 지난 4월 제주도 전역을 2시간30분 동안이나 암흑천지로 만들었던 제주정전사태는 아직도 공식적으로 무엇이 원인이고 재발가능성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 지에 충분히 설명되고 있지 않다. 그리고 누구의 잘못인지는 절대 밝히지 않고 있다. 깃털을 쫓아가면 몸통이 나오게 되니까. 이런 제반의 문제발생 근본원인은 분할 때문이다. 분할 문제가 소거되지 않는다면 이런 문제는 급기가 더욱 심각한 문제로 전화되거나 아니면 아예 통합이 불가능한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될 것이다.
두 번째 문제를 소개하자. 배전분할이 막히면서 전력산업구조개편을 원점으로 돌린다는 정부의 주장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발전사를 이전 체계로 통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친 듯이 팔아치우려고 했으나 아직 팔리지 않고 있는 남동발전(주) 매각이 아직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남동발전(주)가 매각된다면? 그다음은 역시 일사천리로 나머지 발전사들이 팔릴 것이고 그렇게 된 다음에는 배전분할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왜냐면 발전사를 사들인 국내외 초국적 자본들은 배전분할을 해야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다양한 양태로 정부를 공격할 테니까. 그리고 흔히 있는 정치권 로비는 안 하겠는가? 아, 누가 우리나라에 코포라티즘적 노사관계가 가능하다고 하는가! 이 서유럽식 노사관계는 신뢰가 기본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아예 그런 신뢰가 생존하기 어려운 척박한 구조가 아닌가.
그래서 발전노조는 ▶5개 발전회사 통합과 사회공공성 강화 ▶임금가이드라인 철폐 및 제도개선 ▶해고자 원직복직 ▶구조조정 프로그램 철폐 ▶인원충원을 통한 교대근무 주 5일제 시행 ▶부족인원 충원 ▶비정규직 철폐 및 정규직화를 걸고 투쟁하고 있다. 역시 가장 큰 쟁점은 발전사 통합이다. 사측은 이 안건에서만큼은 아예 교섭대상으로도 삼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지금 교섭에 나오고 있는 발전사 임원진들조차 대표자격으로 교섭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사실은 산업자원부가 쥐락펴락하는 주체니까. 이 기가 막힌 전력산업구조개편도 사실은 산업자원부 작품이니까.
조직은 유기체적 성격을 갖는다. 한 번 만들어지면 그 자체로 메커니즘을 만들어가면서 생존하기 위한 노력을 시도한다. 발전사들은 쪼개진지 5년을 넘기면서 이제 하나의 역동적인 유기체로 변화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신음소리가 들리지만, 그리고 대중은 향후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력이 제대로 공급될 지에 대한 정보를 차단당하고 있지만 발전사들은 마구 경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현재의 발전노조 투쟁은 오히려 늦은 감마저 든다. 조금만 헤치고 안을 들여다보면 이런 생각이 더욱 절실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발전노조 주장에 모두 귀를 기울이고 찬찬히 살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 보아왔듯이 이놈의 구조개편이라는 것은 비가역적이다. 일단 추진되고 나면 회귀라는 게 없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는 더욱 강고해지게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