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서울 한 복판, 경복궁 옆 미술관 공사장 참사로 29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그런데 엊그제 또 철도에서 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난 연말 인천공항철도에서 일을 하던 노동자 5명이 사망한 지 여덟 달 만이다. 매일 차고 넘치는 노동자 사망사고. 특히 철도에서의 떼죽음(노동자도 아닌 ‘인부’로 불리우는 이 건설노동자들의 죽음은 언론에도 제대로 나지 않는다.)은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다. 이런 죽음이 연속되는 과정에서 어떤 자도 책임지겠다는 자가 없고 책임진 자도 없다.


그런데 점입가경이다. 이번 죽음의 공간을 제공한 철도시설공단에서 대책이란 것을 제시했다. ‘안전사고 발생업체 감점기준 강화’(8월 22일자 연합뉴스)가 그 대책이다. “철도 건설현장에서 안전관리 부실로 사고가 나 벌점, 서면경고, 서면주의 등 조치를 받은 감리 또는 설계업체에 대해서는 사업수행능력 평가 시 최대 5점까지 감점토록 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철도 건설현장의 안전사고를 예방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한다.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다.


사고 경위를 자세히 살펴보자.


문제의 원인은 ‘불법개조’한 케이블 운반용 선로차량이었다고 한다. 경찰조사결과 사고 현장에서 사용된 선로용 화물차는 규정된 모터카보다 동력이 많이 떨어지는 1톤 트럭과 경운기 등을 불법으로 개조한 차량으로 드러났다. 불법 개조된 차량이 7톤에 달하는 고압 케이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제때 멈추지 못했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래서 앞서 가던 운송차량을 들이 받게 된 것이다. 또 차량이 어두운 터널 안을 이동하는 동안 주변 근로자들의 수신호 등 안전 조치가 미흡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규정된 모터카는 정기적으로 안전 점검을 받고 있지만 불법 개조된 객차는 그렇지 못해 상대적으로 안전에 취약하다"


그럼 사고분석을 해 보도록 하자. 왜 이 노동자들은 규정된 모터카를 쓰지 않았을까? 왜 노동자들은 수신호를 보내는 사람을 세우지 못했을까? 만약 철도시설관리공단 직원이 한 명이라도 나와서 감독을 했다면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작업을 수행하던 노동자들은 철도 선로의 특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노동자들이었을까? 이 질문은 금번 사고의 성격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바로 시설과 설비를 가지고 있는 발주처(원청)의 공사를 대행하는 하청업체 노동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설비를 가진 자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관리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작위로 하청업체에 저가 입찰을 하고 자신의 자산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주체가 바로 발주처란 점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직업성 질환, 업무상 사고는 소규모, 도급 노동자 집단에서 발생한다. 대기업의 경우 자체적인 안전보건 관리시스템이 작동하지만 영세할수록, 제일 밑바닥 도급일수록 이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 관리주체 자체(2차, 3차 도급업주)가 영세하기 때문에, 특히 발주처의 시설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어떤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지 명확히 알지 못한다. 알아도 조치를 취할 수가 없다. 돈도 없기 때문이다. 최저가 입찰은 그야말로 인건비 따먹기, 생명과 바꾸기를 불러올 수밖에 없으니까.


더 이상 발주처의 무책임성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 대형마트에 입점해 있는 수많은 입점업체 노동자, 대규모 건설 노동자, 제조업의 사내하청 노동자 이들 모두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발주처의 무책임성이다. 안전보건 영역에서 발주처의 포괄적 책임성 강화 이슈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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