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보다 훨씬 건강한 비정규직, 진짜?

2012.07.04 17:57

조회 수:49879

[산재추방 연속기고·③]직업병을 줄이는 법과 제도 개선 절실

임상혁 직업환경의학전문의 ·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

1988년 15살 어린 소년 문송면의 수은중독 사망과 원진레이온 노동자의 집단 이황화탄소(CS2) 중독사건 이후, 중금속 중독에서 과로사까지 다양한 직업병이 발생하였고 사회 문제화되었다.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과 정부의 의지, 기업의 참여와 국민들의 관심이 이를 만들었고, 아주 적게나마 성과들도 나타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최근 5년, 이러한 성과는 모두 후퇴하고 있다.

<표 1>을 보자. 1998년 이후 노동자의 직업병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 의미는 한국의 노동현실이 더 나빠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양한 직종과 업종에서 노동자의 건강문제가 발견되고 있다는 뜻이며, 산재보험 가입 노동자가 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직업병의 특성상 노출 후 오랜 기간이 지난 후 발생하는 영향도 원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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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업병 환자 발생현황(한국산업안전공단, 2012)


그렇지만 2007년을 정점으로 노동자의 직업병 발생이 확연하게 줄었다. 2010년 발생한 직업병은 2007년의 60%밖에 되지 않는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까? 노동환경이 개선되어서 직업병이 줄었다는 것은 몇 사람을 제외하고 노동부 공무원조차 믿지 않는다. 산업구조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바뀌어서 그렇다는 설명은, 서비스업종의 직업병도 감소했기 때문에 이유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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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7월 사회에 알려진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집단 중독 문제는 우리 사회가 직업병 문제를 자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3년이 지난 1991년 4월26일자 <경향신문>은 계속해서 고통받는 원진레이온 직업병 재해자들의 문제를 고발하고 있었다. ⓒ일과건강


노동자 건강 위한 활동 없는데 직업병은 감소

모든 기업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생산성 향상이라는 액셀러레이트에 브레이크를 걸게 하는 것이 바로 기업의 노동자 건강을 위한 활동이다. 이명박 정부는 생산성 향상 일변도의 정책을 밀어붙이며 노동자 건강을 위한 기업 활동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역설적이게도 이명박 정부에서 노동자의 직업병은 40%나 감소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산업재해 위험을 넘기고 책임을 지지 않는 대기업의 횡포와 이를 정당화 해주는 법과 제도가 노동자의 직업병을 감소하게 만든 것이다.

2003년 100여 명의 뇌심혈관질환(뇌출혈 ㆍ 뇌경색 ㆍ 심근경색) 환자가 산업재해로 승인되었던 택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하나도 변하지 않은 지금, 겨우 2명에게 산재 승인을 해주는 정부기관의 태도 역시 노동자를 산재 불승인으로 내몰고 있다.

비정규·소규모사업장 노동자 건강문제 조사 서두르자

아래 표는 2010년 발생 원인에 따른 직업병을 분류한 것이다. 한 장도 안 되는 작고 부실한 표지만,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준다. 이 표가 주는 정보를 역으로 해석하면 직업병 예방을 위해 무엇을 우선으로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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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모 반도체회사의 유기용제 중독이 사회적 이슈를 낳고 있는 요즈음과는 달리, 전자업종에서는 단 1건의 유기용제 중독도 없었다.
② 건설업은 석면관련 질환 발생이 가장 높은 업종이다. 2010년에는 총 7건의 석면질환이 발생했는데, 그 중 건설업에서 발생한 석면질환은 한 건도 없었다.
③ 과거에 직업병 통계로 잡혔던 직업성 암 통계가 사라졌다.
④ 직업병은 소규모 영세사업장 노동자보다 1000명 이상의 대기업 노동자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만약 노동자의 고용관계를 조사했다면,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보다 훨씬 건강한 것으로 조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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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초 사망한 윤슬기 씨까지 포함하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병에 걸려 세상을 달리한 노동자는 모두 56명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직업병이 산재로 인정받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사진은 2010년 3월 서울역 앞에서 열린 '반도체·전자산업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제' 공간에 차려진 분향소. ⓒ이현정, 일과건강 


직업병을 발견하기 위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통계에서 건강하게 보이는 비정규직 노동자,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건강문제를 시급히 조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건설노동자의 석면질환처럼 노동환경으로 발생하는 건강 문제가 이미 잘 알려진 노동자를 대상으로 빠른 조사와 대책이 필요하다.

최근 일본 오사카의 한 인쇄공장에서 노동자 33명 중에 5명이 담관암에 걸린 사건이 있었다. 이는 정상 일본인에 비해 무려 600배 높은 수치이다. 일본 정부는 잉크보다는 인쇄 후 기계를 세척하는 세척제를 원인으로 의심하고 전국의 인쇄공장을 조사하고 감독하기로 했다. 사후약방문 성격이 짙지만 비정규직 영세노동자에게는 이런 대책이 오히려 필요지도 모른다.

한국의 서울 을지로에 있는 많은 인쇄 노동자는 괜찮은 것일까? 통계에서만 건강하거나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그들을 진심을 다해 살펴볼 때 우리나라 직업병 문제 해결은 한 걸음 더 진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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