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7일 (일) 오전 11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문송면, 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3주기 '2021 산재사망 노동자 합동추모제'가 열렸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와 함께 했다.


1988년 당시 장례위원이었던 김은혜 원진직업병관리재단 이사는 "산업재해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진정한 위로는 다시는 용균이처럼, 다른 노동자처럼 죽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연대로 함께 투쟁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박석운 원진직업병관리재단 상임이사는 "산재사망의 악순환의 고리, 이제는 끊어야 한다" 며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그 입법취지에 맞게 똑바로 적용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경수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여전히 노동현장에서는 수많은 사고들이 발생하지만 은폐되고 축소된다"며 "노동자의 삶을 지키기 위해 거침없고 중단없는 투쟁을 조직하겠다"고 밝혔다.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은 "지난 33년 동안 매년 2400명 이상이 죽어간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다시는’ 안전하지 않은 일터에서 노동자의 목숨이 낙엽처럼 스러져가는 세상을 멈추게 해야 한다"며 피해자 가족과 유가족들도 함께 연대할 것을 다짐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지난 해 칠곡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다 과로로 사망한 장덕준 노동자의 아버지 장광 씨도 참여했다. 장광씨는 "자식을 산업재해로 잃은 저의 남은 가족들은 지옥과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며 "시는 우리와 같은 산업재해로 가족을 잃고 가정이 파탄나는 또 다른 가족들이 생기지 않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고 문송면 노동자의 큰형 문근면씨는 "동생을 땅에 묻은 지 벌써 33년이 흘렀다"며 "안전한 근로 환경 만들어. 오늘 우리가 이렇게 모여 눈물 흘리는 일이 없기를 바래고 바란다"고 전했다. 박민호 원진산업재해자협회 위원장은 "퇴근할 권리는 노동자의 가장 기본이 되는 권리다. 우리는 또다시 가장 기본적인 퇴근할 권리를 위해 다시 목숨을 걸고 투쟁해야 하는 것인가"하고 한탄했다.

이어 박준 민중가수의 추모 공연과 묘소참배로 이어졌다. 묘소 참배는 문송면·김용균·김봉환 순으로 진행됐다.

1988년 압력계기와 온도계를 제조하는 협성계공에서 일하던 십대의 어린 노동자 문송면이 ‘수은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며 노동안전보건 운동이 시작됐다. 이어 이황화탄소 중독 915명, 현재까지 230명이 사망한 ‘원진레이온 직업병’이 세상에 알려졌다.
고 김봉환 노동자는1977년 원진레이온에 입사해 7년 근무했다. 1990년 이황화탄소 유해판정을 받아 회사에 산재신청을 했지만 거부당했고, 다음 해 직업병 증세인 뇌출혈로 사망했다. 원진 피해 노동자들은 사인조사 등을 요구했지만 검사를 의뢰받은 고려대의 비협조 등으로 이를 이루지 못했고 공장 정문 앞에서 시신투쟁을 벌이고 거리투쟁을 벌였다. 이 투쟁이 언론에 보도되며 137일 만에 정부와 회사가 백기를 들었고, 이황화탄소에 대한 업무상재해인정기준을 만드는 등 성과를 얻어냈다.

그후 30여년이 흘렀지만 산재사망사고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한국의 산재사망율은 영국의 12배, EU국가 평균의 5배, OECD 평균의 3배에 이른다. 고 김용균 노동자는 2018년 12월10일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석탄이송용 벨트컨베이어를 점검하던 중 사망했다. 당시 나이가 24세 였다.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인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 등이 지난 해 말 단식농성을 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됐다. 법 제정 이후 지난 6월 초까지 344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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