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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배운다』는 다양한 안전보건 활동 중 기억해야 할 이야기, 본받아 마땅한 활동을 찾아 기록하는 새 꼭지입니다. 첫 순서로 2003년 정신질환 집단 산재신청으로 이슈를 낳았던 청구성심병원노조 이야기를 두 번에 걸쳐 싣습니다. 기사 내용과 사진을 인용할 때는 출처를 꼭 밝혀주세요. 특히 상업용으로 쓸 때는 반드시 사전협의를 거쳐야 합니다.




[ 리드문 및 편집자주 수정 ]


2010년 4월 8일, 언론이 주목하진 않았지만 의미있는 산재 승인이 있었다. KT(옛 한국통신)의 감시와 차별로 스트레스를 받아 발생한 박아무개 씨의 정신질환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은 것이다. 박씨는 2004년에도 비슷한 이유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은 바 있다.


사업장 이름만 바꾸면 우리는 시간차만 있을 뿐 똑같은 사건을 읽을 수 있다. 바로 청구성심병원이다. 청구성심병원은 1998년부터 노동자 탄압으로 유명세를 탔다. 2003년 7월 그 사업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9명은 회사의 노조탄압과 조합원 차별로 ‘우울과 불안을 동반한 적응장애’라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며 집단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대한민국에 산재보험 제도가 운영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탄압과 차별로 고통 받은 노동자에 앞서 ‘최초 정신질환 집단 산재신청과 전원승인(1명은 개인사정으로 신청 철회)’으로 기억되는 그들이 있었기에 한국사회에 정신질환도 업무상 재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다. 노조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똥물 투척, 식칼테러, 폭력, 폭언, 감시, 차별을 받아온 청구성심병원 노동자. 2003년 8명이 산재를 인정받고 5년 뒤 같은 이유로 3명의 조합원이 산재를 신청할 정도로 청구성심병원의 노조관은 변하지 않았다. 


탄압과 차별이라는 청구성심병원 노동조합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지금은 분회장으로 활동하는 공공노조 의료연대 서울지역지부 청구성심병원분회 권기한 분회장을 만나 2003년 2008년 집단 산재신청 의미를 되새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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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성심병원노조 권기한 분회장. ⓒ 일과건강 이현정




병원만 보면 울렁거려…18명 중 11명이 우울증


- 예나 지금이나 정신질환은 금기시 하는 게 사회 분위기다. 2003년은 지금보다 더 그랬을 것 같은데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정신질환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병원에서 (조합원을) 너무 괴롭혔다. 밤에 잠도 못자고 식욕도 없고 만날 몸싸움 하고…. 병원을 쳐다보기도 싫고 보면 가슴이 울렁거렸다. 말도 조리 있게 하지 못하고, 우리끼리 툭하면 싸우고 울고. 이제는 열사가 된 이정미 지부장이 다른 간부들도 유형이 비슷한 걸 눈치 채고 휴직한 조합원 두 명 빼고 18명을 조사했다.


검사해보니 11명이 우울증 진단이 나와 (문제가) 조금 심각하게 됐던 거다. 이정미 전 지부장은 물론이고 간부들이 고민을 많이 했다. 세상에 알려지는 게 사실 두려웠다. 가족들 보기도 굉장히 민망하고. 그런데, 누군가는 또 그 자리에 있을 텐데 내가 외면하는 것은 아닌가, 내가 하지 않으면 또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볼 텐데,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하는데, 그 생각하고 오래 고민 안 했던 것 같다. ‘동지가 하니까 한다’는 분위기도 있었다. 공단이 집단으로 (산재신청) 하는 건 인정을 안 해줘 무작정 싸웠다. 내가 이렇게 아프고 삶의 기력조차 없고 삶을 포기하려 하는데, 그게 일하면서 생긴 병인데… (침묵) 100일 넘게 싸웠다, 다 같이. 그때 도와줬던 분들이 굉장히 많았다.


- 당시 근로복지공단 분위기는 어땠나? 

= 2003년에 억지로, 억지로 노동자 측 위원이 (자문의사협의회에) 들어가서 얘기했다. 자문의사협의회가 판단을 잘 못하더라. 의사들이 정말 진료해보면 상황이 달랐을 텐데, 그냥 서류만 보고 판단했다. 나를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결정) 내리더라. 그것도 맞지만 주요 질환은 누적된 우울증이었다. 더 심한 것은 자문의사협의회가 아무 생각 없이 서류상으로만 판단하는 게 문제였다. 질문도 기본만 하는데, 그때 우리 측 자문의원이 안 들어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정말 힘없고 아무 연고 없는 노동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왔을 거라 느꼈다. 그리고 지사장이 법이었다. 지사장이 다 할 수 있었다. 2008년에는 “2003년에 산재판정을 한 건 정신과의사들의 오류였다” 이렇게 얘기하더라. 집단으로 (산재신청을) 제기하는 것은 사회문제가 되니까 집단으로 하면 안 해준다는 얘기도 했다. 지금은 혼자 해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공단이나 노동부나 입장은 똑같은 것 같다. 노동자들 편에 서지 않고 막을 궁리나 사용자 버팀막 하는 게 노동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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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7월 노조, 안전보건단체, 인권단체, 보건의료단체 등이 꾸린 공동대책위원회는 청구성심병원 노동자의 산재인정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청구성심병원노조 홈페이지





노노싸움 만들어질 때 가장 힘들어


권기한 분회장은 대화 도중 종종 침묵했다. 기억 저편에 묻었을 과거를 말할 때, 이정미 전 지부장을 이야기할 때, 지금은 청구성심병원에 없는 동지들 소식을 전할 때 그랬다. 침묵은 날마다 전쟁터였을 지난 12년의 투쟁 현장을 지킨 그가 삼키는 상처였다.


폭언, 폭행, 업무과중, 부서 내 회식 배제, 사소한 실수 경고남발, 승진탈락, 잦은 부서이동, CCTV 감시, 조퇴?외출 엄격 제한 등 나열하기도 벅찬 노조와 조합원 탄압을 견디는 것보다 권 분회장을 가슴 아프게 한 것은 다른 일이었다. 노노 싸움, 함께 싸웠던 이의 자살시도, 힘들 때 의지했던 지부장의 사망까지 동지와 아픔을 같이 나누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는 “매번 투쟁에서 관리자들은 서서 말만 할 뿐이다. 그 앞에서 몸싸움 하는 사람들은 같이 일 하는 사람들”이라며 (사측이) 노노 싸움을 만드는 게 가장 힘들고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도 병원 내에서 조직활동을 할 때 못 되게 구는 비조합원이 있다며 우리끼리 싸우는 것 같아 제일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아픈 몸을 돌보지도 않고 투쟁만 했던 이정미 전 지부장의 사망, 이○○ 전 지부장의 자살기도 때에도 참 많이 울었다고 고백했다. 권 분회장은 쓰러지고 아픈 동지들 옆에서 왜 조금이라도 돕지 못했는지 모르겠다며 다시 짧은 침묵에 빠졌다.


<이정미 열사 관련 기사 보러가기>

<이○○ 전 지부장 관련 기사 보러가기>


②로 이어집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기록한 청구성심병원 노동자 정신질환

청구성심병원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가 연구소를 방문하였다. 이 노동자는 심한 요통으로 방문했지만 요통보다는 불안해하고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지 못하며 공포를 느끼는 행동을 보여 정신과 의뢰를 통해 적응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 노동자로 인해 청구성심병원 문제가 세상에 알려졌다. 청구성심병원은 1998년부터 노사 갈등이 심했던 사업장으로 알려졌다. 사용자측은 노조 조합원들에게 직접 폭언과 폭력은 물론이고 감시, 승진차별, 차별적인 업무 과부하, 조합원 근무부서 및 고의적인 근무시간 인력부족배치, 회식에 끼어주지 않기, 인사해도 받지 않기와 같은 대화 배제와 단절, 부서 내 ‘왕따’ 유도 등 일상적으로 끊임없이 스트레스와 압력을 드러내놓고 행사해왔다. 일상 업무와 활동 속에서 끊임없이 이뤄지는 인권침해 속에서 거의 모든 조합원이 초조, 분노, 공포, 우울, 가슴 답답함이나 두근거림, 소화불량, 변비, 어깨 결림, 두통 또는 불면 등의 증세에 시달렸다. 


조합원 10명의 정신과의사 검진에서 ‘우울과 불안을 동반한 적응장애’와 '전환 장애' '수면장애'라는 질환을 진단받았다. 발생원인은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근무조건과 근무환경으로 확인되었다. 이들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고 인권을 개선하기위해 노조와 안전보건단체, 보건의료단체, 인권운동단체, 법률지원단체, 지역활동단체로 구성된 ‘청구성심병원노동자 집단산재인정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연구소 임상혁 소장이 집행위원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활동 결과로 정신질환 노동자 전원이 산업재해로 인정되었다. 사업장은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이 실시되어 사업주 처벌이 이뤄졌다. 청구성심병원 문제 해결은 서비스노동자의 정신건강문제가 조명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업무상 질병에 정신질환이 포함된다는 성과를 올렸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10년사, 산업의학실, 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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