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내용은 [일과건강] 2008년 12월호 인터뷰에 실린 것 입니다. 글과 사진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지난 달 29일, 노동건강연대는 ‘노건연과 노건연, 노동과건강연구회 20주년 기념식’을 치렀다. 앞의 노건연은 1988년에 창립한 ‘노동과건강연구회’이고 뒤의 그것은 산재추방운동연합(산추련) 건설과 해산 뒤 2001년에 창립식을 가진 지금의 ‘노동건강연대’이다. 노동자건강권운동 단체 효시인 노동과건강연구회를 창립했던 선배와 활동가 그리고 현재 상근활동가들이 모여 과거를 보듬고 앞날을 이야기한 기념식이었다.
역사 속 개인을 보듬다
20주년은 1998년 노동과건강연구회 10주년 행사보다는 조촐했다. 하지만 노동자건강권 운동에서 노건연이 가진 의미와 활동성과의 소중함은 1998년 이후 10년 뒤에도 의의가 있는 무엇이다. 그 ‘무엇’을 이야기 하려고 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 전수경 씨를 만났다. 한겨레신문 생활광고란에서 모집광고를 보고 지원, 나름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그는 1996년부터 노건연 활동을 시작했다. ‘건강’이란 말이 너무 이상했지만 ‘노동’ 관련된 활동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어 지원을 했던 그는 이제 12년 차의 선배 활동가다.
- 문송면 사망 20주기, 노건연 20년, 원진투쟁 20년 등 올 해는 여러모로 노동자건강권운동에서 의미 있는 해였다. 나름대로 소감도 남달랐을 것 같다.
= 너무 너무 솔직하게…, 지금 사회 경제 상황이 어려워 개별 노동자들이 너무 힘들게 살고, 노동운동도 힘든 때 옛날 사람 모셔 20주년 행사를 한다는 게 사실은 걸렸다. 노동안전보건 현안에서 도움도 안 되면서 20년이라고 자축하는 게 심리적으로는 답답했다.
그런데, 반대로 개개인한테 아주 중요한 역사가 있는데 그걸 우리 운동이 너무 못 챙겨 주니까, 그걸 챙겨줘야 한다는 의미에서 필요했다. 옛날 노건연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 아무런 행사도 없이 노건연이 해산된 것에 여전히 스스로를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그런 게 아직 남아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이 어떤 옛날 역사의 한 장에 몸담았던 것을 보듬어주고 싶었던 점에서 노건연 20주년 행사를 중요하게 보고 싶다.
노동안전보건운동 13년 차인 상근활동가 전수경 씨. '노건연'과 '노건연' 사이에 그가 있다. ⓒ 이현정
같이 해서 성과 나누는 경험 필요
- 사실 7월 문송면 20주기 추모행사 이후 시간을 갖고 20주년 행사를 기획하자고 했는데 잘 안됐다.
= 7월이나 이럴 때 20주년 행사를 못 했던 것은 지금의 노동운동 상황이나 노안단체 상황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연대감이나 공동체 의식이 많이 떨어지고 지금 사회 상황이 정신적으로 풍요롭지 못하니까… 노동운동 판에서도. 지난 10여 년간 가파르게 힘든 시기가 있었고. 따로 평가해야겠지만 그동안 같이 했을 때 성공했단 경험이 없어서 다들 힘들어 하는 건지, 같이해서 뭔가 만들었을 때 잘 된 경험이 있으면 같이 뭔가를 했을 텐데…
- 다 같이 축하했던 분위기의 10주년에 비해 올 해는 의미가 덜 해진 것 같다.
= 그때는 민주노총이 만들어진 지도 얼마 안 돼서 힘도 나 있었다. 원진도 병원 설립 준비를 하던 뭔가 되는, 축하해 줄만한 분위기가 있었다. 산추련 이전에 전국 단체들이 모여서 두 달에 한 번씩 지방을 돌면서 회의를 했다. 그게 실제로 지역 활동가들과도 굉장히 끈끈한 연대감을 갖게 했다. 지역동지들도 내용 공급이나 정책동향에서 열린 마음으로 항상 공유했다. 조직은 달라도 한 운동체다, 그런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그 후에 산추련 건설과 해산을 거치면서 단체들이 가졌던 공동체성은 많이 사라졌던 것 같다.
상승효과 못 본 대중조직과 단체의 기계적 결합
노동자건강권운동 역사에서 뜨거운 감자라는 느낌을 가지게 했던 산추련이란 단어가 나왔다. 산추련은 자본과 정부가 노동자를 거세게 몰아치는 기회였던 IMF 파고 속에 노동과 삶에서 위기를 겪어야 했던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갈수록 악화되어 가자 1999년 초에 만들어진 노안단체, 노동조합 연합체였다. 그러나 이상관 투쟁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2001년 해산되었다.
전수경 씨는 “그 당시 노건연 활동가들은 의결권을 가진 대기업 노동조합 대의원대회의 사무처로 편제된 구조였다.”며 “노동조합은 대중조직대로의 체계가 있고 단체들은 고유한 특성이나 역사성이 있는데 그걸 섞는 순간, 기대했던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았던 것 같다.”며 역사의 한 장이었던 산추련을 이야기했다. 환경, 문화, 교육, 보건의료 등에서 당시 자기 운동과제와 부문운동의 빈틈을 찾아 새로운 운동을 모색하던 추세와 비교하면 “어떻게 보면 반대로 갔다고도 볼 수 있다.”는 말을 이었다.
그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그 어떤 부문운동보다 활동력이 많았던 노동자건강권운동이 노동조합과 단체들의 단일 조직 건설 과정에서 쓸모있는 활동가와 네트워크를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그때 이미 사회에서 보건, 의료는 굉장히 전망있는 운동이었다. 노동운동은 그걸 내다보고 잡았어야 했는데 버린 것이고 전문가들은 그들 나름대로 피해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그게 사실은 지금까지 굉장한 손실이다.” 대중조직과 전문가 사이에서 발생한 의견 차이가 연대와 신뢰로 극복되지 못했던 것이다. 전수경 씨는 산추련 건설과 해산 과정을 짚어보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지금의 무기력해진 노안운동의 원인을 밝히는 면에서는 되돌아볼 이유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가 조직된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을 넘어 미조직노동자, 비정규노동자들의 안전보건 문제를 국가, 사회적인 의제로 제시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다”며 “그럴 때 대중조직과 전문가가 서로 파트너가 되자고 해야 하는데 그전보다 못하게 된 것 같고 (산추련) 영향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람이 하는 일인데, 개인에게 상처를 주면서 어떻게 운동이 되겠는가?”라는 반문을 이었다.
노동과건강연구회 기관지였던 '노동과건강'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은 산추련 발행 잡지 노동과건강. 별책부록으로 산재동향이 함께 나왔다. ⓒ 교육센터
정책활동 복원으로 불황이 이후 시기 준비
2001년, 옛 노건연 활동가와 전문가들은 ‘산재노동자들의 건강한 삶을 보장할 수 없는 낡은 법적 제도적 장치에 과감한 개혁투쟁이 필요’하다며 노동건강연대를 결성하였다. 산업안전보건체계를 근본 개혁하고 최소한의 권리마저 박탈당하는 비정규·영세사업장·여성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연대하는 활동을 목표로 했다.
- 80년 후반~90년대 노건연 활동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축소된 느낌이다.
= 전국 활동을 지향하지만 회원들 활동력이 좀 떨어졌다. 전문가들이 모여 있으니까 지금 노건연이 할 일은 국가가 놓치는 부분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회적 역할이다. 의견을 제시하고 언로가 되는 역할을 지금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정책 활동이 강화되어야 한다. 노건연이 삼성백혈병에도 못가고 하이텍도 못가는 것에 미안해하지 말고 그 시간에 빨리 정책활동을 복원해야 한다. 이 불황기가 지나면 다른 방식의 노동사회가 올 텐데 그런 것에 계속 안테나를 세우고 사람들에게 사이렌을 울려줘야 한다. 그 일을 계속해야하고 내년에는 더 활발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 10년 전 안전보건의제가 사실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 많다.
= 민주노총하고 노안 활동가들이 일차적으로 산재보험제도를 완전히 뜯어고치는 활동을 운동의 성과로 만들어 다쳤을 때 산재에 쉽게 진입할 수 있는 활동을 해야 했다. 지금은 직업병인가 아닌가를 의학적 도구로만 측정해서 인정받아야 하는 구조다. 현 제도에 종속되어 인정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산재보험 진입장벽을 없애는 법 개정 운동을 하자면 제도개선 투쟁이라며 경계한다. 제도를 좌지우지하는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자면 대의원대회에서 쇠파이프 나온다. 현장의 대책활동 못지않게 법제도 개선운동도 중요한데 그것은 저평가하거나 아예 평가를 안 한다. 이게 10년 20년 지속되었는데 그걸 건드리지 않으면 나가기 힘들다.
시스템에 쇠고랑을 차고서는 노동자들 삶을 실제로 개선하기 어렵다.
- 2001년부터의 노건연이 또 10년이 되어간다. 노건연의 전망은 어떤 것인가?
= 비정규노동자들이 더 많아지니까 개별노동자가 산재보험에 접근이 안 되는 것은 꼭 건드려야 한다. 제조업 공장 중심으로 된 산안법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다수인 시대에 맞게 고쳐야 한다. 올해 사업계획에 있었지만 전혀 못했다. 회원들이 편하게 있을 시대상황이 아닌 것을 자각하고 열정적으로 정책 활동을 해야 한다. 그걸 안 하면 죄를 짓는 것 같다. 지금 시대가. 그런 축에서 성수노동자건강센터가 자리를 잡아 영세사업장들은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는 사례를 만들어서 지역들이 찾아오고 지역노조들이 뿌듯해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걸 성공하는 게 중요하다.
지난 달 열린 노동과건강연구회 20주년 기념식에서 오랜만에 선배와 후배 활동가들이 모였다. ⓒ 노동건강연대
꿈은 저소득층 노동자 일상 연구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삶이나 자기 인생, 일터, 가정에서 같이 변화할 수 있는 것을 주고 싶은 성수노동자건강센터에서 기획실무를 총괄하는 활동가 전수경. 그의 꿈은 동시대를 사는 한국사회 영세사업장, 저소득층 노동자들의 삶과 일상을 그 사람들의 경제·사회조건과 연결하여 정교하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꿈 실현은 몇 년 뒤에 실천될 것 같다.
계간지 ‘노동과건강’도 복권, 회원들 정책 활동 독려, 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에 또 다른 전례를 만들고 싶은 성수노동자건강센터 등 활동가 전수경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