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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과건강 2008년 11월호 [인터뷰]기사 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일과건강에 있으며 글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와 필자 이름을 명기하세요.




야근은 기본, 밤샘은 필수


노동집약산업이라고 하면 흔히 섬유산업, 서비스산업, 농림업 등을 떠올린다. 생산요소 가운데 다른 요소에 비해 노동력이 많이 든다는 ‘노동집약’이란 뜻을 생각한다면 편집디자인 일도 노동집약형 업종이라 할 수 있다. 광고든, 전단지든, 책자든 일거리가 하나 들어오면 편집디자이너들은 주문된 것이 인쇄에 들어가기 전까지 최대한의 노동력을 투입한다. 기한을 맞추기 위해 야근은 기본이고 때로는 몇 날 며칠 밤을 세기도 한다. 


 


편집디자인 일을 10년 째 하는 이진훈 씨는 경력이 독특하다. 그는 학교에서 관광을 공부했다. IMF 직후인 1998년에 졸업을 한 그도 구직난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이진훈 씨는 상황은 힘들지만 자신한테 맞는 뭔가를 찾았고 고심 끝에 발견한 것이 바로 ‘편집 디자인’이었다. 종이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출판 관련 프로그램과 시각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원을 다녔고 1999년에 수습 80만원, 이후 1백만 원을 주는 기획사에 취직했다. 



학과와 무관한 취업을 해서 처음 일을 접했을 때 힘들었을 것 같다는 질문에 그렇지 않았다며 “일단, 첫 직장인데다 일이 익숙하지 않으니까 급여는 작아도 배우면서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답했다. 기획사에 들어가면 사수, 부사수라는 개념이 있는데, 초보자에게는 곧바로 인쇄물 디자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사수가 작업하면 거기에 필요한 뭔가를 보충해 주고 간단하게 명함작성부터 시작해서 차츰차츰 일을 늘려간다고 한다.


 


일이 있는 한 휴일은 없다


그런 과정을 거쳐 이제 충분한 ‘사수’의 위치에 있는 이진훈 씨는 그러나, 지금 하는 일에는 만족감이 크지 않다. 편집디자인이란 일을 시작할 때는 이 바닥이 원래 늦게 끝나고 인쇄물 나가는 시간이 있기에 밤을 새는 것이 ‘항상 있는 일’로 생각했는데 변하지 않는 노동환경에 조금씩 지겨움이 싹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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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 10년 차의 이진훈 씨가 전하는 충무로 을지로 일대 출판 인쇄 편집디자이너들의 노동조건은 녹록치 않다. ⓒ 이현정




- 편집디자인들의 노동조건은 어떤가? 

= 옛날에는 시간외 근무 수당을 받으려고 한 사람도 없었고 주려고 한 사람도 없었다. 주5일제다 뭐다 해서 거래처들이 쉬니까 일이 없으면 안 나온다. 그런데, 이런 거 말고는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월급이 오른 것도 아니고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도 아니고 외적인 대우가 좋아진 것도 아니다. 기획사는 대부분 5인 미만의 소규모 업체라 얼마 전까지 근로기준법에 별로 신경을 안 썼다. 뼈 빠지게 일하고 돈은 별로 못 버는 곳이다. 또,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급여가 오르지 않는다. 10년 된 사람이나 3~4년 된 사람이 별 차이가 없다. 그러니까 다른 일을 찾게 된다.



일이 없으면 9시 출근 6시 퇴근이지만 있으면 근무시간이 따로 없다. 일요일이든 토요일이든 인쇄물 나갈 시간에 맞춰 밤을 샌다. 10월 한 달은 이번 주 일요일만 쉬고 계속 나왔다. 일이 있는 한 휴가도 없다고 한다.


 


그야말로 일에 죽고 일에 사는 셈이다.


노동 양에 비례한 임금이나 복지가 없으니 이직이 잦을 수밖에 없다. 급여를 올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회사를 옮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진훈 씨 역시 거의 1년에 한 번 꼴로 회사를 옮겼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면 월급 오르는 게 힘들다. 인상기준도 없다. 초창기에는 다른 편집디자인을 하고 싶어 이직을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사장들은 디자인이 없으면 인쇄물도 없을 텐데도 눈에 보이는 직접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편집디자이너 일이 돈 되는 것이라고 안 본다. 


일 때문에 아파도 산재처리는 1.54%


주로 앉아서 일을 하는 편집디자이너들의 주요한 건강 문제는 소화기이다. 움직일 일이 거의 없고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라 소화가 안 좋아진다. 또 하나는 눈이다. 이진훈 씨는 “내 눈이 왜 이러지”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며 실제 다른 사람이 작업할 때 모습을 보면 눈(동자)을 거의 안 움직인다고 밝혔다. 그는 성진애드컴이라는 회사에서 일할 때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디자이너가 어느 날 목에 깁스를 하고 와 이유를 물었더니 목에 디스크가 생겨서 수술을 했는데, 그 분 당부가 “1시간에 한 번은 꼭 일어나서 돌아다니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하루 종일 꼼짝하지 않고 일하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편집디자이너들의 산재신청은 거의 미미하다. 지난여름 ‘출판·인쇄 편집디자이너 실태조사’ 결과에 다르면 일 때문에 발생한 질병이었지만 산업재해 처리는 1.54%에 불과했다.


- 산재보험처리가 거의 없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 산재보험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 안 됐다. 2~3년 전? 규모가 좀 있는 곳이 아니면 거의 없었다. 디자이너가 산재신청을 한다는 게 뭔가 앞뒤가 안 맞다고 스스로들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아픈 게 산재가 된다는 것을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 보통 학력 수준이 높을수록 조직률이 높다고 하는데 디자이너들 학력수준을 고려하면 현실은 그렇지 않다. 

= 첫째는 “나는 디자이너다. 디자이너는 능력으로 평가받고 얼마큼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인식문제다. 어디에 속해 있다기보다 독립된 개체로 생각한다. 요즘에는 옛날보다 노동조건을 많이 찾으려고 하는데, 뭘 챙겨야 할 때 방법을 잘 모른다. 그러면 왜 노동조합까지 안 가느냐? 불만이 있지만 ‘그렇게까지 해서(노조까지 만들어서) 뭘 어쩌겠냐?’는 것이다. 조합을 만들면 좋긴 할 텐데 이게 과연 되겠어? 조합 자체가 만들어지겠어? 한다. 한 가지 더 얘기를 하면 영세한 곳은 (디자이너 스스로) 사장 입장을 많이 생각한다. 조그만 기획사가 생기고 없어지는 것이 반복되면서 오히려 사장 입장을 생각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이진훈 씨는 실태조사를 거치면서 디자이너 모임을 통해 노조든 아니든 편집디자이너들에게 이로운 것들을 해보려고 시도 중인데 퇴근시간이 불규칙해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같은 지역에서 일하면서도 소통하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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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편집디자이너 실태조사를 위한 거리 설문은 "왜 이제야 하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 이현정






의사 변호사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 할까

그는 “의사도 변호사도 (자기 이익을 위해) 모이는데, 디자이너들도 일단 모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로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은 가졌으니까 무엇이 잘못됐고 우리가 나갈 방향이 어떤 것인지를 나누는 소통할 자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진훈 씨는 조심스럽게 충무로 편집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한 포스터 공모전을 한다든가 디자이너 생활이 담긴 소식지를 만드는 등의 소통방식도 고민 중이었다.

마지막 질문으로 편집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는 ‘오지 마라’는 단어들을 제일 먼저 꺼냈다. 디자인 비용이 무시되는 현실, 임금도 안 오르는 곳, 야근과 밤샘이 일상이고 일을 해주고도 돈을 못 받아 문을 다는 사무실… 이런 상황이 나아질 것이냐는 물음에 현직 디자이너가 ‘그렇다’라는 답을 내놓지 못하니 어떻게 후배들을 오라고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편집디자이너도 신규인력 진입이 안 되어 고령화 추세라고 한다. 이것이 디자이너 강국을 꿈꾸는 대한민국, 충무로 을지로 일대 출판·편집디자이너들의 현실이었다.

다행인 것은 이진훈 씨처럼 편집디자이너들의 권리향상을 위한 실천을 모색하는 사람이 있고 노동조합이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그의 입에서 “편집디자이너가 되십시오. 창작 보람도 있고 자기만족도 느낄 수 있는 직업입니다.”라는 말이 나오는 날, 그때가 바로 디자인 강국이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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