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무술연기자는 민영보험회사에서도 보험 가입이 안 되는 ‘특수고용노동자’다. 분명 노동으로 돈을 벌고 있지만 이들에게는 보너스도 퇴직금도 없다. 노동조건도 일이 있으면 돈을 버는 노가다와 별다르지 않다. 목숨 내놓고 일해 왔는데 방송국에서는 산재보험 혜택도 없었다고 한다. 다치면 내 돈으로 치료하는데다 일도 못 해 돈도 못 번다. ‘건강하게, 다치지 않고, 다치더라도 제대로 치료받는’ 연기환경을 위해 무술 연기자들이 지난 7월 노조를 결성했다. 이분들, 무슨 생각으로 노조를 만들었는지 꿈틀이 들여다보았다.
- 노조 출범 후 약 두 달이 지났다. 집행부 구성과 현재 어떤 활동을 가장 주력하는 지 말해 달라.
= 김범석 지부장(이하 김) : 지부장, 오세영 부지부장, 윤연규 사무국장, 총무부장 이렇게 4명이 집행부로 일하고 있고 조합원은 70여명이다. 일을 해야 하니까 상근하는 것은 아니고 어려운 일은 뭉쳐서 상의 하에 일하고 있다. 지금 3사 방송국과 협상 중에 있다. (산재) 보험에 관한 문제다. 3사 방송국들은 보험에 들어있다고 하나 우리는 실질적인 혜택을 못 받고 있었다. 요번에 자세하게 알아보니 우리가 다치면 4백에서 6백만원 정도가 산재보험에서 나오고 사망했을 때는 1억5천만원~2억 정도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부분이 약하니까 보험료를 더 인상해서 무술연기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고 3사 방송국 국장에게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그 다음 문제는 위험 난이도에 따라 플러스 알파를 요구하고 있는데, 3사 방송국 재정상태가 사실 어렵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보류 중이다.
- 산재보험이 있었는데도 지금까지 집행이 제대로 안 된 이유는 무엇인가?
= 김 : 현장 감독이나 행정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 잘 모른다.
- 일반 사람들은 단순히 스턴트 맨 정도로 무술연기자들을 인식하고 있다.
= 김 : 우리나라는 무술연기자와 스턴트 맨 구분이 안 되어있다. 연기자 한 명이 전부 다 한다. 말을 타든지, 오토바이를 타든지, 고공낙하, 몸에다 불을 붙인다든지. 외국은 분야가 나눠져 있다. 불 붙이는 사람 따로, 오토바이 타는 사람 떨어지는 사람 다 따로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한 사람이 다 소화한다. 무술 연기자지만 무술 연기자 및 스턴트 맨이라고 하면 정확할 것이다. 그 사람이 전부 다 소화한다고 보면 된다.
- 스턴트는 위험한 액션을 대역하는 것이고 무술 연기자는 말 그대로 무술을 연기하는 것이라고 정리하면 되나?
= 김 : 그렇다. 싸움하는 장면, 칼싸움 등인데 크게 보면 다 포함된다.
- 정두홍씨는 꽤나 유명하다. 어느 순간 연기도 했다
= 김 : 연기도 하고, 무술 감독도 하고 스턴트 맨으로서 활동도 하지만, 만능을 가지고 할 수는 있지만 특출난 것은 무술감독이나 스턴트 감독이다. 연기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싶지만, 현실이 안 되서 결국 연출자로 간다.
- 안전사고가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촬영 여건을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 오세영 부지부장(이하 오) : 촬영할 때 앵글을 중심으로 갈 것인지 사람 안전 중심으로 갈 것인지 문제가 되는데 우리나라는 앵글 중심으로 간다. 좋은 그림을 만들기 위해 시간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무술연기자가 ‘불안하다’라고 주장하는 순간, 즉 안전하게 좋은 그림이 나올 수 있는 촬영 여건을 요구하는 순간 제작비가 늘어난다는 현실을 잘 알기 때문에 우리 쪽 입장만 주장할 수 없다. 어느 시점에서 목소리를 높여야 할지 상황을 보고 있다. 황무지에서 곡괭이질을 하면서 길을 내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 ▲무술연기자노조 오세영 부지부장
- 옛날과 비교해서 촬영여건은 좋아졌나?
= 김 : 장비면에서는 정말 나아졌다. 자동차 씬 찍을 때, 옛날에는 그냥 찍었는데, 지금은 의자도 바꾸고 사전에 (안전문제를) 상의해서 간다. 하지만 임금은 그렇지 않다. 물가상승률을 생각한다면 좋아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 무섭지 않나?
= 오 : 늘 무섭다. 긴장을 많이 해서 촬영 전에 밥을 못 먹기도 한다. 유현상이란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낮에 차량 정면충돌 촬영이 있었고 나는 저녁에 6층 건물에서 뛰어 내리는 촬영이 있었다. 나는 낮에 밥을 잘 먹는데 그 친구는 그러지 못 한다. 저녁이 되면 반대다. 촬영을 끝낸 그 친구는 밥을 먹고 나는 못 먹는다. 하지만 스릴을 느낀다고나 할까? 촬영을 하면 감독, 배우, 스탭 등 200개의 눈이 모두 나만을 쳐다본다. 그리고 안전하게 촬영이 잘 끝나면 모두들 박수를 치는데, 스스로 대견하다는 느낌이 든다.
- 어떤 점이 가장 아쉬운가?
= 오 : 무모하게 일하다 다치거나 돌아가신 분이 많다. 내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도 한다. 문광부에서 지원을 해 재활치료나 후유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기관이나 지정병원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문광부도 영진위도 무술연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낙후된 촬영여건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하면 우리나라는 조명분과, 연기분과 등은 있는데 무술분과는 없다. 정말 잘 되면 대종상에서 액션씬 상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 김 : 우리는 아프면 사우나를 가거나 파스를 붙이는 게 다다. 한 마디로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인데, 무서워서 병원에 가지도 못 한다.
- 조합비를 따로 걷고 있나?
= 김 : 자비로 하고 있다. (노조를) 하기로 한 것이니까 (무술연기자들에게) 최대한 해주고 싶다.
- 노조를 결성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 김 : 처음에는 어려웠다. ‘우리팀’을 만드는 거 아니냐는 오해가 있었다. 그래서 “아닙니다”라고 완강하게 말하고 설득했다. 사람들이 노조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악한 말로 내가 돈 착취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들었다.
= 오 : 제일 어려웠던 것은 내부다. 우리 쪽 식구들에게 노조 개념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어려웠다. “굳이 만들 필요 있냐? 더 귀찮지 않냐?”고 했다. 아마 방송사에서 주는 불이익을 염려했을 것이다.
= 김 : 노동3권을 몰랐는데 인터넷에서 공부했다. 조합원을(무술연기자) 위한 자리가 필요했다. 나이 들면 정말 할 일이 없다. 나이 오십, 육십 가서 구멍가게, 체육관 차려 잘 될 거냔 말이다. 한 후배가 이 계통 떠나면서 “우리는 회사원이 아닙니다. 퇴직금도 보너스도 없습니다. 그래서 떠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무술연기자는 개인사업등록을 해서 자영업 상태다. 이런 우리를 위한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 산재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고 했는데?
= 김 : 4차 협상에서 얘기가 나왔다. 방송국도 산재보험이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부러지면 붙이면 되지’하는 정도였다. 다치면 개인이 치료하고 방송국에서는 전혀 보상이 없었다. 작년 겨울에 촬영 도중 코뼈가 부러졌는데 다친 상태에서 촬영을 마쳤다. 문경에서 서울까지 혼자 가서 치료했다. 이후 방송국에서는 아무 말도 없었다. 가장 먼저 감독들이 산재보험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SBS는 행정반이 나오는데, 다치는 걸 보면 치료해 준다. 다치면 나을 때까지 치료해줘야 우리도 문화, 예술하는 보람을 갖는다. 앞으로 약 6차례 정도 협상이 남았는데, 좋은 결론이 나도록 할 것이다.
-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가장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 김 : 사전제작제가 지켜져야 한다. 대게는 촬영 당시에 필요하면 부른다. 준비는 하지만 사전 연습 시간이나 공간이 부족해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외국은 폭탄이 터져 날아가는 장면을 위해 3일정도 연습한다. 물론 모든 장비와 연습공간을 제공해 준다. 내일 또는 아침에 촬영이 있으면 새벽 2~3시에 전화가 오는 경우도 있다. 언제, 어느 때 촬영이 있을지 모른다.
= 오 : 방송국과 사전에 협의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 노조는 결성도 중요하지만, 발전해가는 모습도 중요하다. 앞으로 활동방향이 궁금하다.
= 김 : 우선은 홍보다. 대중에게, 방송사에 스턴트가 뭔지, 무술연기가 뭔지 알려야 한다. 지금 스턴트가 뭔지, 무술연기가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한 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공연이 되도록 할 것이다.
오세영 부지부장은 인터뷰 말미에 “홍콩에서 우리를 초빙할 정도로 우리는 실력이 있다”며 성룡이 주연한 취권에 나온 악당이 바로 ‘우리나라 무술연기자’라고 했다.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는 인정받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목숨을 담보로 일하고 있음에도 ‘대역 연기’라는 탓에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얼굴 한 번 제대로 나온 적 없는 무술 연기자들.
산업 현장에서 언제 손가락이 잘릴 지, 언제 과로사 할지 모르면서 자본의 이윤 창출을 위해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술연기자 노조, 그들이 다짐한 목표들이 차근차근 이뤄져 산재보험 혜택도 받고 원하는 공연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충분한 연습공간과 시간 확보를 통해 ‘진정한 액션배우’가 탄생할 것도!
▲ ▲인터뷰 말미에 찾아온 조합원들과 함께
[덧붙이는 글]
2005년 10월 일과건강이 “꿈틀”이었던 시절 인터뷰이다. 벌써 3년이 지난 얘기이지만, 너무나 소중한 노동자들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