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일과건강 2008년 5월호
4월 한 달 돈벌이를 포기한 건설노동자가 있다.
건설노조 대전충정강원지부 노동안전부장 정영홍 씨이다. 토목건축에서 잔뼈가 굵은 경력 18년의 이 건설노동자는 노동자 건강권 쟁취의 달인 4월에 안전보건 현장을 누비며 다녔다. 체불임금을 받으려다 사망한 건설노동자 故이철중 동지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활동하던 중 민주노총의 노동자건강권쟁취순회투쟁단(이하 순회투쟁단) 이야기를 듣고 ‘왠지 와 닿는 느낌’과 ‘간부이기 전에 한 조합원으로 ‘(노동자 건강권의 중요성을)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누가 들어도 쉽지 않은 일을 ‘저질렀다.’
# “같이 자고 자전거 타니 어느새 한 가족”
그는 순회투쟁단 일원으로 4월 21일, 울산에서 시작해 포항 부산 창원 여수 광주 대전 이천 그리고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문화제가 열린 28일의 서울까지 노동안전보건 현안이 있는 지역을 돌아 곳곳을 누볐다. 아무나 쉽게 못 들어가는 포항 현대제철소 안에도 들어가 보고 지역본부 강당 찬 시멘트 바닥 위에 스티로폼과 딸랑 침낭하나로 잠을 잤다. 시민들에게 인사와 함께 선전물도 건네주었다. 시내 백화점, 터미널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은 자전거를 타고 돌며 우리나라의 심각한 산재사망 문제와 노동자 건강권의 중요성을 알렸다. 순회투쟁단이 나눠주는 선전물을 본 시민들은 “아직까지 이런 일이 있냐?” “어디서 나왔냐?” “마음이 안 좋다.” “고생한다.” 등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선전물을 외면한 사람도 있었다.
“지역에만 있어 다른 건 잘 몰랐는데, 순회투쟁단과 함께 다니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정 부장은 “잠도 같이 자고 자전거 선전도 같이 하면서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순회투쟁단과) 가족처럼 지냈다.”고 전한다. 노동자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며 조합원을 늘리고, 앞장서는 모습을 보며 하나의 가족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정영홍 부장은 늦깎이 노동조합 활동가이다. 2006년, 지금 그의 활동반경 중 한곳인 대전에서 처음 노동조합을 알았다고 한다. 노동조합을 알기 전 그도 임금을 자주 떼이는 건설노동자 중 한명이었다. “정부, 회사가 외면하는 일을 노동조합은 들어준다.”는 그는 노조에 가입하고 활동하면서 “부모와 선생이 가르쳐주지 않은 ‘많은’ 일들을 배웠다.”고 밝혔다. 체불임금 해결이 그랬고 산업재해 처리가 그랬다. 정 부장은 “비조합원들은 체불임금, 산재를 어떻게 해결할 지 잘 모른다.”며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교육을 시켜준다. 싸우더라도 알고 싸워야 한다.”는 말로 건설노동자가 수없이 겪어야 하는 현실 문제 해결을 위해서 노동조합 조직의 중요성을 대신했다.
# 굴착기 바가지가 노동자를 미는 현장
그는 지역 건설현장의 90%는 ‘개판’이라고 했다. 서울에는 건설사 본사도 있고 관계기간이 많아서 그런지 산재를 줄이려는 노력이 보이는 데 지역은 영 아니란다. “노동자들이 다치든 말든 건물만 빨리 올리려다 보니 사고가 많을 수밖에 없다.”며 열악한 지역 건설현장 이야기를 이어갔다.
건설노동자들은 현장에 늦어도 오전 6시40분까지는 도착해야 한다. 집이 가까운 사람은 6시~6시30분에 나서고 먼 사람은 5시~5시30분에 나선다. 아침밥을 먹기 쉽지 않은 시간이다. 그렇게 현장에 도착하면 안전체조와 아침조회를 한다. 이 자리에서 현장 안전담당자가 “다치고 사망사고 나면 노동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을 한단다. 정영홍 부장은 “회사가 충분하게 안전을 확보하면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며 “안전통로가 있어야 하는데 굴착기(포클레인)와 사람이 같이 다닌다. 그러다보니 노동자가 자재를 메고 가는데, 굴착기(포클레인) 기사가 이를 못 봐 바가지로 노동자를 밀어 사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쉴 공간이 없어 자재 사이에 생기는 그늘 안에서 쉬다 자재가 무너져 다치기도 한다. 정 부장은 자재 안 그늘에서 쉬는 노동자들 잘못이 아니라 원청에서 쉬는 공간을 제대로 안 만들어줘서라며 근본 원인을 지적했다. 또, 비계(아시바) 사이에 발판을 놓지 않은 채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데 비가 오면 100% 사고란다. 원청 직원과의 사소한 그러나 결코 사소하지 않은 사례도 나왔다.
건설노동자들은 일이 끝나도 손 씻을 공간이 없다고 한다. 반면 원청 직원이 있는 쪽은 시설이 잘 돼있어 그쪽에 가서 쓰려면 회사 직원이 한 마디 한다는 것이다. 아예 문을 닫아놓기도 한단다. 그의 표현 그대로를 옮기면 “그럴 때는 정말 다 때려 부수고 싶다.”는 것이 건설노동자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식사 문제도 시급하다. 음식이 대충이고 짜고 싱거운 정도가 먹기에 결코 좋지 않다는 정 부장은 “노동자들은 단 한 가지를 주더라도 제대로 주는 것을 원한다.”고 강조했다.
# 다른 건설현장 알려고 한 곳에 오래 안 있어
정영홍 부장은 그래서 현장을 감시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 중 하나가 스스로가 한 건설현장에서 오래 있지 않는다. 한 군데에 오래 있으면 다른 현장을 모르게 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현장 감시단’이다. 10여개 건설현장에서 건설노동자 1명씩이 감시자가 되어 문제가 있으면 서로 연락을 한다. 당연히 이들의 신분은 비밀이다. 이렇게 노동자가 비밀리에 현장을 감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하 명감) 제도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정 부장은 “현장에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 들어가려면 사전에 원청 허락을 받아야 하고 싸움도 많이 한다.”며 전국의 노안 담당 간부들이 답답해하는 일 중 하나로 명감제도의 부실을 꼽았다.
명감제도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그는 지역 노동청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현장을) 감독해야 할 사람들이 사무실에 있다. 사람이 죽어야 나온다. 문제가 있는 현장을 고발하고 진정하면 잠깐 조사하고 만다. 그 현장을 보름 뒤에 가면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그는 “현장을 점검하고 미리 대비하지 않고 전화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동청이 건설사를 위해 있는 것 같다”며 감독기관을 향한 불신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그래서 정영홍 부장은 5월부터 지역 노동청을 상대로 싸움을 준비할 계획이다.
순회투쟁단 활동에서 만난 지역 건설노동자들을 보고 느끼고 얘기하고 배운 것들도 활용하고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연대하려고 한다. 정 부장은 “노동청을 상대로 하는 싸움은 다른 지역에서도 필요한 일”이라며 “관리감독을 해야 할 사람들이 문제가 터지고 사람이 죽고 나서야 움직이는 현실, 플랭카드 안에서만 존재하는 체불임금신고센터를 바꿔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의 첫 요구는 1년에 3~4번 나가는 검찰 합동 점검에 노조가 함께 들어갈 권리 확보이다.
법에 있는 내용도 안 써먹는 노동청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활동이라는 정영홍 부장. 아무래도 그의 5월은 4월보다 바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