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노동자에게도 등급이 있다? 없다?
21세기에는 있다고 답해야 하지 않을까? 정규노동자, 비정규노동자, 영세사업장노동자, 파견노동자, 하도급노동자… 처지와 고용관계 여부에 따라 여러 구분을 할 수 있는 시대다. 여기에 노동자이지만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도 있다. 그리고 그들의 노동자성 인정을 요구하며 2000년부터 싸워온 조직도 있다. 바로 ‘민주노총 특수고용 대책회의’ 이다.
# 노동자와 차별받는 노동자
민주노총 특수고용 대책회의에는 학습지, 보험모집인, 레미콘, 덤프, 화물운송, 골프장 경기보조원, 퀵서비스, 대리운전, 간병인, 애니메이션, 철도매점 등 13개 직군의 특수노동자들이 모여 있다. 대책회의가 결성된 시점은 2000년.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열린 서울비정규대책회의에 참가하던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비정규노동자와는 또 다른 차별을 받는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정부와 사용자가 씌운 개인사업등록자 혹은 자영업자라는 굴레 때문에 노동 3권도 보장받지 못 하고 4대 보험 혜택도 전혀 없었던 것이다. 당시 모임 주축은 학습지, 보험모집인, 건설의 레미콘, 골프장 경기보조원 노동자들이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모임 필요성에 동의한 이들은 바로 ‘특수고용대책회의’를 결성하였고 이를 민주노총 중앙에서 받으면서 ‘민주노총 특수고용 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라는 정식 명칭을 사용했다. 민주노총의 정식기구이고 비정규담당자가 배치되어 이들과 함께 한다.
2월 25일 노동부가 내놓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시행규칙』 이후 다시금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산재보험 적용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관련 이야기를 나누고자 대책회의를 이끄는 고성진 의장을 동부비정규노동센터에서 만났다. 노동부의 전면개정안이 나온 이후 기자회견, 노동부 앞 집회, 관련 토론회를 열며 대정부 투쟁의 강도를 높이는 듯했던 움직임이 다소 주춤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책회의 결성 과정과 현재 상황을 얘기하며 “(특고노동자들이) 조그만 노조이고 상근자들이 별로 없어 바쁘면 회의에 늦고 못 오기도 하지만 소속 노동조합 대표자들은 거의 같은 뜻으로 논의하고 연대한다.”며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 희망으로 투쟁하고 있음을 전해주었다.)
▲ 정부가 25일 발표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보호대책'과 관련, 민주노총이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를 반박하고 나섰다. ⓒ 참세상
# 100% 사업주 부담이 왜 50%로?
인터뷰 주제는 노동부 개정안의 문제점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고성진 의장은 가장 먼저 “산재보험료는 엄연히 법에 사용자가 100% 내도록 되었는데, 그 적용을 안 하고 50대50으로 한 것은 정말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퀵서비스, 대리운전, 덤프, 화물 등 당장 산재법이 필요하고 시급한 곳을 배제했다. 기존에 논의되던 보험모집인, 학습지 교사, 레미콘 기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4개 직군만 적용한 것이다. 더 나아가 골프장 경기보조원은 산재 얘기를 할 때마다 100% 사업주가 내는 걸로 했는데 갑자기, 그것도 50대50으로 변경되었다.”며 노동부 개정안을 비판했다. 지금까지 논의되어 왔던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안이라는 것이다.
노동자와 특수고용노동자를 구분하는 방식에는 주로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이나 위촉 등 용역 형태의 계약서를 쓰거나 자영업자로 등록된 경우이다. 고성진 의장은 위와 같은 계약형태가 사용자들의 강요로 되었고 노동조합 설립필증을 받은 노동조합도 있는 만큼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일하는 공간이 실내가 아닌 실외일 뿐 사용자의 지시와 통제아래 일한다.
고 의장은 참여정부에서 총리를 하던 사람이 “이 사람들은(골프장 경기보조원) 노동자가 맞다.”고 한 적도 있다며 골프장 경기보조원 사례를 시작으로 얘기를 풀어갔다.
“골프장 경기보조원은 골프장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안에 있다. 보험모집인, 학습지, 레미콘 등의 직군들은 출퇴근 할 때 바깥에서 한다. 정부는 이들이 밖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사실 이런 것에 명확하게 반박할 자료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레미콘 노동자들은 회사에서 레미콘을 싣고 현장까지 갔다가 인수증을 받고 다시 들어온다. 한번이라도 더 나갔다 와야 하기 때문이다. 밖에서 일을 하지만 회사가 지정해준 곳으로 도로를 왔다 갔다 할 뿐이다. 학습지 교사도 회사에 들려서 공부를 준비하고 지정된 학생들을 만나는 것이다. 밖에 나가지만 사실상 회사가 지정한 장소와 업무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노동조합 필증도 나온 것이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사업주와 하는 계약조건만 다를 뿐 (노동자와) 다 똑같다.”
개인사업자등록 문제도 오염된 정보를 가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고 의장에 따르면 회사로부터 강제로 차를 불하받아야 했던 덤프, 레미콘, 화물운송은 개인사업자등록증이 있지만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보험설계사, 간병인, 퀵서비스, 대리운전 등 다수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없다고 한다. 개인택시 운전사처럼 스스로 개인사업자등록을 한 것이 아니라 월급쟁이로 들어갔던 노동자들이 ‘차를 불하받지 않으려면 그만두라’하니까 명의만 옮겼다는 것이다.
그는 “개인사업자등록증은 있지만 번호판은 회사가 관리한다. 이런 식으로 하니까 아주 정말 애매모호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정부, 노동부가 들어선다면 명백하게 밝혀질 수 있다. 모든 특수고용노동자가 사실 힘이 없고 노동부가 자본의 편을 드니까 특수고용노동자들이 10년을 가까이 투쟁해왔지만 노동3권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며 힘의 차이 탓에 겪어야 하는 한계를 솔직히 드러냈다.
# 하루 종일 노동부 앞에서 놀아보자
3월 중순 이후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특별한 움직임이 없다고 하자 고 의장은 총선이 끝나면 과천 청사 앞에 가서 집회가 아니라 체육대회 형식으로 하루 종일 그곳에서 보낼 계획이라는 것이다. 특수고용노동자의 처지를 고려한 기막힌 항의 전술이었다.
“공도 차고 농구도 하고 먹을 것도 차리고 징도 울리면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3권과 (제대로 된) 산재법 적용을 위해서 하루 종일 놀겠다.”며 많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종일 ‘놀’ 계획을 준비 중이란다. 하루 일당 포기하지 않고 사업주 눈치 안 보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시간 날 때 와서 함께 하면 된다. 그야말로 놀이와 투쟁이 일치이다.
# 실적 올리려고 노동조합 가입
고성진 의장이 노동조합 일을 하게 된 계기는 독특하다.
출판사 영업을 하다 보험회사에 들어간 것이 1992년. 이때에는 의료보험, 퇴직금도 있었고 1996년부터 문제가 되었던 잔여수당도 제 때 지급되었다고 한다. 6년 동안 보험 영업을 하고 3년 정도는 다른 일을 했던 그는 2001년 다시 이쪽으로 돌아왔다. 그 세월동안 보험업계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노동자에게 불리한 변화들이 많았지만 노동조합 만들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고 의장은 회사에서 법인 영업을 담당했는데, 계약을 위해 노동조합을 출입했다. 복지차원에서 회사가 보험계약을 하는데, 이런 요구를 노동조합이 했기 때문이다. 계약을 위해 노동조합 관련 공부까지 했다는 그다. 그러다 민주노총을 가게 되었고 거기서 전국보험모집인노조(이하 노조)를 보았다. 그때가 2001년 8월이었다. 당시 노조는 설립 준비단계였는데, 고성진 의장은 ‘자신도 보험 모집인’이니까 당연히 가입했다. 영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집회에도 열심히 나갔다. 한편으로는 노조 동대문 지부장을 맡아 조합원 조직에도 열을 올렸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눈에 띄기 마련일까?
9시 뉴스 집회 현장에서 전경과 몸싸움을 벌이던 그를 회사 경영진이 보았고 3개월 만에 해고되었다. 영업을 잘해 억대 연봉을 받았던 사원을 단 하나의 이유, ‘노조한다’는 것 때문에 자른 것이다. 문제제기하면 당연히 복직될 줄 알았던 그는 복직투쟁을 하면서 노조 상근간부를 맡아 활동을 했다. 그리고 고성진 의장은 아직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2001, 2년에 7천까지 조합원이 조직되었지만 지금은 거의 없다. 활동가들도 다 잘렸다. 집회 몇 번나갔다고, 노조 활동을 하는 동료에게 물건을 주었다는 이유로 하나 둘씩 해고되었다. 조직수가 줄다보니 활동이 뜸하게 되고 이제는 노조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6~70%다.”라는 고 의장. 하지만 그는 ‘노동조합’ 인정을 위해 끝까지 싸울 뜻을 밝혔다. 전국보험모집인노동조합은 아직 법외노조이기 때문이다. 2000년 10월 5일, 영등포구청에 노조 설립 신고서를 냈지만 거부당했고 노조인정을 위해 영등포구청 앞에서 한 달 반 정도를 싸웠지만 보험모집인들에게 ‘노조설립필증’은 교부되지 않았다.
노동조합을 하는 동안 힘든 기억이 더 많다는 고성진 의장은 그러나, “부당하게 해고된 조합원이 그래도 노조를 믿고 문제를 얘기하고, 노조가 이를 제기해서 복직이 되는” 걸 보면 뿌듯하다고 한다. 그렇게 도움을 받은 사람 또한 일을 하는 동안 끝까지 조합원 신분을 유지한다고 전했다.
앞으로 계획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고성진 의장은 “장기 계획은 근로기준법을 확대해석 할 수 있도록 개정하는 싸움을 벌이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특수고용노동자 대표자 중심의 모임에서 이들이 속한 상급단체와 같이 논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어 일과건강이 다양한 직군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많이 만나 그들의 삶을 알려달라는 당부도 했다.
2000년부터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산재적용을 논의해 왔던 정부는 노동자성을 인정하던 추세에서 그렇지 않다는 쪽으로 태도를 서서히 바꿔왔다. 사용자 눈치를 봤다는 것 외에 딱히 변명을 찾을 수 없다. ‘제대로 된 정부’가 언제 들어설지는 모르지만 그때까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싸움은 이어질 것 같다. 싸움의 결과가 ‘노동자성 인정’ ‘제대로 된 산재보험법 적용’이 될 때까지 일과건강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삶과 건강권에 시선을 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