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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일과건강 2008년 3월호




“한마디로 굉장히 부실한 조사였다.”


2월 20일 한국산업안전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하 연구원)이 발표한 ‘한국타이어(주) 역학조사 최종 결과’의 평을 내려 달라는 질문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임상혁 소장(산업의학 전문의)의 짧고 간략한 대답이다. 

한국타이어유가족대책위원회 자문의사 구성원으로 연구원 역학조사 자문위원회에 참여한 그는 “조사 결과를 보면 유추할 수 있다.”며 ‘부실한’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공단 공권력 수준을 알아봤다


첫째는 작업환경측정을 할 때 환경이 개선되거나 청소해서 과거 모습이 반영 안 된 점이다. 이런 문제는 기술적으로 ‘보정’을 할 수도 있는데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것은 작은 이유고 주요 문제는 뇌심혈관계질환, 특히 심장질환에는 노동시간, 과로가 굉장히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데 그에 대한 조사가 들어있지 않은 문제를 강조했다. 

간단하게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노동하는지조차 조사가 안 되었다고 지적했다. 임상혁 소장은 한국타이어 회사 측의 비협조도 있었지만 정부 공권력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건지, 조사할 의지가 없는 건지 의심스러웠다고 밝혔다. 

세 번째로 현장 노동자들의 인터뷰 부재를 지적했다. 사망사고, 노사관계, 노동조건의 문제는 공식 자료에서 정보를 얻는 한계와 제한이 있어 현장 노동자들의 인터뷰가 꼭 필요한데, 연구원에서는 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답답한 일”이라며 “연구원이 어쩐 일인지 객관적 자료만을 이용해서 분석하였다고 하는데, 사실 그것은 회사가 준 일방적 자료였다.”며 “오히려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하고 느끼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객관성 있는 자료를 얻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임 소장은 뇌심혈관계질환에 지속적 영향을 미치는 노동조건 조사도 전혀 안되었다며 “워낙 잔업 특근을 많이 하는 교대제인데, 노동자가 얼마나 어떻게 일하는지의 조사도 없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사실, 임상혁 소장을 3월 인터뷰 대상으로 결정한 계기는 2월 14일 편집회의를 하던 중 온 그의 전화 때문이었다. 그날은 연구원에서 ‘2차 한국타이어(주) 역학조사 전문가 자문회의’를 하던 날이었다. 유족 자문의사단으로 회의에 참석한 임상혁 소장은 “역학조사 결과가 아무래도 안 좋게 나올 것 같다.”며 흥분한 목소리를 전달했다. 한국타이어 문제 해결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지 분수령이 될 역학조사 결과가 ‘업무와 관련성이 없다’라고 난다면 회사 측에 면죄부를 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편집회의는 긴급하게 지금의 이런 과정을 독자들에게 알려야한다고 결정했다.


이보다 더한 드라마는 없다   


1, 2차 자문회의에 참석했던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1차 회의에서 임상혁 소장은 역학조사를 담당한 공단 전문가들이 기본적으로 업무 관련보다는 개인적 요인이 더 강하다는 생각을 가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연구원이 내린 사망 원인들이 회사의 잘못된 노무관리, 연령 증가, 보건관리 부재 등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전문가 회의에서 결론은 뒤집어졌다. 

그는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은 퇴직 이후가 아니라 대부분 현장에서 일하다 돌아가셨다.”며 “회사에 있을 때는 보건관리를 잘 안하고 퇴직해서는 잘 하는가? 퇴직 이후에는 오히려 사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연령의 증가라고 했는데, 퇴직하고 나이를 거꾸로 먹는 사람은 없지 않는가?” 반문하며 이런 논거로 업무 관련성으로 바꿀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2차 자문회의에서 수정보고서를 봤는데 1차 회의 결과와 별다른 차이 없는 내용이 그대로 있어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유가족 자문의사단도 연구원 역학조사 팀이 조사했던 자료 말고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 자료를 가지고 다시 반박해야 했다. 

“심장 사망률이 일반인 모집단에 비해 높다는 것, 심장질환 사망자의 대부분이 현직에서 사망한 것이 가장 주요한 원인이고 그밖에 교대시간 문제, 과로 등을 이유로 다시 결과를 뒤집었다.”며 “정말 역전에 재역전에 재재역전이었다.”며 임 소장은 당시 느낌을 전달했다.


실제 발표된 역학조사 결과에는 “한국타이어(주)의 허혈성심장질환에 의한 표준화사망비는 현직 근로자에서 전국 사망통계에 비해 2006년에 5.6배로 유의하게 높았다.”는 내용이 있다. 결국 이런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수집, 분석된 자료를 토대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자면, 첫 번째 가능성은 직무와의 관련성이다. … (중략) … 허혈성 심장질환에 의한 사망이 사무직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던 반면 현직 중에서도 현장직, 연구직, 기술직에서만 발생하였다는 점에서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이 현직 수행 중 특히 현장과 연관될 수 있는 직무(현장, 연구, 기술)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추정된다.”는 결론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셈이다. 결국 장시간 노동과 교대노동, 조직문화가 한국타이어 노동자 사망과 어떤 관련이 있는 지는 과제로 남게 되었다. 

임상혁 소장은 “옛날에는 이런 문제가 있으면 지원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원진 레이온, 송면이 싸움,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죽었다하면 여러 사람이 지원을 했다. 그런데 한국타이어는 그게 별로 없다. 지역에서 대책위가 만들어져 열심히 하지만 네트워킹이 없고 초창기에 전문가들이 결합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이어 한국타이어 문제를 접하면서 “운동 내부에서 자기 네트워크를 갖지 못한 게 아닌가 싶고 우리가 상당히 많은 동력을 잃어버린 같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그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 같던 한국타이어 문제가 역학조사까지 하고 직무 연관성을 인정받은 것은 작지만 큰 승리라며 앞으로 노동조합 민주화, 회사 책임자 구속까지 이어지도록 싸움이 가야한다고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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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 과로사회 추방 기획단장’이기도 하다. 임 소장은 과로사회 추방이란 화두를 전체 노동운동, 시민운동에 던져야 할 시기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사람들은 일 많이 해서 월급 많이 받고, 고용불안정을 대신할 경제적 이득을 많이 챙기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과로사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단면을 한국타이어와 언론의 보도 태도로 예를 들었다. 

즉, 한국타이어 노동자가 일 많이 해서 죽는 것은 그냥 죽는 것이고 “독가스 때문에 죽었다!”하니까 언론을 많이 탔다는 것이다. 임상혁 소장은 한국타이어 사건이 좋은 기회고 사건이라며 “노동자들이 자기 삶의 가치, 노동의 질이 어떤 것인지를 돌이켜 보는 시간이 왔다. 노동자가 사람답게 건강하게 일하고 행복한 삶을 찾을 수 있는 노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한국타이어”라며 또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그래서 그는 좋은 노동, 괜찮은 노동이 어떤 것인지를 노동자들끼리 논의해보자고 한다. 잠 못 자며 잔업 많이 해 애들 학원비 내주는 것이 좋은 노동인지, 아니면 저녁에 시간 갖고 아이들과 놀러가거나 시장바구니 들고 부인과 같이 장에 가는 것이 더 좋은 삶인지 논의할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져 갈수록 사교육비도 늘고 여러 면에서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데, 사회 인식을 바꿔야 하는 그런 논의가 가능할까? 이런 우문(愚問)을 그는 아주 명쾌하게 정리했다. 

“그럼 다 죽으라고 해야 한다. 학원도 24시간 하라하고. 노동자 삶이 걸려있는 문제이니 노동계에서 이제는 어떤 노동이 질 좋은, 괜찮은 노동인지 보여주어야 한다. 안 그럼 다 죽는다.”


임상혁 소장은 의대 본과 2학년 때 노동과건강연구회(현재 노동건강연대 전신)를 접하면서 원진레이온 환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구로의원, 노동건강연대 대표, 원진 연구소 등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노동자건강권 운동’의 궤적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의사라는 특권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하지만 임상혁 소장의 지난 20여년은 그런 특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조사, 특수건강검진제도, 산재보험, 석면, 한국타이어, 과로사 등 노동자 건강권 문제가 있는 곳이면 늘 노동자 곁에서 현장과 과학에 근거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책임감 있는 전문가였다. 화내는 일이 없고 강의, 토론, 조사 뒤 그곳 노동자들과 소주 한잔 기울이는 소통을 좋아하는 임상혁 소장에게도 나름대로 속상한 일이 있다. 가장 최근에 겪은 일이다. 

“한국타이어 대전대책위원회에 가서 역학조사 자문회의 결과를 설명하는데, 지역에 계시는 누군가가 ‘자문단 해체하라’고 했다. 이유는 정부에서 관련 없다고 나올 것이 뻔한데, 유족 자문단으로 거기 가서 손들어 주는 것 아니냐, 이런 거였다. 너무 황당했다. 회의 결과 열심히 설명하고 자문단은 앞으로 이렇게 할 것이라고 얘기하러 갔는데…. 굉장히 허탈했다.” 그는 이런 유의 공격을 받을 때면 해명이 필요한 것은 적절한 기회에 하지만, 논쟁할 꺼리가 안 되면 그냥 속상해 하고 만다고 한다.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깎아 내리면서 자기의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건강권 운동 ‘선배’로서 이쪽에서 일할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냐는 말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큰 그림을 그리고 조직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 어줍지 않게 전문가 흉내를 낼 필요는 없다. 현장 노동자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원하는 지 조직하고 이것을 전체 노동운동 속에서 어떻게 녹여들어 갈 것인가가 중요하다.” 몸매만큼 넉넉한 웃음을 잃지 않는 임상혁 소장은 앞으로도 ‘현장성과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로 노동안전보건운동에서 노동자 뒤를 든든히 받혀주는 버팀목일 것이다. 괜찮은 전문가 동지 한명 사귀고 싶다면 현장이나 집회, 토론회에서 그를 만났을 때 “소주 한잔 하시죠.” 해보자. 예의 그 넉넉한 웃음과 함께 이런 답을 얻을 것이다.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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