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일과건강 2008년 2월호
2007년 6월, 터파기 및 토목공사 진행 과정에서 20m 높이 타워크레인 붕괴로 중국교포 사망, 작업자 4명 부상. 그해 10월. 지상 30m 높이에서 떨어지는 건설자재(34kg)에 맞은 중국교포 사망. 그리고 다시 12월. 건물 4층에서 개구부 거푸집을 해체하던 중국교포, 3층 바닥으로 추락 사망.
지어낸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니다. 위에 언급된 산재사망사고 현장은 충북 청주의 청주산업단지 내에서 공장을 증설 중인 하이닉스 건설현장이다. 현대건설이 시공사인 이 건설현장은 죽음의 건설현장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노동부를 포함한 행정부도 사법부도 시공사도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세 건의 사고 모두 중국교포였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흔히 건설현장에서 일어나는 산재사망이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경제특별도를 추구하는 행정부와 이명박 당선인의 ‘불도저’ 정신을 함양시킨 현대건설과의 짬짜미일까?
# 충북본부가 하이닉스 건설현장 문제에 집중하는 이유
지난해 6월에 발생한 사고 때부터 이 문제를 제기해 온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이하 충북본부)는 1월 22일 ‘하이닉스 건설현장 정보공개 자료 및 산재은폐 사례 공개와 민주노총 충북본부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가졌다. 충북본부는 이 자리에서 단병호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노동부 대전지방노동청 청주지청(이하 청주지청)의 특별감독 결과에서 중요 내용과 현대건설의 산재은폐 사례를 공개했다. 특히 특별감독으로 적발된 안전조치 위반 항목이 시정되었다는 청주지청의 말이 사실이 아님을 입증하는 사진을 공개, 노동부가 공포의 산재사망․사고 현장인 하이닉스 건설현장을 제대로 관리, 감독하는 지에도 의구심이 들게 했다.
충북본부가 이렇게 하이닉스 건설현장에 집중하는 이유는 그곳에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현장에 거의 조합원이 없다고 봐야 한다는 김성봉 부장의 대답에 어리석지만 “그럼 왜 이렇게 매달려서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현장에 조합원이 많으면 민주노총이 이 작업을 하는 데 이렇게 힘들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실제 6월 사고가 났을 때 민주노총에서 입장을 냈고 10월 사고에서는 크게 개입하지 못했다. 12월 사고가 터지기 전부터 ‘하이닉스, 문제 있지 않냐’는 공감이 있었고 사고 터지고 나서는 ‘이거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 했다. 12월 사고는 바로 민주노총 입장을 내고, 노동부도 찾아가고 했는데 실제 현장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문제의 심각성은 계속 밝혀지는데. 이렇게 일이 커질지는 몰랐다. 그런데 해보니까 양파 까듯이, 까면 깔수록 계속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언제까지 진행될지 모를 정도이다.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라 하지만…, 실제 건설노동자들이 작년에 청주지역 인근만 30여 명이 현장에서 산재사고로 사망하였다. 그걸 미리 알고 있었고 내년에는 건설현장에 지역본부 노동안전보건에서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하이닉스가 터진 것이다. 실제 올 해 민주노총에서 지자체나 공공부분, 비정규 실태조사를 하고 있고. 미조직된 비정규노동자들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하는 역할들을 충북지역본부가 가진 의지였고 그 연장선에서 끝까지 하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하이닉스 반도체 A-project 신축공사(시공사 현대건설)’에서 A-project는 공기를 단축하고 최단기간에 끝내는 프로젝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김성봉 부장은 “24시간 근무이다. 식사시간인 3시간을 제외하고는 현장이 항상 돌아간다. 그렇다고 꼭 3교대냐? 그것도 아니다. 용역업체를 통해 일하러 온 사람들에게 “당신 철야할 수 있냐?” 물어본다. 철야를 못한다면 일을 안 주고, 할 수 있다면 들어간다. 확인하는 과정에서 심지어 최대 16시간 일을 했다고 하더라. 실제 그 뿐만 아니라 추석 때도 현장을 계속 돌렸고 공휴일 일요일도 없다. 명절도 상관없이 현장이 항상 돌아간다.”
#3건의 산재사망은 예정된 사고였다
김 부장은 “안전장비가 있지만 착용을 하라고 안전요원들이 지시도 제대로 안 한다. 이런 것들이 인터뷰 과정에서 다 드러났다.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으면 공사현장에 투입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없다. 건설현장에서 오래 일한 사람은 “현대건설 현장은 80년대, 90년대 초 현장 같다.”는 얘기를 한다. 왜 그러냐면, 요즘에는 (안전장비를) 안 하면 지적이라도 있는데 그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듣게 되면서 현장이 정말 참혹하겠다, 끝까지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며 이 문제를 결코 쉽게 넘기지 않겠다는 뜻을 재차 밝혔다.
‘백야’를 이루며 일을 시키는 빡신 노동강도, 허술한 안전조치, 게다가 노동부의 허술한 관리까지 사고가 안 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곳이 바로 현대건설 청주 하이닉스 건설현장이다. 사실, 일어난 사고들은 예견된 것이었다. (주)고려안전연구원이 2007년 6월 17일부터 18일까지 실시한 하이닉스반도체 A-project 신축공사 ‘안전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본 현장은 공사 수행 중 추락, 낙학, 전도, 충돌 및 협착, 붕괴, 화재 및 폭발, 감전재해 예방 등에 대한 지속적인 안전대책의 수립 및 시행이 필요함”이라며 현장의 위험성을 경고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3건의 산재사망 이후에야 청주지청이 움직여 공사 중지명령과 특별감독에 들어갔고 59건의 위법사항을 적발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자료공개를 요구한 충북본부에게 “자료를 보여줄 수 없다.”며 “개인으로 와서 사진만 보고 가면 안 되겠냐?”고 했다. 더군다나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산업안전과 면담이 끝난 1시간 뒤에 공사 중지명령이 해제되었다고 한다.
“현장을 열면 문제가 해결되는데 청주지청에서는 국가기간산업이다, 반도체 산업이다 이러면서 현장도, 정보공개도 끝내 거부했다.”는 것이 김성봉 부장의 전언이다. 그는 “단순히 안전조치 의무 불이행뿐만 아니라 각종 자료, 실제 산보위가 구성되어 운영되고 있는 지, 현장에 법령이 제대로 고시가 되었는지, 전체적인 점검으로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최소한 민주노총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라도 현장을 볼 수 있게 열어달라고 했지만 청주지청으로부터 돌아온 답은 법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단병호 의원실을 통한 정보공개 청구로 받은 자료로 현장을 볼 수 있었다.
김성봉 부장은 “충북본부는 매달 노동안전보건 담당자 회의를 열고 연초 상반기 수련회, 분기별 교육 등을 노안 담당자들 모임이 3년째 이어지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하이닉스 문제처럼 지역현안이 생기면 노안 간부들이 잘 뭉치고 늘 현장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로 노동자들이 픽픽 죽어나가는 현장을 점검하고 싶은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민주노총 충북본부에서 하이닉스 문제를 끝까지 가져가는 이유는 현대건설 현장이 바뀌면 지역에서의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김성봉 부장은 “건설현장의 다양한 사고 사례 중에 안전조치 위반문제가 지적되었음에도 개선이 안 돼 사고가 반복되는 중요한 사례와 자료로 축적될 것이라며 하이닉스 문제가 묻히지 않도록 지역에서 계속 제기할 것”이라며 민주노총 중앙에서도 신경써줄 것을 당부했다.
늘 그래왔지만, 현대건설이라는 대기업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주위 반응이 어떠냐고 했더니 그는 “‘현대건설 이길 수 있겠냐?’ 이렇게 얘기한 사람도 있고 특히 대통령선가 끝난 뒤에는 ‘하이닉스 현장은 현대건설이라 못 이기겠다’ 심지어 ‘저러다가 테러당하는 거 아니냐?’ 이런 말도 나왔다.”며 경제특별도를 지향하는 지역의 일부 반응을 말해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현대건설을 상대로 지고 이기고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가 무법천지였던 하이닉스 건설현장과 산재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것을 통해 노동부 청주지청의 근로감독도 확실히 달라졌다.”며 이 정도 변화도 성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점검 이후 정보가 여전히 공개되지 않는 문제와 더 이상 산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이다.
“사람이 안 다치고 안 죽으면, 현장이 안전하다는 것이 담보되면 기자회견 하고 고발하는 일을 우리도 하라고 해도 안 한다.”는 그는 2010년까지 오송생명과학단지 건설의 주 시행사인 현대건설이 공사 지역에서 어떤 건설을 하던 민주노총에서 처음부터 결합해서 산안법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지정병원 관리체계는 어떤지 점검하는 등의 현장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 겸직이라도 노안담당간부 있고 없고 차이 커
충북본부에서 3년 째 노동안전을 담당하는 김성봉 부장의 또 다른 직함은 총무부장, 조직부장을 거쳐 지금은 대외협력부장이다. 지역본부 사정상 겸임이 어쩔 수 없다. 그는 “노안 담당자가 있으니까 지역 노안회의도 하게 되고 하이닉스 문제도 끝까지 가게 된다.”며 지역에서 노안 담당자가 있고 없고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충북본부는 아직 노동안전보건위원회가 없다. 김성봉 부장은 산별조직부터 노동안전보건위원회가 가동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 지역 노안담당자회의를 본부에서도 하지만 산별차원에서 하게끔 이끌고 있다. 무늬만 있는 본부 노동안전보건위원회 보다는 산별, 연맹부터 체계를 튼튼하게 만들고 이것을 다시 본부로 엮어 조직과 체계가 갖춰진 노동안전보건위원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는 “지역의 취약노동자 계층의 건강권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노동안전보건 핵심사업으로 가져가게끔 했다.”며 하이닉스 활동 의의를 설명했다. 그리고 “지역에서 더 이상 안타까운 산재사망 사고가 나지 않도록 민주노총 역할이 ‘이런 거다’라는 문제의식을 던져주었다.”며 “작년만큼의 사고가 발생되지 않도록 지역본부가 나서서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 실제 1월 22일 기자회견 마무리 자리에서 충북본부는 “더 심각한 위반, 불법사례들이 있으며 현대건설이 (우리가) 주는 마지막 기회를 거부한다면, 더 심각한 위반, 불법사례들을 정리, 밝힐 것”과 동시에 하이닉스가 안전한 건설현장이 되도록 모든 법적 절차를 밟을 뜻을 표명, 거대 건설자본과의 싸움에서 결코 물러나지 않을 의사를 전달했다.
하이닉스 건설 현장 이야기를 들으며 겹쳐지는 영상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였다. 노동자들이 다치든 죽든 공사기간만 단축하면 그만이라는 현대건설이나 ‘비지니스 프렌들리’를 연발하며 노동자야 어찌되었든 기업이윤을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이명박 당선자의 모습이 너무도 흡사했던 것이다.
조금은 엉뚱한 이야기겠지만, 최근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세계의 증권가와 경제가 흔들리는 중이다. 이 사태를 집중 취재한 한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은 문제 해결을 위해 ‘규제’가 필요함을 역설하는 미국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보여주었다. ‘규제’ 당하지 않은 자본은 결국 사람도, 기업도, 국가도 망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노동자의 생명을 책임지는 산업안전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기업 이윤을 위해 고삐 풀리듯 풀어지는 각종 안전보건 규제의 끝은 노동자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종주국인 영국이 왜 ‘기업살인법(Corporate Killing Law)’ 실시를 논의하는지, 자본의 나라 미국에서 왜 자본의 규제를 역설하는 지 현대건설이, 노동부가, 지자체가, 그리고 곧 취임할 대통령 당선자가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면 좋겠다는 바람은 너무 큰 신년 소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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