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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일과건강 2008년 1월호



‘죽음의 시한폭탄’ ‘조용한 시한폭탄’의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석면과 관련된 질병은 ‘걸리면 죽는다’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무섭고 치명적이다. 적은 양으로도 질환에 걸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잠복기가 짧게는 10년, 길게는 40년이라 석면에 노출된 피해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석면 때문에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기조차 힘들다. 이런 위험성을 알았던 선진국들은 일찌감치 자국의 석면 소비량을 근절하는 대책들을 세워왔고 2007년 1월에 알려진 서울지하철 역사 내 석면 문제로 우리나라 정부의 관계부처 역시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다.


무엇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석면 관련 피해자들이 속속 알려지는 중이다. 석면 제품 생산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 공장 인근 주민, 석면 건축 자재를 사용했던 지하철 지하환경에서 일해 온 노동자의 석면관련 질환이 언론을 거쳐 대중에게 인식되고 있다. 이 와중에 2007년 12월 4일에 앞으로 석면관련 문제에서 중요한 영향을 끼칠 판결이 하나 나왔다.


“석면사(石綿絲) 제조회사에 근무하였던 근로자가 퇴사 후 약 26년이 지난 뒤 석면 노출로 인한 악성중피종에 감염되어 사망한 경우, 사용자였던 위 제조사회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의 인정 여부 및 손해배상금을 산정함에 있어서 참작하여야 할 근로자의 과실 정도” 판결에서 석면 제조회사의 과실이 90% 있다 보고 석면 피해 당사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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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이호철 변호사(법무법인 하나로)는 “젊어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미 여러 법률사무소에서 ‘안 된다’는 사건의 내용을 보고 그는 “안 받아들여지는 것이 이상했고, (석면) 문제가 많았을 텐데 우리나라에 소송이 없었다는 것이 신기했다.”면서도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원체 오래된 문제라 증거가 없다고 봐야 했고 석면 질환이 불치의 질병이고 걸리면 죽으니까 소송을 미리 제기해서 특정을 못 시키는, 신체감정을 받아도 특정이 안 되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보자’로 결론을 내렸지만 소송을 제기하면서 ‘꼭 이긴다고 생각하지는 말라’는 얘기도 원고에게 했다. 

2005년 5월에 제기된 소송은 기존 판례도 없고 입증자료 부족해 처음부터 법리(法理, 법률의 원리)를 만들어가면서 해야 했다. 유례가 없는 소송인지라 변호사의 어려움은 재판부에서도 마찬가지였는지 소송 도중 난색을 표하기도 하고 합의를 권하기도 하며 진행은 더디기만 했다. 이럴 때마다 밤잠을 설쳤던 이 변호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끝까지 가고 싶었다. 변호사로서 평생에 한번 할까 말까한 영광스러운 사건이었고 망인의 유가족들이 “꼭 판결을 받아달라.”며 “다른 분들이 이걸 모르면, 모르고 돌아가신 분들이 많은데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꼭 판결을 받아야 한다.”는 의기투합이 되면서 금전적 손해를 보더라도 꼭 판결을 받자는 의지를 다졌다.


이호철 변호사는 우선, 무엇을 근거로 손해배상을 제기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외국 논문을 살펴보면서 미국 쪽에 석면 소송이 많았고 이를 제조물 책임법에서 다룬 것을 알았다. 석면 자체가 위험물질이니까 위험물질을 원료로 해서 제조한 사람은 이 위험물질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잘 보관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는데, 이걸 잘못해서 피해가 갔다는 논리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제조물 책임법으로 가기 힘든 상태라 독일의 ‘안전배려의무’로 가닥을 잡았다. 즉, 사용자가 근로자들을 고용하면서 지켜야 할 의무 중 생명, 건강, 안전을 보호해줄 의무가 있는데 이런 의무를 위배해서 건강이 나빠지거나 생명을 위협하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아! (석면이) 위험물질이니까 이것을 잘 사용해서 근로자들이 석면 분진에 노출되지 않도록 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고 이를 단초로 법리를 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이 변호사는 판사들 설득을 위해 「석면(asbestos)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의 문제점」이란 논문을 써 전국 각지에 뿌렸다. 담당 판사들에게도 전달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래도 걱정은 많았다. 원고가 일한 당시가 1970년대라 안전 수준의 법적 규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사업주 의무를 따질 수 있는 지 조마조마했고 실제 재판과정에서도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법리를 구성한 뒤에는 신체감정에서 손해배상액 특정이 안 되는 문제가 생겼다. 치료 완결 뒤 장해가 남으면 특정을 받는데, 석면질환은 계속 쭉 가니까 장해도 없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태라 특정이 안 되는 것이었다. 재판부에서 또 ‘곤란하다’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피해자가 산재처리를 했으므로 상병보상연금이 지급되는 시점에서 손해배상액을 특정하자고 했다. 그 결과로 1년 6개월을 기다리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 피해 당사자는 돌아가셨다. 피해자가 살아 있을 때 판결을 받고 싶었던 그의 “살아만 계셔 달라.”는 바람은 이뤄지지 못 한 것이다. 

피해자 사망으로 특정이 되자 손해배상 금액이 확정되었다. 다음으로 원고에게 과실이 있는지 따지는 과정이 이어졌다. 이것은 한 장의 사진에서 출발했다. 빛바랜, 오래된 사진에는 다행히 바닥에 흥건한 백석면이 잘 나왔고 장갑을 끼지 않은 것과 모자도 없고, 일반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의 모습이 잘 나와 있었다. 사진을 근거로 상상력이 동원되었고 지금의 기준을 살펴보면서 사용자가 방진마스크, 방진장갑, 방진 작업복 등을 지급했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리고 그 당시 동료 진술들도 받으면서 어려움들을 하나하나 해결해갔다.


유례가 없는 소송이었기에 어려움도 많았고 앞으로 관련 소송에 영향을 미칠 판결을 받은 날의 기분이 어떠했는지 물으니 “아…” 하면서 이호철 변호사는 쉽게 감정 정리가 안 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인 후에 “짐을 덜었다.”는 말로 복잡했던 당시 기분을 정리하면서 선고일 시기의 이야기를 전했다. 

결론 종결 전에 판사가 원고 과실을 20%로 잡으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금액이 많으니까 장기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과 1970년대 일인데 그 당시 안전수준을 보면 그나마 마스크라도 지급한 것을 보면 회사가 완전히 무시한 것 같지는 않은데 지금의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1970년대를 바라보면 회사에도 억울한 것이 아니겠냐는 논리였다. 

이호철 변호사는 “그것은 곤란하다. 10%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장래에 다른 사람도 소송을 걸 텐데, 손해배상액의 분배라는 측면에서 보면, 10%는 2~3천 차이가 나는데 10명을 기준으로 보면 1명이 더 받을 수 있으니까 10% 정도면 수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결심했는데, 선고일이 연기되었다. 그는 “잘못되는 것이 아닌가…”하고 굉장히 걱정을 많이 했고, 다행히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왔다. “망인의 남편이 우시면서 내 손을 꼭 잡으실 때… 보람이었다.”면서 “한편으로는 돌아가신 분이 살아생전에 금액이 적더라도 받았으면 원통함이 적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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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28일 부산에서 열린 석면피해자모임





# 노동자의 유일한 과실은 석면회사 입사


앞으로 석면 소송에서 잣대가 될 첫 손해배상판결에서 피고인 회사 측 과실을 인정한 소중한 결과였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아도 노동자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70년대라는 점에서 오히려 노동자에게 10%의 과실을 줄 수 있는 것인지 이 변호사에게 반문했다. 

“그 얘기도 많이 했다. 재판 과정에서도 쟁점이 많았다.”며 그는 대답을 이어갔다.

“인간의 생명이 법으로 제한이 가능한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사람 생명은 법이 있든 없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석면의 위험을 알았다면 우리에게 책임이 있겠지만 그 누구에게 물어도 석면이 무엇인지, 석면 질환이 어떻게 나오는지 아무도 모른다. 모르는 것이 과실이냐? 우리에게 유일하게 과실이 있다면, 회사 들어갔던 분들이 전부 그 당시 고등학교 마치고 간 10대들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조국 근대화라는 부푼 꿈을 안고 회사에 들어가서 참… 먹고 살라고, 가족들 먹여 살릴라고 일한 죄밖에 없다. 이 분들에게 과실이 있다면 그 회사에 들어간 죄 밖에 없다.”고 논리를 폈다. 

실제 판결에서 과실을 잡을 때 0%를 잡든지 20%를 잡든지 둘 중의 하나이지, 10%는 과실이 없다고도 있다고도 봐지는 애매한 판결이기 때문에 10%로 과실을 잡은 유례가 거의 없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결심하고 두 달이 걸렸고 또 선고를 연기하면서까지 재판부에서도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장래 소송이 폭주할 것으로 예상이 되기에, 판사가 결정을 내리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하나의 기준이 되니까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설명이다.


또 한 가지, 석면의 위험성을 모를 리 없었을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소송 기법이라면서 회사에서 손해배상을 지급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초반부터 정부 책임을 물으면 재판이 끝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장기적으로 석면 제조회사가 없어졌거나 파산했을 때, 석면 간접 노출자들, 석면제품 소비자들처럼 피해구제를 받을 방법이 없는 경우처럼 국가 책임을 물을 필요가 생길 것이라고 한다. 

이미 1960년대부터 의학적으로 석면의 위험성이 알려졌고 선진국은 1960년대 후반부터 석면문제가 생기면서 규제를 시작했고 그러면서 석면이 후진국으로 넘어왔다. 이 변호사는 “원고가 일했던 부산의 회사도 일본과 합작, 기술 이전을 받은 것인데 일본 기술자들이 시찰할 때 우주복을 입고 들어왔다.”고 예를 들며 “그러니까 회사가 모를 리가 없고 회사가 알았는데 정부가 모를 리 만무하다.”면서 정부도 알았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이 부분에서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하면서도 담배소송을 예로 들며 국가를 상대로 하는 소송이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호철 변호사는 이번 소송으로 ▽직업성 질환으로서 석면 손해배상 소송에서의 법리 정립 ▽간접 노출자들의 소송제기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와 함께 앞으로 늦게나마 사회적 이슈가 되어 정부, 사회단체, 국회가 관심을 가져서 관련 특별법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밝혔다. 그는 석면 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서는 ▽석면관련 제조사에서 일했던 노동자들 데이터 마련과 지속적인 모니터 실시 ▽우리 사회에서 소비한 석면제품 종류와 쓰임새 추적 ▽진단과 치료를 위한 석면관련 전문병원과 석면문제를 집중하고 종합하는 전문센터나 연구소 설립이 최소한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석면에 노출되었다는 증명을 할 수 없는 이들이 적어도 치료는 받을 수 있고 최소한 생활은 할 수 있는 ‘석면피해구제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미국에는 구청에 석면만 담당하는 직원이 있다.”고 귀띔도 했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소송을 제기할 분들에게 도움말을 달라는 질문에 이 변호사는 “오래 되다 보니 자료가 없다.”면서 “네트워크로 정보, 사진, 관련 자료를 교환하고 당사자들이 겪었던 상황을 자세하게 올리면 그것들을 취합해서 정리, 당시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나올 수 있다. 이것을 유추해서 다른 회사 상황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피해자 사이의 네트워크 구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시 43회로 2004년부터 시작한 변호사 일을 한지 얼마 안 되어 맡은 석면피해 손해배상 소송을 스스로 ‘평생에 한 번 할까 말까하는, 두고두고 봐도 가슴에 남을, 개인에게 있어 영광인 기회’로 평가하는 이 변호사는 연수원 시절부터 역동성이 있는 노동법이 재미있고 적성에도 맞았다고 한다. 그가 다른 곳에서 기피했던 석면소송을 맡은 것은 단지 연배의 젊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것은 불가능하다’가 아니라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가치의 젊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의 젊음, 가치의 젊음이 늘 이호철 변호사와 함께 하여 또 다른 ‘두고두고 가슴에 남을’ 변호의 기회를 선택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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