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일과건강 2007년 9월호
기회가 되면 스즈키 씨를 인터뷰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지난 5월 열린 한일석면심포지엄에서였다. 이틀에 걸쳐 진행된 심포지엄에서 통역을 맡은 그의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노동건강연대에서 활동하는 상근자이기에 종종 그를 본 적은 있었지만 인터뷰라는 매개로 스즈키 씨와 단 둘이 ‘수다’떨 기회를 가졌다. 안전보건 영역에서는 첫 인터뷰지만 스즈키 씨는 나름 유명세를 가진 인물이었다. 과거 이력을 ‘캐’내려고 검색해 본 그의 이름은 이름만 대면 아는 몇몇 언론에서 벌써부터 그를 주목했던 셈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스즈키 씨의 국적은 일본이고, 1997년에 한국으로 왔다. 진작에 인연이 있었던 보건의료 운동 영역에서 활동하는 최경숙 씨와 1998년 결혼해 딸 하나를 둔 단란한 가족의 일원이고 노동건강연대에서는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을 고민하고 실천사업을 만든다. 그리고 또 하나, 그에게 중요한 일은 일본 노동조합,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한국에 왔을 때의 통역 역할이다.
2003년 가을부터 노동건강연대에서 활동을 시작한 스즈키 씨가 맡은 일은 성수동에 있는 수많은 중소영세소규모사업장 노동자들을 위한 안전보건이다. 상근활동 전에 노동건강연대 회원이었던 그는 자원봉사로 ‘성수동 사업’에 함께 했다. 이미 일본에서 규모가 작은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는 안전보건 활동인 포지티브(POSITIVE) 프로그램을 해 본 스즈키 씨에게 성수동과의 인연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박스 : 포지티브(POSITIVE) 프로그램
Participation Safety Improvement by Trade Union Initiative의 약자, 포지티브(POSITIVE)는 노동조합이 주도하는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보건 개선활동이다.
일본 도쿄 노동안전위생센터에서 만들어 성공한 프로그램인데, 보편적인 강의방식 대신 노동자들이 직접 ‘작업장 체크리스트’를 들고 다니면서 자기 공장 안의 사소한 환경을 체크하면서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체크리스트 결과를 가지고 작업장 노동자들과 함께 토론하고 합의하면서 변화를 도출하는 ‘과정’으로 사업주의 협조를 받기 어려운 사업장에 적당한 안전보건 개선활동이다.
스즈키 씨는 “일본에서는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그러니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사업장에서 (포지티브 프로그램 활동을) 했는데, 일본 역시 일반노조 사업장에 들어가서 작업환경을 개선하기는 힘들다.”며 성수동에서도 조합원이 있는 사업장이 중심으로 포지티브 활동을 한다고 밝혔다.
영세사업장의 산업재해 예방활동이 ‘특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그래서 부쩍 드는 고민이 바로 ‘노조가 없어도 사업장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다.
지역 일반노조와 함께 부침 없이 꾸준한 활동을 해온 그는 “지역노조가 노동안전보건에 관심을 갖고 함께 할 수 있는 분위가 된 것”을 사업의 성과와 개인의 보람으로 꼽으며 “재정과 인력이 부족한 지역노조가 건강권을 노동조건 향상 활동에 포함시키게 된 것이 성수동 사업을 하면서 생긴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임금 자체가 열악한 사업장이 대부분인 지역의 노동조합 의식이 서서히 바뀐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노동안전보건 활동으로서 눈에 띈 성과는 없다.”며 “(성수동 사업을 시작한지) 5년 정도 되는데, 함께 하는 주체를 찾는 기간이 5년이라면 실제 사업을 진행하는 일이 앞으로 5년 정도로 봐야 되지 않을까 싶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과의 차이점을 묻자 “한국의 노사관계, 법제도 차이 때문에 단순히 한국에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노동자가 자신의 건강을 지키려면 사업체에 다 맡기는 게 아니라 스스로 관심을 갖게 만드는 도구로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성수동 사업의 구체목표는 ‘지역산업보건센터’를 만드는 것, 성수동을 하나의 모범 사례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라며 “이 사례를 전국에 적용하는 것이 희망사항이지만 지역산업보건센터를 만들어도 그것은 성수동 사업의 완료가 아니라 또 다시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성수동 지역에서 영세사업장 대상의 안전보건 활동 의지를 나타냈다. 하지만 성수동 지역 재개발과 값싼 중국산 구두로 문다는 제화사업장이 많아지는 등의 산업변화가 앞으로 성수동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 석면문제, 자국을 넘어 아시아 문제로 가야
스즈키 씨와의 대화에서 석면은 빠질 수 없는 주제였다. 지난 5월의 한일포럼이 인터뷰 동기를 부여한 것을 떠나 한국도 ‘석면과의 전쟁’을 선포해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7월 16일 MBC 9시 뉴스에는 주목한 사람에게만 들렸을 중요한 뉴스가 한 꼭지 있었다. 뉴스는 1992년까지 국내 최대 석면방적공장이 있었던 부산 연제구 연산동의 일반 시민이 석면질환에 걸린 사실을 보도하며 “국내 대부분의 석면공장은 지난 97년 이후 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평균 20년이 넘는 석면관련 질환의 잠복기 때문에 그에 따른 피해는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1970년대부터 석면이 사회문제로 거론되고 2005년 6월 ‘구보타 쇼크’를 거치면서 다양한 석면추방 활동이 전개되는 일본의 과거는 바로 현재의 한국인 셈이다. 올 1월, 서울지하철 내 석면문제가 승강장을 이용하는 시민에게도 미친다는 발표 이후 밝혀진 석면문제 심각성의 두 번째 증거인 부산지역 일반 시민의 석면질환 노출을 계기로 안전보건단체, 노동․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석면문제해결을 위한 활동을 전개 중이다.
이미 이런 파장을 겪은 스즈키 씨는 “지금 환경․노안단체, 전문가가 모이기 시작했는데, 연대기구를 빨리 만들고 이게 환경이냐 직업병이냐를 떠나서 하나의 전국 이슈, 나아가 아시아․세계 이슈로 볼 수 있는 연대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항상 시민입장에서만 이야기가 되고, 항상 노동자 입장에서만 이야기가 된다. 석면문제가 모든 사람에게 관계있는 문제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직업병을 넘어 환경, 공해로 가는 석면문제는 △노출실태 확인 △실제 피해자 조기 발굴, 치료 △제대로 된 보상 △더 이상 노출되지 않도록 관리․감시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 민간부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환자 발굴 작업을 얼마나 할 수 있느냐이다. 한국도 지금 콜센터를 설치하면서 상담을 받는데, 실제 피해자가 나타나면 보상과 연결이 되니까 보상을 어떻게 법제도화 해 나가는지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단순히 발굴에 멈추지 않고 이들을 조직하는 문제도 있는데 환자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 이 일을 수행해 본 부산환경운동연합의 한 관계자도 석면문제 해결을 위해 환자․가족․유가족을 조직하려고 하지만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하였다. 5월 한일석면심포지엄에서 만난 일본의 석면질환 환자들이 떠오르자 석면문제가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님을 알리는 다양한 활동을 해온 이들은 어떻게 조직되었을까 궁금했다.
“처음에는 석면피해를 알리려고 전화 상담을 공개적으로 했다. 기자회견에서 전화번호를 공개하고 석면 관련해서 산재인정을 받았다는 이야기와 함께 몇 월 며칠 어디서 하루 종일 석면 상담전화를 받는다고 한다. 거기에서 직업노출 상담이 있었고 실제 산재승인까지 몇 달을 함께 고생하면서 환자, 가족과 지원단체 사이에 신뢰 관계를 쌓았다. 산재승인이 쉬운 일이 아니라서 석면피해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방치하면 안 된다, 석면을 금지해야 한다는 정열로 환자 모임이 독자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환경노출로 중피종에 걸린 사람을 발굴하면서 구보타 쇼크가 터졌고 이를 계기로 ‘석면 관련 일을 했던 사람은 조심하자’는 수준에서 노동부가 과거 석면질환으로 산재노동자가 발생한 기업명단을 공개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어디에 석면공장이 있고 얼마나 환자가 있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석면 피해와 규제, 보상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된 일본 국민들은 석면대책전국연락회의가 석면 및 석면제품 제조, 판매, 사용 전면 금지와 모든 석면관련 질환에 보상 등을 내걸고 전개한 3개월의 백만 명 서명운동에 187만 명 서명으로 호응했다.
스즈키 씨는 현재 일본에서 석면문제로 떠오른 오사카 남부 센난(泉南)지역 이야기를 이어갔다. 영세규모의 석면방적공장이 많은 이 지역 주민이 국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제기한 내용이다. “석면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정부가 이를 규제하지 않아 공장이 석면을 그대로 내보냈고 밖에서 일하던 농부가 석면질환이 걸렸다. 알면서도 규제하지 않은 ‘정부의 관리책임을 묻는’ 재판을 제기한 것” 이다. 그는 석면 피해는 앞으로 아시아 지역으로 확산될 것 이라며 “이 문제가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문제, 특히 아시아의 석면문제를 해결하는 사고를 가지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도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했던 스즈키 씨는 “한국에 와서도 비슷한 일을 몰랐다.”고 한다. 일본에서 7년 성수동에서 4년이니 어느 덧 10년 경험의 안전보건 활동가인 그는 다른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할 정도로 그의 일을 ‘즐기는’ 듯 했다. 그런 스즈키 씨에게서 인터뷰 마무리에 들은 한 마디는 “저처럼 단체 상근자 말고 현장 노동자, 산재노동자 목소리를 전달해 주세요.”였다. 현장과 그 속에 있는 노동자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요구에 『일과건강』개편 후 단체 상근자는 스즈키 씨가 처음이라며 현장 목소리를 더 많이 전하겠다는 답을 했지만, 모르겠다. 10년 후 그에게 슬쩍 다가가 “인터뷰 한 번 안 하실래요?”하고 물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