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 일과건강 2007년 5월호
지난 4월 27일 오후 4시 즈음 국회 본회의에서 192명 재적에 190명 찬성으로 건설산업기본법(이하 건산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그날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연맹)은 “건산법 개정안의 통과로 건설 현장에서 시공참여자제도(이하 시참)가 폐지되고 다단계하도급의 처벌이 강화되고, 4대 보험의 적용이 확대되는 돌파구가 열리게 되었다.”는 환영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건산법 개정안은 건설노동자들의 오래 전부터 품어온 염원, ‘시공참여자제도’가 폐지되는 내용이 담긴 법안이었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수많은 건설노동자들이 긴 시간을 싸워왔고 그 과정에서 세상을 뜬 노동자도 있었다. 그리고 건설연맹 최명선 정책국장도 있었다. 건설연맹 활동 5년차인 자신의 활동을 ‘서당개 풍월’ 정도라고 말하지만 외부에서 볼 때 그는 존재감이 분명한 실무자였다.
건설연맹 최명선 정책국장은 “시참이 폐지되어 공사 단계가 줄고 전문건설업체가 건설노동자를 직접고용 함으로써 사용자가 분명해지고 저임금 문제도 해소될 수 있다.”며 법 통과 의미를 설명했다.
시공참여자제도가 뭐 길래?
시참이 생기고 없어지게 된 이력을 보면 조금은 아이러니 하다.
시공참여자제도에서 ‘시공참여자’는 우리가 흔히 아는 ‘십장’ ‘오야지’로 현장기능직을 말한다. 현장기능직이 팀을 이뤄 공사에 참여하는데, 오야지(책임자) 제도를 두었던 일본에서 유입되었다고 한다.
최명선 국장은 “전문건설업체의 도급은 불법이었는데,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붕괴되면서 정부가 건설업 문제가 무엇인지 까뒤집으면서 ‘팀별로 작업하는 데 이것이 문제더라’ 그러면서 작업참여자를 ‘시공참여자’로 실명을 올려 (사고가 나면) 시공참여자까지 처벌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다.”라며 이때부터 시참계약서만 쓰면 모든 도급이 합법화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보통 10명에서 많으면 20명까지 구성되는 한 팀에서 팀장은 현장에서 어차피 노동자인데, 시참계약서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복지문제, 4대 보험 문제, 산재문제, 체불임금 문제를 원청(일반건설업체)과 하청(전문건설업체)이 바로 시공참여자가 사용자라며 그들에게 떠넘긴 것이다.
최 국장은 “예전의 계약서는 ‘언제까지 어느 정도의 물량을 어떻게 하고 대금은 어떻게’ 하는 내용이 전부였는데 시참제도 이후에는 서너 장 분량에 하자보수, 안전장구 지급, 4대 보험료 납부 등의 책임을 모두 안겼다.”고 전했다.
현장에서는 똑같은 노동자인 현장기능직들이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떠안게 되었고 원청과 하청은 모든 책임에서 면피를 받았다. 결국 몇 단계, 몇 십 단계를 거치든 시공참여자 계약서만 쓰면 원청과 하청은 불법으로부터 벗어났다.
건설현장에서 시공참여자 계약서는 ‘현대판 노예문서’로 불렸고, 시공참여자제도를 앞세운 불법 다단계 하도급은 건설노동자를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2004년 대구지역에서는 건설일용노동자의 4살짜리 아들이 굶어서 죽는 사태가 발생했고, 2005년 인천지역의 건설일용노동자가 체불로 분신하고, 2006년에는 덤프 노동자가 분신기도를 한바 있다. 건설노동자 입장에서는 만악의 근원이었던 것이다.
“몇 단계를 거쳐 자기한테 오는지 몰랐던 상황에서 이제 사용자가 분명해진다.”는 최명선 국장은 “시공참여자제도 폐지는 건설업의 생산구조를 개편하는, 공정 체계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계기라고 말을 보탰다.
노조가 단속주체 되어 불법 고리 끊을 것
하지만 근 반세기를 내려온 시참제도가 법으로 폐지되었다고 해도 현장에서 쉽게 근절될 수 있을까란 의문은 자연스럽게 든다.
이런 의문에 그는 “그것은 현장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불법도급을 하면 원청과 하청, 시공참여자를 다 처벌하도록 법이 강력해졌고 노조가 불법도급을 끊는 주체가 되는 노동자감시체계를 만들어 법만이 아닌 실제 폐지를 이끌어 낼 것”이라고 못 박았다.
물론 아예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불법도급의 고리를 지자체가 잘 모르고 노동부도 4만 여개의 전문건설업체를 다 관리감독하기가 힘든 것이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설연맹은 건설교통부와의 회의에서 법 시행령․시행규칙이 만들어지면 사례유형집을 제작해 배포, 정부가 관리처벌을 제대로 하도록 요구했다.
연맹 지침 묵묵히 따라 준 조합원
법 개정안 통과가 되기까지 건설노동자들은 수많은 투쟁에서 불법다단계하도급 근절을 목표로 내세웠고 국회 앞 농성, 서명운동, 지역 국회의원 면담 등 할 수 있는 모든 투쟁을 전개하였다.
최명선 국장은 “현장에도 문제가 많은데 연맹에서 지침을 내리면 그것을 묵묵히 조합원들이 따라 주었다.”며 지역 국회의원을 만나기 위해 조기축구나 출장 장소까지 쫓아가기도 하고 논밭 한가운데 있는 지역 국회의원사무실 앞에서 1인 시위와 집회를 열고, 연좌농성을 벌이다 들려나오기도 했다는 예를 들어주었다.
그는 “그만큼 건설노동자에게 중요한 법이었고,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가 쟁취한 법’이라는 자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6월 국회에서 건설노동자 삶을 변화시킬 또 다른 법안이 대기 중이다. 다단계 하도급으로 체불이 발생하면 면허를 가진 건설업자와 원청이 연대책임을 지는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건설현장에 화장실, 식당, 탈의실을 의무 설치케 한 건설근로자고용개선에관한법률 개정안이 바로 그것이다.
최 국장은 마지막 과제라고 할 수 있는 두 법의 본회의 통과여부가 남은 6월이 고비일 것 같다며 “수많은 건설노동자들의 희생으로 건산법도 통과되었으니 난관은 있겠지만 통과될 것”이라며 긍정에 힘을 실었다.
2004년, 타워 고공농성 때는 잠도 안 와
건설연맹은 설계, 시공, 감리, 현장기능직, 전기, 타워크레인, 레미콘, 덤프 등 다양한 부문의 노동자들의 상급단체라 그만큼 많은 투쟁이 벌어진다. 2006년 한 해만 보더라도 3~4월 덤프노동자 투쟁, 5월 타워노동자 투쟁, 6월 대구지역 건설노동자 투쟁, 7월 포스코 투쟁 등 쉼 없는 투쟁이 이어졌다.
최명선 국장은 “건설노동자가 싸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법으로 안 되니까 고강도 투쟁을 벌일 수 밖에 없다.” 그때마다 “조바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투쟁 강도가 세다보니 어디서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몰라 심적 부담이 많은 것이다. 그는 2004년 5월,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금지, 근로계약서 체결, 연월차 수당․퇴직금 지급 등을 요구한 파업 투쟁 당시 100여대의 타워크레인에 5백여 명이 올라가 고공농성을 얘기하며 “그때 정말 미치겠더라. 누구 하나라도 잘못해 떨어지면 끝장이니까. 먼 일 날까봐 잠이 안 오더라.”며 매 투쟁마다 생길 수밖에 없는 긴장을 설명했다. 그는 포스코 투쟁 때 “노동자가 맞아 죽었는데, 이 사회가 이 모양일까? 이렇게 살 바에는 다 같이 죽자.”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투쟁에서 이겨왔고 그것에 보람이 있다며 “건설노동자들의 한과 분노가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조직적 응집으로 이어진다. 조직이 생기는 것이 노동자들 삶을 바꾸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덤프연대가 생기면서 체불임금이 거의 사라지고 이를 지켜본 굴삭기 노동자들이 ‘우리도 조직을 만들자’는 얘기를 한다며 건설현장에서 ‘녹색깃발(건설연맹 깃발)이 꽂히는’ 모습을 보며 ‘바뀌고 있다’는 보람이 생긴다는 것이다.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파업을 하면 무임금인 건설노동자들은 차비가 없어 집회에 못 나오기도 하고 손배가압류라도 붙으면 차와 집이 날아가 비닐천막을 치고 사는 노동자도 있다며 그에 비하면 중앙에 있는 자신은 힘든 것도 아니란다.
건설노동자의 구체적인 문제 풀어주고 싶다
외부 사람 눈으로 볼 때 건설연맹을 이야기 할 때 최명선 국장은 빼뜨릴 수 없는 정책가이다. 실제 그는 많은 토론회에서 건설노동자를 대변해 왔고 건설교통부와의 실무회의에 참석해 건설노동자 삶이 바뀔 수 있는 법과 규제에 정책을 제시한다.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안전보건문제가 심각한 건설 분야에 이를 꾸준히 문제제기하고 함께 하는 전문가나 활동가가 노동계에 없었다는 현실이었다.
안전보건에서 진보 쪽이 너무 취약하다는 그는 사회에서 안전보건과제는 더 많이 제출될 것이라며 전문가들이 노동자 중심의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드는 역할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정책 중심으로 해왔다면 앞으로는 현장에서 안전보건을 쟁취해야 하다며 “연맹 산하에 안전보건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큰 과제이다. 각 단위에 전반적인 안전보건 투쟁을 조직하고 간부 육성의 중요과제로 안전보건위원회를 제기할 것”이라고 했다. 연맹의 이런 행보와 더불어 최근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는 건설분과와 취약분과를 발족했다. 최명선 국장은 전문가 단위로 네트워크만 구성되어도 큰 의미를 가진다며 “건설은 많은 과제가 있는 곳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단위가 참여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현했다.
개인적인 욕심이 무엇인지 넌지시 묻자 건산법이 통과되었고, 남은 두 법이 6월 국회에서 통과되면 그동안 건설노동자들이 그토록 바랐던 법 제도의 장막 하나가 걷히는 것이라며 앞으로 기회가 생긴다면 법이 시행될 때 부딪히는 수많은 ‘구체적인 문제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싶단다.
일찍 출근할 때 지하철에서 건설노동자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 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들리는 건설 공사 소리, 새벽에 집에 갈 때 길가에 서있는 덤프, 이런 모습이 바로 건설노동자들의 실제라며 그들이 현실에서 필요로 하는 구체적인 도움을 주고 있을 그 어느 때, 좀 더 많은 안전보건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질 것이란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