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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일과건강 2006년 7,8월 합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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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진폐자협회 주응환 회장



#다 같은 진폐환자인데 차별이 심하다

올 1월 19일의 일이다. 노동과건강포럼2005에서 주최한 ‘산재보험은 사회보험이다-산재보험 개혁과제 정립을 위하여’라는 포럼이 마무리로 청중 토론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이 지긋한 한 분이 재가진폐재해자들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명백히 진폐라는 직업병으로 고생하고 있는데도 휴업급여를 받지 못 하고 있다며 이들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는 방향으로 산재보험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늦을 대로 늦어진 포럼으로 주최 측은 장소 관리자 측으로부터 ‘어서 끝내 달라’는 압력을 받고 있는 상태라 사회자는 되도록 말을 줄여달라고 요청했으나 그 분은 쉽사리 마이크를 놓지 못 했다. 산재보험 제도를 어떻게 개정하겠다고 결정하는 자리는 아니었음에도 이 얘기만은 꼭 해야 한다는 ‘절박한 호소’가 담겨 있었다.


1월 포럼에서 목소리를 높여 재가진폐자들을 직업병으로 인정하고 그에 맞는 치료와 급여가 필요하다고 강하게 주장한 분은 한국재가진폐재해자협회 주응환 회장이었다. 인터뷰 도중 안 사실이지만 그는 이미 나이 70으로 어떤 권리회복을 위해 소리를 높이기보다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신분이었다. 그러해야 할 그는 왜, 때론 거리에서 때론 포럼과 같은 토론회 자리에서 혹은 노동부를 찾아가 청년같은 기백으로 재가진폐자들 이야기를 줄곧 해 왔을까? 

“다 같은 진폐 환자다. 그런데 재가진폐자들은 합병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심한 차별을 받고 있다. 요양환자들은 간병비도 나오고 아이들 학자금까지 나오는데 집에 있는 사람들은 계속 병을 앓고만 있다. 13급, 11급, 9급도 합당한 급여를 받아야 한다.”

주 회장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재간진폐자’들은 오랜 광부생활로 진폐를 앓고 있지만 합병증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요양은 물론이며 경제적, 제도적, 사회적 지원이 없다. 의료지원은 1년 1회의 정기건강검진과 상태가 위급할 때 응급 검진, 급수에 따라 지급되는 기침과 가래를 잦아들게 하는 통원치료와 약값 정도가 전부이다. 치료와 급여를 받을 수 있으려면 엑스레이 사진에서 대음영이 2분의 1 이상이고 합병증이 있어야 하는데, 그 합병증은 폐결핵, 폐암, 폐기종, 폐성심, 만성기관지염, 기관지 확장증, 기흉, 마이코박테리아 감염, 흉막염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진폐노동자들은 이 엄격한 기준에 맞지 않아 밤새 기침과 가래와 싸우며 살고 있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고 ‘재가진폐자들의 통로’가 되겠다는 생각에 역시 재가진폐 재해자들이 만든 단체가 바로 ‘한국재가진폐재해자협회’이다.


현재 병원에 요양 중인 진폐노동자를 포함, 전국 진폐노동자 수는 대략 5만~6만 사이라고 보고 있는데 이들 중 법과 제도로 치료와 급여를 받는 사람은 입원과 통원을 포함해 3천 여 명이 되지 않는다. 주응환 회장은 5만에서 6만이라는 통계도 국가기관 통계가 아니라 의사들이 검진한 수를 합한 것이라며 ‘참으로 창피한 일’이라고 한탄했다.


“50, 60년대 우리가 얼마나 가난했나? 나는 광부들이 이 나라 경제건설의 1등 주역이었다고 생각한다. 국가를 부흥시켜놨는데 우리들은 외면당하고 있다”며 소신 없는 정부 당국자와 무심한 국회의원들을 생각하면 여의도에서 불이라도 지르고 싶을 정도로 재가진폐 재해자들의 삶은 가난과 병이 주는 고통으로 피폐하다고 전했다. 옆에 있던 최순길 부회장은 덧붙이며 말을 이어갔다. 

“못 배운 사람들이 광산으로 들어갔는데 그 당시 하루 일하면 쌀을 한 되 반을 줬다. 그것 가지고는 아이를 낳아도 가르칠 돈이 없는 거다.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가난을 이어갔다.”

작년에는 한 재가진페재해자가 농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부인에게는 나물이 먹고 싶으니 그걸 캐러 가라하고는 집에서 약을 먹은 것이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일을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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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길 부회장



이런 얘기가 오갈 때 협회로 상담을 위해 한 모자가 들어왔다. 진폐 3급 4호인 남편이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했는데 합병증이 없어 진폐환자로 인정을 못 받아 일반으로 처리되었다고 한다. “돈을 떠나서 병원치료라도 제대로 받았으면 하는데 사람이 죽어가도 합병증이 없다고 (진폐전문병원에서) 입원도 안 시켜준다.”며 이런 억울한 일이 어디 있냐고 울음을 터뜨렸다. 숨이 가빠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산소 호흡기를 달고 사느라 한 달 전기요금만도 20만원이 넘게 나왔다고 한다. 의사들의 ‘희망이 없다’는 소리에 억울해서 협회를 찾아왔고 부검해서 진폐로 인정받을 수도 있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말에 ‘각오하겠다’며 김상수 사무국장과 회장, 부회장으로부터 몇 가지 정보와 연락처를 받고 되돌아갔다.


“보셨지요? 어때요? 이게 바로 재가진폐자들의 삶입니다.”

주응환 회장 질문에 뭐라 딱히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제도가 있어도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제도는 고통 받는 다수를 외면하는 현장을 그대로 봤기 때문이다. 

주 회장은 어려움 없이 사는 사람은 극소수고 80%가 극빈층이라며 “이 분들 10년 안에 4분의 3은 세상을 떠난다. 지금 시간이 없다. 살아 있는 동안 경제적 지원이 가장 절실”하다며 재가진폐 재해자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 한국재가진폐재해자협회에서는 어떤 제도적 변화와 정책을 바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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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수 사무국장



협회는 ‘진폐증 판정의 공정성 확보’와 ‘합병증 범위와 요양기회 확대’를 꼽았다. 판정에서 공정성 확보를 위해 검사기기와 기술 수준을 높이고 검진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 보완을 위해 정밀검진을 3회 이상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합병증 범위에 ‘폐렴’을 포함시키고 입원 중심의 관리정책이 아니라 ‘자활’에 초점을 맞춘 재활프로그램으로 진폐재해자들의 사회복귀를 도와줘야 한다는 얘기에서는 간간이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그만큼 정부와 당국자들에게 불신이 높았다. 특히 폐렴을 합병증 범위에 포함시키면 전체 재가진폐재해자의 50%정도가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어 재가진폐 문제 해결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진폐재해자 사망원인 중 가장 주원인인 폐렴을 합병증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특히 요양중심의 정책으로 입원요양은 요양급여, 휴업급여, 고교생 자녀 학자금 지원, 사망 시 부검없이 유족급여가 지급되고 있는 반면 재가진폐재해자는 산소호흡기로 한 달 전기세 20만원을 내도 별다른 지원이 없다. 때문에 진폐법이 진폐재해자 다수가 혜택을 받는 방향으로 시급히 개정되어야 함을 협회는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실제 노동부가 낸 연구용역에서 이런 내용이 진행되었지만 혜택 축소를 염려한 전국진폐협회의 실력저지로 연구는 중단되었고 현재는 산재법 개정 논의에서도 포함이 안 된 상태이다. 


“정부에 제출할 제안서도 작성했다. 한국노총, 민주노총은 물론 어느 단체든 연결만 된다면 열심히 연대해서 지금까지 답답한 가슴을 안고 살아온 재가진폐재해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

주응환 회장, 최순길 부회장, 김상수 사무국장의 협회 설립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마음이다.


이제 세상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분들은 진폐로 인정받아 유족보상이라도 받아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생전에 라면 한 박스라도 편하게 사먹을 수 있는 휴업급여와 법에서 정한 합병증이 없어도 심하게 아프면 진폐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소원이다. 자기 주머닛돈을 털어가며 활동하는 이 분들 역시 20년 전, 30년 전 광부생활을 하며 나라의 가난 극복을 위해 본인의 가난을 기꺼이 감수했던 노동자였다. 열심히 일 한 노동자가 일을 할 때도 노동력을 상실했을 때도 여전히 가난이 그들의 삶과 생명을 위협하는데, 경제대국 몇 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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