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일과건강 2006년 9월호
그는 명쾌하고 명료했다. 거침이 없고 막힘이 없었다.
대교 학습지 교사 부당해고 투쟁 과정에서 지난 5월 집시법 위반, 업무 방해, 건물침입 등으로 구속되었다 집행유예로 8월 13일 나온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서훈배 위원장. 특수고용노동자 노동자성 쟁취 순회투쟁을 조직하느라 전화돌리기에 바쁜 그를 민주노총 2층 회의실에서 만났다.
학습지 산업, 그러니까 대교 눈높이, 재능 스스로, 웅진 씽크빅 등 각 가정을 방문해 학습지를 가지고 회원을 관리하는 노동이다. 흔히 회원들이 어린이일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선전이 주는 효과이고 취학 전 아동은 물론, 중․고등학교, 배움의 시기를 놓친 어른들도 있다.
지금은 학습지 교사가 건설운송 노동자,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과 함께 특수고용노동자를 얘기할 때 대표되고 있지만 이들 역시 1989년까지 4대 보험을 적용받고 퇴직금도 받는 어엿한 정규직이었다. 198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민심을 얻기 위해 ‘본고사 폐지 및 과외 폐지’ 조치를 내렸는데 사교육으로 대표되는 과외가 금지되면서 방문 주간지로 인식되는 학습지 시장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과외금지법이 없어지고 사교육 방법이 다양해지자 시장 역시 보다 치열한 경쟁체제로 들어간다.
바로 이때 등장한 것이 정규직이었던 학습지 교사의 개인사업자화였고 그것이 1989년부터였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동자 권리와 노동조건이 쑥쑥 크고 있었는데, 되레 개인사업자화라니? 서훈배 위원장은 단호하게 그것이 “자본의 경제적인 요구였다.”고 얘기했다.
“당시 회사는 ‘프리랜서, 고소득 전문직종’이란 미사여구를 동원해 노동자보다는 교육하는 선생님이 더 좋지 않느냐며 개인적으로 접근했지만 그것은 교사들의 노동자성을 빼앗으려는 수단이었다. 실제 정규직이었을 때 월 150만 원 정도를 받았다면 개인사업자로 전환했을 때는 3백만 원에서 4백만 원까지 가져갈 수 있도록 고율의 수수료율을 적용했다.“
#잃어버린 노동자성 되찾는 신호탄 ‘재능교사노조’
당시만 해도 신자유주의나 비정규직이란 단어 자체가 낯선 것이어서 노동조합도 대응을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조합원들 임금이나 노동조건이 좋아지는 것 같지만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노동조합은 이를 반대했지만, 회사는 개인적으로 접근해 동의를 받고 있었다. 교사들이 개인사업자화 되면서 노조는 힘을 잃었고 결국에는 사라졌으며 처음 55%대였던 수수료율은 점차 낮아져 현재는 35%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노동조건이 열악해졌음은 물론이다. 10년의 세월 속에 학습지교사들은 ‘고소득 전문 프리랜서 개인사업자’란 이름으로 날로 악화되는 노동조건을 감내했고 이런 침묵을 깬 것이 바로 1999년 재능교사 노동조합 창립이었다.
서훈배 위원장은 이것이 매우 의미있는 ‘사건’이었다고 밝혔다. 10년이란 세월 속에 ‘노조를 지향하는 모임’ ‘안티○○ 사이트 운영’ ‘법원에 소송제기’ 등 소수의 저항은 있었지만 조직화되지 못 했는데, 재능교사 노동조합이 창립되고 파업투쟁으로 노동조합 필증을 받으면서 다른 특수고용업종에도 파급효과를 준 것이다. IMF가 오기 전에 정규직 신분으로 4대 보험 적용을 받았던 화물․건설운송 노동자, 보험설계노동자 등 이 땅에서 ‘특수고용’ 이름을 단 노동자들에게 ‘잃어버린 노동자성을 되찾는’ 신호탄을 올린 셈이다. 개인사업자 등록으로 노동자가 아니라고 하던 사람들이 투쟁하고 파업해서 ‘노동조합 필증’을 받았으니 대단한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배경에는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한편으로는 우울한 분노가 있었다. 89년, 90년대, 2000년대를 거치면서 고소득 전문직종 프리랜서인 학습지 교사들의 노동조건은 하락을 거듭했다. 공부방, 인터넷 교육 등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존 이익을 놓치지 않으려는 회사는 현장에서 일하는 학습지 교사들을 쥐어짰고, IMF 이후 일상화 된 구조조정은 정규직인 중간관리자들이 알아서 노동자를 감시, 통제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유령회원을 만들고 회비를 대납하는 식의 부정업무가 비일비재해지고 이를 견디지 못 한 교사들은 회사를 그만두거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상황까지 이른 것이다. 특히 여성노동자들이 압도적인 학습지 교사들은 주로 저녁부터 밤까지 일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폭력, 성희롱, 성폭력에 노출되는 문제도 심각하다.
때문에 서훈배 위원장은 “혼자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갖는 위험을 예방하고 구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이 발생하면 회사는 “이런 게 알려지면 누가 회원을 하겠냐?” “여기서 어떻게 일하려고 하느냐?”며 회유를 가장한 협박으로 교사들 ‘입 단도리’를 해 실제 일어나는 사건에 비해 알려지는 건수는 매우 적다.
#너무 어려우면 뚫리더라
하루 10시간~11시간 근무에 홍보다 관리다 하며 토요일도 출근하는 학습지 교사 노동자들은 회원관리 때문에 식사를 거르기가 일쑤고 학습지, 자료집, 참고서 등이 들어있는 무거운 가방을 매일 매고 다니다 보니 위장병이나 근골겨계질환을 기본으로 달고 다니지만, 아프면 치료는 당연히 개인의 몫이다. 산재보험을 포함한 4대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기 때문이다.
“회사는 ‘산재’란 말 자체가 나오는 걸 싫어한다. 사회 문제화 되니까. 그리고는 한다는 말이 상해보험을 들어주겠다는 건데, 이건 정말 나쁜 짓이다. 도둑이 다 털어가고 불쌍하니까 조금 되돌려주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가끔 비공개 자리에서 산재보험은 해 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럼 그것을 근거로 ‘노동자성’을 인정하라고 할까봐 못 해주겠다고 한다.”
결국 사회적 논의 속에서 산재보험을 비롯한 4대 보험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는 2000년만 해도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 여부는 ‘이 사람들 노동자 맞다’라는 관점에서 출발했는데 지금은 ‘노동자는 아니지만 보호해줄 필요성이 있다’는 쪽으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2002년 노사정위원회 합의에서도 노동자성 인정을 바탕으로 산재보험이라도 우선 적용해주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180°로 변했다.
“그런 논리는 말도 안 되며 그런 제안은 죽어도 받을 수 없다.”며 강한 어조로 정부를 비판한 서 위원장은 다시 한 번 “원칙에 맞지 않으면 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원래 노동3권을 보장받고 4대보험 당연적용 받던 노동자들을 이익 극대화를 위해 노동자성을 빼앗아 놓고는 이제와서 노동자는 아니지만 구제해준다는 식의 말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것이다.
‘실적은 인격입니다’라고 버젓이 써놓는 회사의 ‘비인격적인 대우’에 문제의식을 느껴 노조활동을 시작한 서훈배 위원장은 활동하면서 지금의 문제들이 신자유주의, 개별 사안이 아닌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을 알았다며 “특수고용노동자 투쟁이 어렵다는 건 알지만 희망이 있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막판에 몰리면 돌파구가 생기고 너무 어려우면 뚫리더란다. 간부들 중에는 경제적 어려움도 있고 정신적으로 황폐화를 겪는 사람도 있는 데 그럼에도 의연하게 떨쳐 일어나 버텨주고 싸워주는 동지들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것이 또한 서로에게 힘이 된다고 한다. “계속 투쟁이 생기고, 이어져 분명 우리에겐 전망과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서 위원장.
내 대(代)에 성과를 볼 수 없어도 적어도 다음 세대, 내 자식에게만은 이런 고통을 주지 않겠다며 또 다른 이름의 수많은 서훈배 위원장이 거리에서 현장에서 법원에서 싸우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95차 총회가 열린 지난 6월 15일, 고용관계위원회가 올린「고용관계에 관한 권고」가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되었다.(물론 투표에서 사용자들은 전부 반대했다) 내용 중 핵심은 사용자들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간접고용을 증가시키는데, ‘사실 우선’에 입각해 노동자와 사용자(자영자)를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즉 위장, 은폐될 수 있는 고용관계 형식이 아니라 노동이 행해지는 과정에서 지시와 통제, 정기적 보수 지급 등의 여부로 따져야한다는 것이다. ‘권고’가 비록 협약처럼 강제의무를 갖지는 않지만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이 이미 사회 화두인 우리나라에 파격적인 영향을 끼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