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건강 2006년 4월호
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한국게이츠지회 이은수 노동안전보건부장. “내가 사진이 잘 안 나온다”며 쑥스러워 하셨다.
#1. 머피의 법칙인가?! 이은수 부장을 인터뷰하기까지 꽤나 ‘머피의 법칙’이 작용했다. 교대근무를 하리란 생각을 못 하고 연락을 취했을 때, 17일 인터뷰를 어찌저찌해서 12일로 당겼으나 산보위가 늦게 끝나는 바람에 결국 만나지 못 했을 때, 그리고 17일 당일 아침, 최종 확인 전화에서 “접촉사고가 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인터뷰를 못 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지만 내심 걱정일 수밖에.
#2. 동대구역 근처 식당에서 인터뷰 하다
당초 게이츠지회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아침에 접촉사고까지 있었는데, 왕복 두 시간의 운전을 그에게 맡긴다는 것은 왠지 ‘안전한’ 처사가 아니란 생각에, 또, 다시 서울까지 갈 시간이 촉박하기도 해 역 근처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이은수 부장은 밥을 먹지 않았다는 내게, “반드시 밥을 먹고 일해야 한다”며 노동청 앞 집회 뒤 종종 왔다는 식당으로 자리를 잡았다. 7년간 ‘노동안전보건부장’으로 활동해온 그의 이야기를 듣자니, ‘열정 가득한 사나이’에게 궁금함이 일었고 인터뷰는 한 시간 반이 넘도록 진행된다.
#3. 현장을 호텔처럼 만들고 싶다
그가 노조 집행부 중 다른 부서가 아닌 ‘노동안전’을 택한 것은 스스로가 안전이나 건강과 거리가 먼 현장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잠깐 그의 말을 들어보자.
“제가 일을 하는 게, 인쇄작업인데요, 일명 파킹을 하는 겁니다. 회사마크를 페인트로 인쇄하는 건데, 한국게이츠에서는 (노동안전이) 가장 취약한 부서, 일을 할 수 없는 부서에요. 입사 전에는 사람이 3일을 못 견디는. 노동조합을 결성하면서 내 욕심이었는데, ‘이 공정을, 내 자리를 개선해야겠다, 내 공정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본다’ 이런 욕심이 있었죠.. 신나, 톨루엔, 페인트 등 냄새를 엄청나게 맡았거든요. 공정이 또 공장 한 가운데 있어 냄새가 확산되고. 학교도 화학공학과를 나왔거든요. 11명 발기인 중 내가 산업안전에 관심이 있었고.”
이렇게 시작한 노동안전보건 활동 결과는 성과가 있었다. 게이츠에서 가장 취약한 공정이었던 그곳에는 새로운 기계를 들여와 공정자체가 바뀌었다. 즉, 다리미로 열전산지를 다려 냄새도 없어지고, 작업환경 자체를 개선시켰다.
▲작업환경개선사례. 유기용제 사용으로 신나, 톨루엔 등의 냄새가 나던 작업기계(TB인쇄기)를 열전사 방식을 채택, 유기용제로부터 작업자 건강을 지키도록 했다.
노동조합 결성과 함께 시작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되새기는 과정에서 이은수 부장은 놀라운 기억력을 보였다. ‘몇 년도, 어떤 건으로 누구를 고발했고, 그래서 벌금은 얼마가 나왔고, 이후 해결은 어떻게 되었다’까지 막힘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만큼 활동에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초창기에는 산업안전도 노사관계만큼이나 최악이었다고 한다. 산안법 위반으로 사측 고소고발이 2000년부터 해마다 이어졌다. 회사가 산업안전의 심각성을 알고 노동조합 활동에 동참한 것은 2002년도부터다. 당시 사장이 해임되고 부사장이 새로 왔고, 관리담당 인사를 교체하면서 노사관계가 점차 나아졌다.
현재까지 이런 협조는 잘 이뤄지고 있고, ‘산업안전부장이 어떻게 하자’고 하면 거의 법처럼 시행되고 있단다. 안전교육 강사도 노조가 원하는 강사로 꾸려지고, 근무 중 노동안전보건 활동 인정, 활발한 근골예방프로그램 작동, 노조가 주도하는 수시유해요인조사 등 다른 사업장에서 부러워할 만한 사안들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
“내 활동원칙은요, 오로지 조합원을 위해, 현장을 호텔처럼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을 갖고 있는 그도 ‘왠지 산업안전이 이용되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조합원 건강과 안전을 위한 산업안전이 (단협 과정에서) 무기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데, 단협에서 합의가 이뤄지면 산업안전 관련 고발이 취하되는 등 맞바꾸기 무기로 이용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그만의 고민은 아니었을 게다. 원칙이 이렇다보니, 오해도 많이 샀다. 산안부장은 산안은 목숨 걸고 다른 것은 안 중요한 거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이럴 때 그는 웃으면서 “산업현장을 안전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어느 누가 산안 담당자를 하려고 하느냐? 나도 비정규직 철폐에 관심이 있다. 일이 많다보니 소화를 못 시키는 거다”라고 답한다. 다들 이해하면서도 서운한 것이다.
#4. 현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일백프로 그만의 노력으로 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게이츠 따라가려면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을 듣게 되기까지 이은수 부장이 한 역할은 너무도 컸다. 물론 결과 뒷면에는 나름의 고민과 안 좋은 상황도 있었다. 교대노동, 비상근이라는 조건에서 밤에 일하고 낮에 활동하고, 일주일에 하루 이틀 집에 갈 정도로 가족보다 노동안전보건 활동이 우선이었다. 그런 활동 속에서도 노동조합이나 회사가 잘 안 따라줄 때 “때려 차불까!” 하는 생각을 술로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잘 모르는 부분은 주위에 자문도 구하고 공부도 해가며 채워갔다. 산안법 책을 달달 외울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직설적으로 “권리보장이 되면 뭐하나? 죽으면 그만인데.” 할 정도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그가 원하는 것 중 하나는 대표자들의 변화이다. 즉, 말로만 산안이 중요하다 하지 말고 대표자들이 노동안전보건을 직접 보고 느끼고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총파업 수련회는 다 모이면서 산안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대표자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현장은 쉽게 바뀌지 않는데, 아직 말로만 중요하고 행동은 보여주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노안 담당자만의 사업으로 끝나는 현실을 극복하려면 노동안전보건 전국 대표자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5.
이은수 부장은 작년 12월, 결국 과로로 쓰러졌다. 집에서 난리가 났음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노동안전보건활동이 담당간부 혼자만의 사업이 되지 않게 하자는 말들은 많이 하지만, 현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란 사실이 이렇게 드러난다.
게이츠 작업환경은 많이 변했다. 새로운 설비가 들어오고, 작업환경 개선에 비용이 투자되고, 근골질환을 예방사업 등으로 ‘오리지널 무재해’가 실제로 달성됐다. 그 덕(?)으로 회사는 전 세계 16개 공장에서 산업안전 부분 아시아지역 1위, 벨기에 캐나다에 이어 세계 3위라는 결과를 얻었다. 노동안전보건 활동으로 시설개선에 투자된 비용만도 수십억이다. 회사는 매출액이 늘어났고, 조합원들은 더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이 결과가 한 사람의 주된 활동으로 이뤄졌다면, 그것이 제대로 된 활동이었는가는 되짚어봐야 할 것 같다. 산업안전 활동은 담당간부 한 사람이 전담하는 일이 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투자해라. 투자동기는 노동조합에서 제시한다!”는 말이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 힘, 그 힘을 생성하는 일이 ‘○○○ 노안부장’이 아니라 노동조합과 현장 조합원에게서 나올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그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간다. 아! 이은수 부장의 약간 낮은 저음의 봄날 돌나물 같은 억양을 그대로 지면으로 옮길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직격 일문일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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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재보상보험법 개악 움직임을 조합원들도 아는가?
= 아직 잘 모른다. 나도 단병호 의원이 낸 법안은 많이 봤는데, 정부안은 못 봤다. 19일, 전 조합원 교육이 산재보상보험법 관련이다. 교육 후 활동방안이 나올 것 같다.
-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젠가?
= 2003년 직장폐쇄 할 때였다. 사장, 공장장 집에 가서 엘리베이터 안에 유인물을 붙이고, 아이 학교에 가서도 유인물을 돌렸다. 회사에서 집행부를 고발했는데, 어찌 된 일이지 집행부 11명 중 나만 빼고 10명을 고발했다. 사측하고 결탁했다는 말도 들었다. 그때가 제일 힘들었다. 지금도 그걸 잊지 못 한다.
- 후임자 양성도 중요한데.
= 내가 이걸 잘 못했다. 7년 동안 너무 빡시게 해서 ‘노안부장은 안 한다’는 분위기다. 현장이 개선되면 산안부장이 굉장하구나 하지만, 나서기를 싫어한다. 관심은 있지만, 전담하려는 분위기는 아니다.
- 얘기를 들어보니 가족들이 이의제기를 많이 할 것 같다.
= 산안활동 이후로 가족에게는 ‘0’점이다. 딸이 둘 있는데 7년 동안 아빠 정을 잃어버렸다고 할까.
-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 건강과 가족을 챙겨야 한다. 활동도 무작정 덤벼드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 회사를 논리와 실증으로 압박해야 한다. 노동조합 간부도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회사를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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