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노동자 안전보건
2012.03.09 01:49

산안법은 안전보건 취약계층 돌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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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산업의학전문의 박영만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⑥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자동차 운전자에게 좌석안전띠를 매도록 하고 이를 위반했을 때 범칙금을 부과하는 도로교통법 조항이 합헌이라고 결정한 적이 있다(헌법재판소 2003.10.30.  2002헌마518 결정). 당시 헌법재판을 청구한 당사자는 사생활 공간인 승용차 내부에서 좌석안전띠를 매도록 하고 이를 착용하지 않을 경우 범칙금을 부과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행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좌석안전띠에 대한 운전자의 부담은 약간의 답답함과 좌석안전띠를 매지 않아 적발되는 경우 부담하는 소액의 범칙금에 불과하지만, 좌석안전띠를 맬 경우 동승자를 비롯한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여 교통사고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공익이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강제로 좌석안전띠를 매게 하는 법 조항이 비록 행동의 자유를 약간 제한하더라도 합헌이라고 하였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좌석안전띠착용을 의무화할 수 있는 근거로 헌법 제34조 제6항을 들면서 국가가 교통사고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하였다.
 
헌법은 우리나라 법체계에서 가장 상위법으로 헌법을 제외한 다른 모든 법(국회에서 만든 법률, 정부가 정한 행정규칙)의 효력은 헌법에 근거를 두므로 어떠한 법 규정이나 국가행위도 헌법을 위반할 수 없다. 오직 국민만이 헌법을 만들고 바꿀 수 있을 뿐, 모든 국가권력(국회, 정부, 법원)은 헌법이 정한 원칙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1987년 개헌으로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헌법재판소가 실질적으로 활동하면서 헌법의 의미를 확인한다는 점이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악법도 법이다.”라면서 무조건 법을 지키라고 강요하던 국가기관이 스스로 “악법은 법이 아니므로 효력이 없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헌법은 대부분 그 규정 내용이 애매하다. 헌법을 너무 구체적으로 정하면 특정 사안에 적용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 포괄적으로 규정하여 다양한 사안에 적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헌법이 구체적으로 일상생활에 적용되는 것은 헌법의 하위법인 법률을 통해서이다. 국회에서 만든 법률은 일반인이 확실하게 뜻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 명확한 문구를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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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받지 않는다

 

                                                                    근로기준법 제6조 (균등한 처우) 
 
근로기준법 제6조 (균등한 처우)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 


안전보건취약계층이란 작업현장에서 산재위험요인에 많이 노출되고 산재예방이나 산재발생 후 보상 등 법적․행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계층이라고 할 수 있다. 고용형태와 고용관계가 다양해지면서 노동현장에서는 똑같이 일을 하면서도 법과 제도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이 늘어나는데 주로 비정규직, 외국인, 청소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산재발생 시 산재보험이나 공상으로 처리하여 자신이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경우가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한다. 또한 비정규직은 산재처리절차를 자신이 직접 처리하는 경우가 정규직보다 2배 이상 많다고 한다.


헌법은 국가에게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포괄적으로 부과하였다. 이러한 헌법규정을 구체적으로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국회가 만든 법률이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어선원및어선재해보상보험법,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청소년보호법 등이다. 정부는 위와 같은 법률을 집행함으로써 헌법이(또는 헌법을 만든 국민이) 명령한 보호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한편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관계법률은 법률을 위반한 자에게 형벌(행정형벌)이나 행정벌(행정질서벌)을 부과한다. 형벌이란 고의나 과실로 법을 위반했을 때 재판을 거쳐서 법원이 부과하는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말한다.


예를 들어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증진하는 것이 목적인데, 만약 사업주가 유해한 작업장에 위험방지조치를 안 해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이것은 법이 달성하려는 목적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이므로 형벌이라는 강한 처벌을 하게 된다. 한편 행정질서벌은 법률위반이 경미한 경우 노동부장관이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다. 즉 사업주가 근로자건강진단을 실시하지 아니하면 과태료라는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을 부과하여 처벌하게 된다. 재판을 거쳐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받은 경력은 수사기관에 범죄기록으로 남아 소위 전과가 되지만, 과태료는 노동부에서 부과하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전과가 되지 않는다. 최근 행정형벌을 부과하는 절차가 복잡할 뿐만 아니라, 형벌을 받으면 전과자가 되기 때문에 국민의 법감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종래 행정형벌로 규정되었던 것을 대폭 과태료로 바꾸고 있다. 행정목적을 직접 침해하는 행위에도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률이 많이 늘었고 과태료 액수도 벌금액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많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노동관계법률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근로기준법은 어떤 이유로든 근로자를 차별하지 말라고 하고 있고, 만약 차별할 경우 형벌로 처벌하고 있다.

 

그렇다면 보호해라

 

                                                                                     헌법 제36조
 
③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헌법은 모든 국민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라고 하고 있으므로 노동관계법령은 안전보건취약계층도 보호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은 사업주가 법이 정한 근로기준을 지키게 하기 위하여 노동부와 그 소속 기관에 근로감독관을 두도록 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이나 그 밖의 노동관계법령에 따른 현장조사, 서류제출 요구, 심문 등 수사는 검사와 근로감독관만이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사건․사고가 발생할 경우 경찰에 신고하면 경찰은 사건을 수사한 후 검찰에 송치하게 된다. 검사는 피의자에게 범죄 혐의가 있어 처벌해야 한다고 판단하면 법원에 기소하고, 최종적으로 법관이 유무죄를 판단하여 형벌을 부과한다. 그러나 노동관계법령 위반 사건은 1차적으로 경찰이 아니라 근로감독관이 수사를 한다. 근로감독관은 수사 후 경미한 법 위반사항은 시정조치하고 법에서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으면 직접 과태료를 부과하며, 형벌을 부과하는 범죄행위는 수사 후 검찰에 송치한다.

 

노동관계법령 위반 사건은 먼저 근로감독관을 거쳐야 되므로 근로감독관은 사건진행의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 2007년 현재 1,400명 정도의 근로감독관이 노동부와 그 소속기관에서 근무하는데 그 중 산업안전보건업무를 담당하는 근로감독관은 400명 정도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2007년도에 지방노동관서에 접수된 신고사건은 261,591건이며, 근로감독관이 처리한 사건은 전년도 이월사건을 포함하여 263,084건이었다. 근로감독관 1명이 약 188건을 처리한 셈이 되는데, 이정도 숫자라면 근로감독관은 사무실에서 접수된 신고사건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수준이다. 따라서 법 위반 사업장에서 시정명령을 이행하는지에 대한 확인도 형식적이 될 수밖에 없고, 다시 근로감독을 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한편 노동부에 대한 신고사건을 법 위반 유형별로 보면 근로기준법 위반이 98.5%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 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최저임금법, 남녀고용평등법, 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의 순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이 적은 이유는 근로자들이 법규정을 잘 모르거나 알더라도 당장 자신에게 피해가 발생한 것이 아니면 신고하지 않은 탓으로 보인다. 만약 제대로 신고를 한다면 산업안전보건을 담당하는 400명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일본은 근로감독관 1인당 담당사업체수가 1,700개소, 담당근로자수는 12,898명으로 우리나라의 2,709개소 및 22,609명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2003년 기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는 방법은 헌법의 정신을 구체화시킨 좋은 법률을 국회에서 만들고 일선 행정기관이 이것을 잘 집행하는 것이다. 법을 위반할 경우 너무 엄하게 처벌하면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처벌을 피하려고 하므로 부패가 늘게 된다. 반대로 처벌이 지나치게 약한 경우에는 다소 희생을 하더라도 위반행위를 범하려고 한다. 따라서 법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하고 적정한 처벌수준을 정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이 보호하는 것은 경제의 근간인 일하는 사람의 생명과 건강이다. 헌법도 국민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라 하고, 헌법재판소도 결정을 통해 이러한 헌법의 정신을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법 자체에서 강한 처벌을 규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법 위반자를 제대로 수사해서 불법에 상응하는 처벌을 부과하는 것이 추상적인 헌법정신을 현실에서 실천하는 길이고 모든 사람이 법을 지키게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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