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연대 집행위원장 강동진
일과건강 2006년 10월호 기획특집
1. 양극화의 특징과 실태
‘양극화’란 사전적으로는 ‘서로 점점 더 달라지고 멀어짐’을 말하는데, 흔히 ‘중간층이 줄어들면서 분포가 양극단에 집중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대두된 양극화는 일시적이고 경기변동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추세적이고 구조적인 성격이 강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수출과 내수 양극화,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극화, 정규직과 비정규직 양극화, 제조업과 서비스업 양극화 등 다양한 양극화 현상을 짚어내고 있지만 대표적인 양극화는 다음과 같다.(신광영, 2006 참조)
첫째, 소득 양극화이다. 소득불평등은 흔히 소득계층간의 소득비율이나 지니계수로 측정되는데,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상위 10% 가구의 소득비중과 하위 10% 가구의 소득비중 차이는 1988년 9.93에서 1993년 8.82, 1996년 8.43으로 감소추세를 보이다가 2000년 12.85%로 크게 증가하였다. 그리고 하위 10% 가구 비율은 1996년 9.7%, 1998년 11.7%, 2000년 11.9%, 2002년 12.4%, 2004년 13.6%로 점점 늘고 있다. 소득불평등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를 보면 1996년 당시에는 0.296으로 가구소득 불평등이 심하다고 볼 수 없는 국가군에 속했으나,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2000년에는 급속히 커져 0.352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소득불평등도는 OECD국가에서 멕시코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상황이다.
둘째, 노동시장, 고용의 양극화이다. 고임금 대기업의 고용은 줄어드는 반면, 저임금 중소기업의 고용은 늘어나는 추세이며, 전체적인 고용율은 정체되는 가운데 일자리는 비정규직 중심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임금노동자 가운데 임시직 노동자 비율은 1993년 26.7%에서 2004년 40%로 증가하였으며, 일용직도 1993년 13.4%에서 1994년 18%로 증가했다가 2001년 이후 줄어들어 2004년 14.7% 수준이다. 그에 따라 임금 격차도 크다. 2001년 임시직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정규직 노동자의 55.9%에 불과하다. 이른바 ‘노동빈곤층’이 증가하고 있어서, 실업자뿐만 아니라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빈곤층이 될 수 있는 노동자는 2004년 508만 명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2003년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최저임금 미만 이하인 경우가 22.1%나 된다. 이들은 임금뿐만 아니라 의료보험, 고용보험, 연금 등에서도 배제되고 있다.
셋째, 자산소득의 양극화이다. 이는 주로 부동산 투기와 주가 상승에 의한 것이다. 서울은 주택보급률은 빠르게 늘어나지만, 자가 비율은 50%에도 못 미친다.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솟아오르지만 그에 따른 시세차익을 챙기는 이는 소수이다. 은행 예금 계좌 수에서 1%를 차지하는 이들이 전체 예금액의 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온갖 개발붐으로 이득을 챙기는 이들은 토지 소유자와 투기꾼 들이다. 주식시장의 독점 구조 또한 여전하다.
이러한 세 가지 대표적인 특징을 종합하면 소득불평등 심화, 노동 불안정화로 ‘노동빈곤층’ 출현이 핵심적인 요인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들 특징만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이 ‘빈곤의 여성화’이다. 즉 소득과 고용 양극화에서 가장 집중되고 고통 받는 계층이 저임금 비정규직 여성이며, 이들 수가 급속하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IMF 경제 위기 이후 중위소득 이하의 남성 빈곤가구는 감소했으나, 여성가구주는 IMF 이전 66.8%에서 직후에 69.1%로 증가하였다. 여성가구주의 빈곤가구는 남성가구주 빈곤가구의 두 배에 달한다. 이러한 여성 빈곤화는 성차별이 구조화된 노동시장, 남성가장 모델에 근거한 임금 및 복지정책, 육아, 간병 등 보살핌 노동의 부담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
남성임금 대비 여성임금 비율은 2002년 63.9%에 불과하며,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 중 정규직은 41.6%, 비정규직은 58.4%인 반면 여성은 정규직이 26.8%이고 비정규직은 73.2%로 여성노동자의 2/3가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임시직 여성노동자 임금은 남성 평균임금의 1/3~1/4에 불과하다.
2. 양극화 해소 대책의 문제점
사실 ‘사회 양극화’는 현상을 묘사한 것에 불과하다. 표피적 해석에 그치기 쉬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소수로의 부의 집중과 다수의 궁핍화, 빈곤화란 현상을 묘사하기에 ‘양극화’는 적절치 않다. 한국사회의 위기를 ‘중간층 유실’이라는 측면에 집중하여, 이를 테면 ‘중간층을 살리자’와 같은 경제부양이나 성장 담론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본질적이고 가장 큰 특징인 비정규직 고용 확산, 노동빈곤층 등장, 고용안정성 약화로 빈곤층이 확대되고, 이것이 이후 세대에까지 대물림되는 과정과 구조는 은폐되거나 왜곡될 우려 또한 있다.
정부와 관련 연구기관들은 양극화 원인으로 △글로벌화, IT 등 기술진보, 중국의 부상과 같은 경제환경 변화 △자영업 비대, 중견중소기업 취약, 자본재․기술재 취약과 같은 산업고용구조 △사회안전망 취약, 경제부양 같은 대증요법 등의 정책을 들고 있다. 그에 따른 양극화 해소 대책으로 개방 가속화를 통한 성장동력 창출, 산업구조 재편을 통한 일자리 창출, 노동연계복지 등을 통한 사회안전망 구축,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여성 친화적 사회 환경 조성, ‘일을 통한 빈곤탈출’ 등을 그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심지어 일부 친기업적인 자본과 보수세력은 ‘성장만이 살길이다’라면서 규제완화, 복지지출 축소 등의 대안까지 내놓는 형편이다. 투자 활성화만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주장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주장과 대책들은 ‘선진화’ ‘사회통합’이란 그럴 듯한 미사여구와 담론을 앞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들은 양극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세계화, 노동 불안정화, 금융자산을 소유한 계층으로 부의 집중, 사회적 배제로 인한 불평등 등을 해소하기 보다는 오히려 강화하는 내용들이다. 일자리 창출은 대부분 임시직이고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에 머물고 있으며, 개방화, 세계화 정책의 지속은 자본투자를 위한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을 초래하거나, 투기적 자본의 이익만을 키울 뿐이며, 여성친화적인 정책은 여성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화를 외면한 채 대증요법 수준에 머물고 있는 형편이다. 자본 스스로 인정하듯 ‘고용없는 성장’은 이미 구조적인 대세이기도 하다.
‘비정규직 보호’라는 미명하에 해고를 자유롭게 하고, 비정규직 고용을 한없이 늘릴 수 있게 하는 법안마저 제출하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결권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공공서비스의 파업권을 무력화시키는 노사관계로드맵을 노사정 합의의 외피를 쓰고 관철시키려 한다. 자본과 보수세력, 그리고 현 정부에게 ‘양극화 해소’는 ‘립 서비스’일 뿐이다.
3.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보다 최저생계비와 최저임금을 적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로는 기초생활수급권리, 사회보험혜택 등 온갖 사회적 권리로부터 배제되는 저소득층과 노동빈곤층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하는 방안이 시급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비정규직, 불안정노동자, 여성노동자 등의 노동권과 생활권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는 비정규직 권리 입법이라는 형태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에서 제출된 바가 있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이들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각별한 노력이 요구된다. 넷째, 교육․의료․육아․간병․주거 등 사회서비스 공급이 공공적으로 이루어지고, 부담을 사회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분야에서 시장화와 개방정책이 중단되어야 한다. 한미FTA 협상은 이를 가속화시킬 것이기에 중단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