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
2012.03.10 23:05

우리도 감정이 있는 노동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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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일과건강 2007년 1월호


‘무한 고객감동’ '고객이 감동할 때까지‘ …

소비자 입장에서야 ‘나’를 감동시킬 정도의 서비스를 해 준다니 반가운 구호들이다. 하지만 노동자 입장이라면 어떨까? 고객 감동이 노동자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소비자만을 고려한 감동 서비스가 노동자에게 더 스트레스를 주진 않을까? 이런 의문을 품으면서 최근 까르푸 자본에서 이랜드 자본으로 넘어간 대형 유통마트 홈에버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을 만났다.


“처음 일하러 오시는 분들 보면… 자기를 비워내지 않으면 이 일을 못해요. 그 감정싸움에서… 얘기하다보면 무시하는 게 느껴지니까. 그걸 자기가 이겨내지 못하면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는 거죠.”

근무일이 아님에도 인터뷰를 위해 나와 준 임혜숙 조합원의 말이다. 옆에서 한명희 조합원이 말을 이었다. “고객들이 ‘내가 물건을 사는 사람이고 너희들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이니까’라는 생각을 해 최고의 대우를 받고 싶어 해요. 서비스업이라 매장에서도 ‘고객은 왕이다’라는 걸 굉장히 중요시 하고요. 고객을 만족시켜야 너희들이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각인시키는 거예요. 사실 표정부터 시작해서 고객들이 꼬투리를 잡는 건 한두 개가 아니에요.”


고객이 감동을 ‘먹느냐 마느냐’는 너무도 주관적인 부분임에도 최일선에서 고객을 만나는 계산원 노동자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위해 자신의 감정은 철저하게 통제해야 하는 셈이다. 환경오염 규제를 위해 받는 봉투 값으로 시시비비가 걸릴 때도 있고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다양한 실수들이 이들에게는 용납되지 않는다고 한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상황이 심각할 때는 이년 저년 소리도 나온다. 고객을 설득할 수 없는 입장에서 계산원 노동자는 그저 ”죄송합니다“로 일관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감정 스트레스가 많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 회사에서 모니터링 제도를 시작한다는데 ‘고객 응대를 어떻게 하느냐’ ‘미소를 지었느냐’ ‘미소를 지었는데 정말 마음을 담아서 지었느냐 건성으로 지었느냐’ 등이 평가 기준이라고 한다. 객관적인 판단이 불가능하거나 힘든 내용들이다. 홈에버는 1월부터 본격적으로 모니터링 제도를 실시하기 위해 점포별로 수십 명의 모니터링 요원을 모집해 놓은 상태이다. 임 조합원은 “이 일을 워낙 오랫동안 했으니까 회사에서 그냥 믿으면 되는데… 모니터링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 우선은 부정적인 관점으로 볼 거 아니에요? 거기서 과연 우리가 어떻게 비춰지는지?”하며 걱정했다. 노동조합 마수경 사무국장 역시 “아무리 고객에게 잘 한다고 해도 사람이란 게 꼬투리를 잡으려고 하면 잡힐 수밖에 없는 거고, 거기서 벗어날 수없는 건데… 그 실험대상을 우리로 한다는 게… 그게 과연 고객만족인지 모르겠어요.” 한다. 직원 만족 없이는 고객 만족도 없다는 사실을 경영진은 정말 모르는 것일까?  

이렇게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계산원 노동자들은 ‘계산대’라는 좁은 공간에서 물건을 들고, 옮기며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탓에 근골질환에 시달리고 상당수가 하지정맥류를 염려한다. 가로 60~80cm 정도의 협소한 계산대 공간에서 고객 물건을 옮기고, 들어 바코드를 찍는다. 좁은 반경에서 움직여야 하고 업무 중에는 간단한 스트레칭조차 할 수 없다 보니 어깨, 팔, 팔목, 허리가 아픈 것은 기본이다. 뭉친 부위들을 풀어주어야 하는데 자정까지 영업하고 퇴근하면 그럴 틈이 없다. 대부분 가정주부인 계산원 노동자들은 늦게 들어가도 ‘주부로서’ 요구받는 기본적인 가사업무를 마치면 잠도 부족하다. “뭉친 거 모르고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직업병이 오는 것 같아요.”라는 마 사무국장 말은 노동자 스스로가 직업병에 걸렸는지도 모른 채 일한다는 얘기다.


업무상 근골격계질환이 기본인 계산원 노동자들의 숨은 직업질환 중 하나가 바로 성대문제이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겠느냐 생각할 수 있는데, ‘어서 오세요’ ‘얼마입니다’ ‘포인트 카드 있습니까?’ ‘현금 영수증 필요하십니까? ‘봉투가 필요하십니까?’ 등 기본적인 말 외에도 고객 질문에 답도 하고 행사 기간에는 행사 설명까지 하면 저녁에는 목이 잠기기 일쑤고 아침에는 목소리가 안 나오는 경우도 있다. 하루 수천 명을 상대하는데다 매장 내 먼지도 많은 점도 기관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넓은 공간에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임혜숙 조합원 말에 따르면 성대 결절 판정을 받은 어떤 동료에게 의사가 하는 말이 어떻게 이렇게 될 때까지 있었냐는 것이다. 그나마 홈에버는 까르푸 시절 노동조합이 식사시간 전후 근무시간을 중심으로 15분씩의 휴식시간을 따내 잠시나마 바깥 공기도 마시고 몸도 크게 움직일 수 있다.


작업환경이 이렇지만 실내 공기질을 측정했다거나 관련 안전보건 교육이 실시된 적이 없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사업주는 서서 지속적으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때에는 당해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비치하여야 한다(제277조【의자의 비치】)는 조항이 있지만 현장과 괴리된 법 조항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도 서비스 산업 비중이 높아지면서 업체 사이에 경쟁이 치열하다. 통계에 따르면 전체 사업체 중 서비스업 비중이 1998년 22.0%에서 2000년 22.8%로 증가추세이고 2000년도 총취업자 중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비율이 무려 70%로 집계되었다. 그러나 서비스 노동자들을 위한 안전보건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등한시 되어왔다. 절대다수가 여성 비정규 노동자이고 노동조합이 있지만 안전보건 문제에는 눈을 돌릴 여유가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더 이상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서비스업인 모 회사에서 직원이 정당한 이유로 고객과 실랑이를 할 때 징계사유가 되지 않는 정책을 폈는데 직원 만족도가 높아져 오히려 매출이 늘어났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다. 천 원짜리를 사도 만 원짜리 대접을 받으려는 소비자 심리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감정노동을 하는 노동자를 위해 나를 100% 소비자 입장만이 아니라 노동자 입장을 단 5%라도 고려하는 소비문화를 가지면 어떨까? 물론 모든 것을 노동자와 소비자 사이의 문제로 몰아가는 자본이 바뀌어야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주체들의 연대와 실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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