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기] 시민의 손으로 유해화학물질 줄이기
- 벨기에 HEAL(Health & Environment Alliance),
독일 BUND(BUND, Friend of the Earth Germany), 덴마크 DCC(Danish Consumer Council)
글 : 김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팀장
최근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대규모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생활 속 화학물질에 대한 경각심도 고조되고 있다. 우리 삶에 깊이 침투한 생활화학물질 중에서 다양한 건강영향을 일으켜 주목받고 있는 물질이 있다. 바로 환경호르몬이다. 환경호르몬으로 인해 사회가 치러야하는 경제적 비용은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증대되고 있다.(참고 : ‘Health Costs in the European Union, How Much is related to EDCS?, 유럽연합이 치러야 하는 건강 비용, 환경호르몬과 얼마나 연관이 있나? http://www.env-health.org/IMG/pdf/18062014_final_health_costs_in_the_european_union_how_much_is_realted_to_edcs.pdf).
누구나 이런 유해물질로부터 자신 스스로와 가족을 지키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가능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지난해 11월 김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팀장과 현재순 일과건강 기획국장은 벨기에 HEAL(Health & Environment Alliance), 독일 BUND(BUND, Friend of the Earth Germany), 덴마크 DCC(Danish Consumer Council) 등을 방문했다. 이들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시민단체로서 다양한 환경문제에 대응해 오고 있다. 특히 BUND와 DCC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생활 속 유해화학물질들, 그 중에서도 환경호르몬의 노출 회피를 도와주는 도구(Tool)를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BUND가 개발한 ‘ToxFox’. 이름도 재밌다. 운영자들의 이야기로는 재치있는 여우의 이미지에, 여우처럼 독성물질을 찾아 회피하고 없애자는 의미를 붙여 놓았단다. 이 앱은 특히 바디캐어 제품들에 함유되어 있는 환경호르몬 위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앱의 구성은 간단하다. 제품의 바코드를 스캔하면 제품의 유해성 평가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검색했던 제품 정보를 다시 찾아볼 수 있다. 만약 제품에 대한 정보가 없을 경우, 소비자는 제조자에게 직접 항의 메일을 보낼 수 있다. 그러면 제조자는 45일 이내에 응답해야 한다. 이같은 시스템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동하느냐, 제조자가 얼마나 성실하게 대응하느냐는 그 다음의 문제다. 소비자가 제품에서 원치 않는 성분을 회피하는데 도움을 주고, 소비자가 제조자에게 정확한 정보 제공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안내해주는 것만으로도 매우 큰 의미가 있다. 120만명 이상이 하루에 1만7천번 스캔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현명한 선택적 소비가 시장에서 유해화학물질을 자연스럽게 퇴출하고 안전한 물질로 대체하는 길을 단축시킬 것임에 틀림없다.
DCC가 개발한 ‘Kemiluppen’은 제품 내 화학물질을 들여다보는 돋보기 같은 것이다. 전성분이 공개되는 화장품 등 개인위생용품들을 평가할 수 있으며, 바코드를 스캔하면 제품에 함유되어 있는 독성 정보를 제공한다. 약 1만개의 제품 정보를 보유하고, 하루에 50~100개 제품정보가 추가되고 있다. Kemiluppen은 ToxFox에 비해서 더 많은 독성 정보 리스트를 활용하고 있다. ToxFox가 REACH의 Candidate list를 활용하는 반면, Kemiluppen은 권위있는 기관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유해정보를 활용해서 제품의 독성 정보를 분류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제조자에게 제품 정보를 요구하는 기능도 물론 탑재되어 있다.
이 외에도 DCC에서는 특정 제품군을 선정해서 실험실에 분석을 의뢰한다. 그렇게 얻어진 분석 결과는 홈페이지에 공개되고, 필요한 사회적 의제를 만드는 노력도 함께 하고 있다. 실제로 사무실 여기저기에 분석 완료된 제품들과 분석 의뢰를 위해 구입된 제품들이 가득했다. 더 많은 데이터가 모일수록 소비자들은 더 안전한 제품을 고를 수 있게 되고, 이를 매개로 안전한 제품을 위해 시민, 시장, 그리고 정부가 모이게 될 것이다.
방문팀은 스스로 물었다. 우리도 가능할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리도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넘어서야 할 한계는 분명히 있다. (사)일과건강에서 제작한 ‘우리동네 위험지도 2.0’에서도 일부 어린이제품과 생활화학제품의 유해성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ToxFox와 Kemiluppen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개발 배경을 갖고 있다. 앞서 소개한 두 앱은 제품에 표기된 전성분 리스트에 기반을 두고 유해성 분류를 한 반면, 우리동네 위험지도 2.0에 탐재되어 있는 독성평가 정보는 실제 실험실에서 화학적으로 분석된 결과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정보의 정확성은 더 우수한 반면 정보를 제공할 제품 종류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분석을 위해서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원이 없으면 제품 정보를 추가하기는 근본적으로 어렵다.
독일에서 통역을 담당해주셨던 문기덕 박사는 모임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서로가 만든 앱을 탐내며? 노하우를 나눴다…” 물론 우리가 넘어야 할 한계는 그들이 마주칠 것보다 한층 더 높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아직도 관련 제도를 만들어야 하고, 시민들의 동의와 공감도 더 많이 구해야 한다. 그러나 가능하다는 믿음이 앞서고 있으니 주저할 이유가 없다. 2018년에는 자율협약에 따라 생활화학용품도 화장품처럼 전성분표시제를 시작한다. 우리 앱을 업데이트하기 위한 좋은 조건이 갖춰지는 셈이다. 그러니 곧 ‘우리동네 위험지도 3.0’을 손안에 쥐게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 아름다운재단 '2017 변화의 시나리오 활동가 재충전 해외연수 지원사업'을 통해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