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시대를 끝내려는 사람들의 땀으로 만들어진,
현대자동차 발암물질 사용이력 조사
글 : 최영은(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연구원)
지난 3월 24일 화요일 오후 2시 자동차산업 직업성 암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자동차산업의 과거 발암물질 사용과 노출에 대한 관점을 수립하고, 향후 자동차산업 직업성 암에 대한 적극적 보상 등의 대책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의논하고자 마련된 자리였다. 백여 명의 노동자, 시민, 산업보건 전문가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참석했다.
토론회는 두 가지의 주제발표가 있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김신범 실장이 현대자동차 발암물질 사용이력 조사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이어서 가톨릭대학교 김형렬 교수가 우리나라의 직업성 암 인정현황과 개선방안에 대해 발표하였다. 김신범 실장은 지난해 수행한 현대자동차 발암물질 사용이력 조사의 결과를 요약하고, 향후 과제로서 자동차산업 전반에 걸친 발암물질 직무-노출 매트릭스를 구축하여 피해자들의 고통을 줄여야 한다는 제안을 하였다. 김형렬 교수는 우리나라의 직업성 암 인정현황과 최근의 변화, 그리고 인정기준의 주요 쟁점을 정리하고 개선 방향에 대해 제안하였다.
지정토론에 나선 권동희 노무사(법무법인 새날)는 직업성 암 산재 사건 수행시 느껴왔던 고민과 함께 현실적인 문제를 짚어주었고, 박동욱 교수(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자동차 산업의 중요 발암물질에 대한 직무-노출 매트릭스 구축의 필요성에 동감을 표시하였다. 해당 조사 사업의 실무를 맡았던 고인섭 실장(현대자동차지부 노동안전실)은 이번 조사가 갖는 성과와 한계에 대해 말하며, 정부와 기업에게 그동안 관리하지 못한 과거에 대한 미안함을 가지고 미래의 고통을 줄여줄 대책을 함께 만들자고 당부하였다. 반면, 고용노동부 안경덕 국장(산재예방보상정책국)과 안전보건공단 강성규 기술이사는 이렇다 할 의미있는 주장을 펴거나 실효성 있는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과거의 발암물질 노출에 대해 입증할 자료가 매우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되었다. 특히 개별 피해자들이 입증 책임을 질 것이 아니라 정부와 산업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각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 대책을 마련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에 그쳐야 했다. 이 때문에 정부의 조치를 기다리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과 전문가들이 과거 발암물질 노출에 대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현대자동차 발암물질 이력조사는 노동조합과 연구진만의 힘으로 이루어졌기에 자료 확보에서부터 한계가 있었다. 한편으로, 이런 조건에서 애쓰고 노력한 결과이기에 예상치 못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우리는 아직도 비밀의 시대에 살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노출되는 화학물질의 성분은 여전히 기업의 비밀로 취급되고 있다. 언제까지 비밀의 시대가 유지될 것이냐 아니면 이제는 비밀이 풀려서 노동자들에게 알권리가 보장될 것이냐 여부는 노동조합과 양심적인 전문가들의 손에 달려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