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0일 릴레이 기고] ‘피로사회’에서 벗어나자

이야기 하나,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사회

며칠 전 친구와 술자리에서 작은 언쟁이 있었다. 동갑내기인 그 친구는 ‘예쁜 딸’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며 나를 부러워했다.(나는 ‘귀여운 딸’이 둘 있다.) 친구는 딸이 있으면 온 몸 바쳐 돈을 벌어, 딸이 해달라는 걸 다 해주겠다고 했다. 필요하다면 ‘기러기 아빠’도 되겠다며 한 술 더 떴다. 나는 ‘바보 같은 놈’이라고 면박을 주었는데, 이것이 언쟁의 시작이었다. 

자식에게 정말 줘야 할 것은 사랑과 의지이다. 사랑은 아이에게 자존감, 그리고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 의지는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사랑은 내가 주면 되지만 의지는 녹록지 않다. 어떤 의지를 어떻게 가질 수 있게 할지, 참 어려운 문제다. ‘개고생’도 해 보고, 실수도 해 보고, 봉사활동 하며 약자에 대한 측은지심도 가져봐야 한다. 이 세상의 ‘원리’들과 부대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자존감을 가지고 세상과 부딪치면서 신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아이를 키우는 것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명품, 또는 ‘아이거 북벽(노스페이스, 몽벨 등의 브랜드를 상기시키는 알프스의 험준한 산. 편집자주)’ 브랜드의 ‘교복’을 소 닭 보듯 하면서 센스있게 재래시장 브랜드로 코디를 하는 아이들이 그래서 더 귀엽다. 

사교육으로 가자면 언쟁은 논쟁 수준이 된다. ‘굶지 않아, 하고 싶은 걸 해’라는 요즘 슬로건은 아주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본인이 세운 것도 아닌데 로또 수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끌려 다니면서 오늘도 사교육 시장에서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죽기 살기로 공부하는 아이들은 이 풍요로운 시대의 최대 피해자다. 부모는 이 비용을 대느라 허리가 휜다. 현대판 ‘우골탑’인 셈이다. 그런데 실제 중·고등학교 교실의 70% 이상이 수업 시간에 자거나 딴 짓(?)을 하고 있다고 한다. 차라리 이 시간에 체력을 쌓거나, 현장 실습을 하거나, 독서를 하는 것이 더 도움되지는 않을까? 아니면 정말 신나는 수업을 만들거나. 이것은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으면, 가지고 있는 풍요는 무용지물이다. 

기업으로 가 보자. 기업이 기본적인 비용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돈을 쓰는 곳이 바로 ‘광고 홍보’ 쪽이다. 기술 투자에 들이는 규모 다음의 크기를 나타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2년 우리나라 기업이 매출액에서 지출하는 경상개발비 비중은 1.4%이고, 광고선전비 비중은 0.6%로 인건비 다음으로 주요 순위를 나타내고 있다. 필자주) 뿐만 아니라 사업장 안전과 직접 관련되어 있는 수선비(공장의 건물, 기계장치 및 공·기구 등의 수선을 외부에 의뢰했을 경우에 발생하는 비용. 주로 폭발 등의 가능성을 가진 장치산업은 대부분 외부 의뢰를 진행하고 있음. 필자주) 비중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광고 비용을 많이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내에서 유명한 해외 자동차 브랜드는 광고를 많이 해서 잘 팔리는 게 아니다. 제품의 질이 좋기 때문이다. 수선비는 왜 잘 안 쓰이는가?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구미 불산 누출, 삼성 불산 누출, 여수 대림산업 폭발 사고 등 최근 계속되는 화학 물질의 누출, 폭발의 원인 중 하나는 수선비를 구두쇠처럼 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 이제 정부로 가보자. 세월호 사건에서 목격했듯, 정부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안 했다. 정부가 해야 할 감독 기능과 감시 기능 그 어떤 것도 작동하지 않았다. 돈을 제대로 안 쓴 것이다. 이제 우리는 돈을 제대로 쓰는 법부터 새롭게 익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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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손문상) 

이야기 둘, 돈을 왜 벌어야 하는지 모르는 사회

돈을 왜 벌까? 간단하다. 쓰기 위해 버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는 벌고 싶어도 못 벌고, 누구는 너무 많이 번다. 그래서 누구는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누구는 다 쓸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주체를 하지 못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다른 나라에만 있는 얘기다. 제대로 쓰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너무 열심히 벌어왔다. 70~80년대 고속 성장 끝에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를 맞고, 2008년 미국 발 세계경제 위기를 겪어 내면서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10위권 언저리에 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값 등록금은 공약에서만 맴돌고 전세 값은 매일 상한가를 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고속 성장에 가려져 안전이 항상 뒷전이었다는 점이다. 성장을 위해 모든 것이 희생되었다. 왜 성장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산업 재해 사망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 십 수년간 계속해서 1~2위를 다투고 있다. 죽지 않으면 산재로 잘 인정해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매년 2000명에 달하는 노동자가 일 때문에,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그런데 산업재해 발생률(산업재해보험 대상 노동자 중 사망자+생존자. 필자주)은 국제적으로 매우 낮다. 왜? 우리나라 노동자는 산업 재해를 당하면 다 죽는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다. 

기업은 엄청나게 성장해 돈을 많이 벌고 있는데, 그리고 노동자들의 임금도 계속 올라가고는 있는데 왜 사람들은 자꾸 사망할까? 기업이 안전에 쓰는 비용이 적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이 돈을 더 벌기 위해 노동자 안전에 투자하지 않는다고 볼 수밖에 없다. 
 
기업이 성장을 위해 노동자 안전만을 꺼리는 게 아니다. 기업이 내놓는 제품과 서비스는 꽤 자주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다. 세월호 사건은 대표적이다. 각종 화학물질 누출 및 폭발사고를 보라. 그 뿐인가. 석면 탈크가 포함되어 있는 베이비 파우더, 독성 물질이 들어있는 가습기 살균제, 온갖 중금속과 환경 호르몬으로 도배되어 있는 학용품, 어린이 장난감 등...

우리나라 국민 사망원인 1위는 암, 2위와 3위는 뇌심혈 관계 질환이다. 그럼 4위는 무엇일까? 자살이다. 나이든 사람들의 상위 사망 원인이 주로 암이라면 10대~30대까지의 사망 원인 1순위는 자살이다. 10대~30대가 살아가기에 우리나라는 부적절한 나라다. 물론 노인자살률 또한 심각하다. 자살을 생각해 본 경험이 있는 노인 중 30%가 ‘경제적 이유’를 원인으로 꼽았다. 성장을 제일로 꼽고 있는 국가는 모든 국민을 스스로 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는 ‘가만히 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게 있다. 안전을 안 지키는 것이 자랑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이다. 공사 기간이 당초 계획에 비해 크게 단축되었다고 환호하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는 경우를 우리는 쉽게 접할 수 있다. 현대제철이나 대림산업의 잇따른 노동자 사망이나 폭발 사고가 결국 공기 단축 때문이라는 사실은 이미 언론을 통해 드러났었다. 이는 안전 조치를 안 했거나 과로 노동을 시켰거나, 둘 중 하나이거나 둘 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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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최형락)

이야기 셋, 돈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에 살기 위해

마지막으로 ‘깊은 심심함’에 대해 얘기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를 이번 여름 중 꼭 시간을 만들어 읽어보길 바란다. 기업과 국가는 성장만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지만, 그래서 결국 세월호라는 괴물이 만들어지게 되었지만, 우리는 ‘성장만이 아닌 삶’을 위해 달려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피로사회’를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나 자신과 대화하는 ‘깊은 심심함’을 느껴봐야 한다. 현대인이 피로한 이유는, 고대 사회나 중세 사회처럼 누가 채찍을 들고 우리를 노동에 내몰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스스로 성과주의에 갇혀 자신이 자신에게 채찍을 내려치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혹사시켜 좀 더 많은 성과를 만들도록 강제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때로 해서는 안될 불법으로, 또 탈법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대한민국 불법 증개축’을 가속화하는 길이다.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이 짓을 멈춰야 한다. 

글 : 일과건강 한인임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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