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아시아직업환경피해자대회
지난 10월 28일(월)~30일(수)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기업살인 이제 그만(No More Victims)’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제17회 아시아직업환경피해자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아시아 직업 및 환경피해자 권리네트워크(The Asian Network for the Rights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Victims, ANROEV, 이하 안로아브) 주최로 진행된다. 안로아브는 ‘사업장이동의 자유 보장과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허가제 쟁취’를 한 목소리로 촉구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위험의 외주화, 청소년 노동, 이주노동, 과로사 및 자살, 첨단 전자산업 등 분야 산재 피해자와 피해 가족이 참여해 경험을 나누고 원인과 대안을 논의했다. 국내에서 대회가 열린 건 처음으로, 전 세계 19개 국 활동가 및 전문가, 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주연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은 '이주노동자의 안전보건' 워크숍에서 '이주 전과정으로 보는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발표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6년간 산재로 사망한 국내 이주노동자는 607명이다. 한 해 평균 100명, 하루 2.7명꼴로 죽는 것이다. 이 중 86.4%(525명)가 제조·건설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영세 사업장들이 산업재해로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산재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2017년 5월 기준 국내 노동자의 산재발생률은 0.18%였는데, 이주노동자는 1.16%로 6배 높았다. 산재사망률은 이주노동자가 4배 더 높다.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위험의 이주화'가 확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이주노동자 70%가 30인 미만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며 "중소·영세 사업장 설비는 오래되고 안전위협 요소가 많은 데다, 산업안전교육이 부실하다"고 설명했다. 설령 사업장 설비에 안전장치가 있더라도 작업효율을 높이기 위해 안전장치를 가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경북 영덕 오징어 가공업체에서 일어난 이주노동자 집단 질식사망사고도 안전장비 하나 없이 폐기물 저장탱크 안을 청소하러 들어갔다 변을 당한 경우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더 열악한 조건에서 일한다. 이주노조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에 따른 벌금을 피하기 위해 고용주는 노동자가 다쳐도 산재 처리를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전한다. 노동자들도 강제추방 두려움에 사고를 당해도 몸을 숨긴다고 한다. 지난 8월14일 속초 아파트 공사장에서 승강기 추락으로 다친 2명의 이주노동자는 병원 이송 중 잠적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던 이들은 몸 아픈 것보다 강제추방이 더 두려웠던 셈이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이주노동자 산재를 개선하려면 산재예방의 최우선 대상을 이주노동자로 설정해야 한다"며 "출국 전, 입국 후 노동자 대상 산재예방교육을 강화하고 사업장의 노후설비나 안전장치 미가동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문제는 한국만의 이슈는 아니다. 말레이시아 내 다국적기업에서는 주로 인도네시아 여성노동자들을 고용한다. 말레이시아 직업의학전문의 자야발란 탐비야파씨는 "여성들이 선 채로 12시간씩 근무한다"며 "1시간의 휴식시간은 한 근무조마다 세 번씩밖에 주어지지 않고, 체력 한계치까지 몰아붙이는 통에 업무스트레스가 극심하다"고 주장했다. 탐비야파씨는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다루는 일은 주로 이주노동자에게 맡기고, 병에 걸리거나 다쳐도 보상을 요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편 대회 3일차인 10월 30일 (수)에는 노동환경건강연구소과 녹색병원을 방문해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