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철도공사는 연이은 죽음에 대해 사과하고 근본대책을 수립하라!



보름 사이에 두 명의 철도 기관사가 생때같은 목숨을 스스로 끊었다. 갑작스런 죽음에 가족은 물론이고 철도를 천직이라 믿으며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충격과 슬픔에 빠져있다.

지난 23일 故최00 기관사가 자신이 사는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다. 故박00 기관사가 남영역 선로에 뛰어들어 자살한 지 12일만이다. 故최00 기관사는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지금도 영안실에 있다. 무엇이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가? 이미 알려진 것처럼 이들은 죽기 전까지 철도 기관사로서 직무상 발생한 공황장애, 우울증 등의 정신적 고통을 호소해 왔다.

故최00 기관사는 17년간 수도권 1호선 전동차의 기관사로 평범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 왔다. 그런데 지난 1월 오산대에 역에서 정지위치 어김 사고를 내고 나서부터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그 사고로 인해 2개월에 걸친 직위해제와 이후 3개월 감봉의 징계를 받았다. 개인에게 돌려진 사고의 책임은 혹독했다. 직위해제 기간 중 전례없는 특별자격심의 등으로 정신적 압박과 인간적 모멸감까지 느꼈다고 토로했다. 고인은 운전 업무에 복귀했지만 ‘사고로 또 징계를 받으면, 해고당하면 어쩌나?’라는 두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결국 ‘직무부적응에 의한 스트레스성 장애’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던 중 정신적 부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았다.

고인이 기관사 업무를 담당했던 1호선 전철 구간은 다양한 열차(노선), 각기 다른 차량, 복잡한 선구, 높은 혼잡도 등으로 인해 사고나 장애의 위험이 높은 곳이다. 더구나 스크린도어가 거의 설치되지 않아 언제 사람이 선로로 뛰어들어 사망사고를 낼지 모른다는 심리적 부담감을 안고 극도의 긴장감속에 운전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곳이다. 2011년 선로에 뛰어들어 자살한 61명 중 무려 53명이 코레일에 집중되어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은 무시됐으며 기관사의 신체적 정신적 상태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2009년 허준영 전 사장의 취임이후 효율성만 강요하고 따지는 경영은 모든 책임을 현장 노동자에게 전가했다.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사고와 장애에 대해 그 원인을 분석하고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찾기보다는 희생양을 찾기에 급급했다. 작은 실수에도 무자비한 징계와 전출이 잇따랐다. 2011년에만 수십명이 중징계를 당했으며 낯선 곳으로 전출을 당했다. 이들 중 3명의 기관사는 해고되었다. 기관사들은 업무 자체의 스트레스에 더해 ‘사고와 장애의 책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숨막히는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무차별적인 징계와 과도한 책임 추궁, 인간적 모멸감이 철도 기관사들을 우울증으로 공황장애로 연이은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나아가 지금 이 시간에도 철도 기관사들은 공황장애 등 각종 정신질환의 고통에 방치된 채 열차 운전에 내몰리고 있다.

그러나 계속되는 철도 기관사의 죽음에도 철도공사는 책임을 통감하기 보다는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기에 급급했다. 일차적인 책임당사자이며 재발방지를 책임져야 할 철도공사가 문제를 풀기보다는 애써 회피함으로써 故최00 기관사는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철도공사가 고인의 명예회복뿐만 아니라 기관사의 건강권, 나아가 시민의 안전을 위해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한다.

하나. 철도공사는 먼저 고최00 기관사의 명예가 회복되고 최소한 유족들의 생계대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조치하라.

하나. 열차 운전 업무에 대한 현장 실태 조사를 통해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 대책을 마련하라. 사고나 장애 발생 시 징계 등 책임 추궁이 아니라 원인 규명을 우선하는 방식으로 체계를 바꿔야 한다. 또한 기관사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사상사고 발생 시 정신과 상담 의무적 실시, 사고관련 징계 경험자 등에 대한 신경정신 상담 실시 등 실질적 조치를 진행해야 한다. 또한 광역전철구간 스크린도어 설치 등 사고 예방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연이은 철도 기관사의 사망은 몇 명 노동자의 사망으로 덮어둘 문제가 아니다. 기관사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원인을 밝혀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이같은 안타까운 사고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현실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시민 안전마저 위협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직시해야 할 것이다.

현재 철도 기관사들은 고인의 명복을 기리는 한편 고인의 명예회복과 근본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사복근무를 하고 있다. 철도공사가 죽음의 기로에 서있는 기관사들의 절절한 요구를 끝까지 외면할 경우 철길을 함께 달리며 기관사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우리 궤도노동자들이 굳건히 연대해 투쟁할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2012년 6월 27일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

(광주도시철도노조, 대구지하철노조, 대전도시철도노조, 부산지하철노조, 서울도시철도노조, 인천지하철노조, 철도노조)



(보건의료단체 성명서)

시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철도지하철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라!!



지난 6월 23일 한국철도공사 구로승무사업소에 근무하던 최정환 기관사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뛰어 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의 죽음은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의 원인을 기관사 개인 혹은 관계된 노동자의 실수’로 치부하면서 이들에게 징계와 모욕적인 처분으로 인해 발생한 심리적 불안이 가중된 결과이다.

기관사 업무가 원인이 되어 심리적 이상증세를 호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지난 6월 11일 남영역에서 달리는 전동차에 스스로 몸을 던진 고 박동춘 기관사에 이어 이번 달에만 두 번째이다.

철도 100여 년의 역사동안 십 여 일만에 두 명의 기관사 잇달아 업무에 기인한 심리적 불안으로 목숨을 끊은 것은 처음이라고 본다. 따라서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여 동일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그만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여야 한다.

다만, 우리는 몇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기관사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비슷한 경험을 한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건강하다’ 혹은 ‘개인적으로 내성적인 성격 탓이다’는 말로 진실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두 분의 기관사는 분명히 업무와 관련된 일로부터 시작되어 심리적 이상을 호소했다.

둘째, 전동차 운행을 하면서 사고가 발생한 이후의 대책이 아닌 ‘기관사 근무환경 개선’을 목표로 하여야 한다.

사고를 경험한 이후 안정기간을 부여하고 정신과 상담을 하게 하는 것은 심하게 이야기하여 사후약방문이다. 중요한 것은 기관사들이 일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면서 좀 더 편안하고 좀 더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셋째, 징벌주의적 관리형태를 없애야 한다.

공기업 전반에 성과주의적 평가 및 인사제도가 도입되면서 ‘무엇인가 실수를 하면’ 반드시 징계나 모욕적인 처벌이 뒤따르고 있다. ‘작은 실수라도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극도로 긴장한 채 오랜 시간 동안 업무에 임하다 보면 오히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극심한 탈진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더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징벌주의적 행태는 버리고 보다 합리적이고 보편타당한 관리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전동차를 운전하는 기관사는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차 보루이다. 이들의 안전이 결국 전동차를 이용하는 수 많은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다. 시민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라도 기관사의 건강은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두 분의 기관사가 경험한 불안과 공포가 다른 기관사들에게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할 것을 관계 기관에 촉구한다.

마지막으로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


2012년 6월 27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일과건강, 노동건강연대,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인천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건강한노동세상, 산업보건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