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추방 연속기고·④] 예측가능한 직업병, 사회 문제되기 전에 대비해야

이현정 일과건강 상근활동가

지난달 30일 토요일, 가뭄을 해갈하는 비가 온 땅을 적셨다. 일요일 오전부터 비가 멈출 것이라는 예보보다 앞서 토요일 저녁부터 빗줄기는 가늘어졌다. 일요일 하늘, 해는 가리고 비는 멈췄다. 꿈보다 해몽이겠지만 마치 송면이가 하늘에서 그렇게 한 게 아닌가 싶었다.

15세 소년으로 멈춰있는 故문송면과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를 추모하는 '2012 산재사망노동자 합동추모제'가 지난 1일 경기 마석 모란공원 위령탑에서 열렸다. 조촐한 제사상이 차려졌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문송면 유가족,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자, 1988년 문송면과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을 함께 했던 보건의료인들이 잊지 않고 자리를 찾았다.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와 그 뜻에 함께 하고 있고, 하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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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일, 마석모란공원에서 열린 '2012 산재사망노동자 합동추모제'를 마치고 간 문송면 묘역에서 추모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사진 가장 오른쪽이 송면이의 수은중독이 직업병임을 인정받기 위한 모든 과정을 함께 했던 장남 문근면 형님이다. 그 옆이 처음 상담을 받고 직업병 인정투쟁에 나섰던 김은혜 선배. ⓒ일과건강


2012년의 한혜경, 1988년의 문송면

추모사, 추모노래, 추모시에 이어 문송면의 유가족이 인사를 하는 시간이다. 올 해는 어머니가 자리를 못 했다. 태안을 홀로 지키는 송면이의 어머님은 거동이 힘들 만큼 무릎이 아프다고 한다. 대신 조카 셋이 새롭게 인사를 했다. 1988년 당시 송면이 소식을 듣고 지었다는 어느 시인의 시가 유가족에게 전해졌다.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인 한혜경 씨와 어머님도 인사를 했다. 삼성전자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병에 걸린 피해자와 유족의 아픔을 이야기했다. 이들은 2012년 '오늘의 문송면'이다. 뇌종양으로 몸이 불편한 자식을 돌보는 혜경씨 어머님과 먼저 간 아들을, 동생을, 형을 가슴에 묻은 문송면의 유가족이 1988년에 머물러 있는 직업병 문제를 보여준다.

추모시 - 마흔의 문송면에게
문동만

당신을 떠올리는 저녁
상추를 씻고 고기를 구워 반주가 곁들인 저녁상을 차려
식구들과 밥을 먹고 설거지 하는 저녁에
나는 어떤 가계의 수은주를 떠올렸습니다
쪽창 옆에 달린 단칸방의 온도계는 겨울이면 영하의 냉기를
품고 해가 떠도 쉬이 올라가질 않았습니다
당신만한 나이였을 형은 멀리 객지로 나가고
동생들은 마른버짐을 피우고
나는 단칸방에서 쉰 막걸리 냄새와 어른들의 화투패로 북적이는
고요가 없는 그 집을 벗어나
도시 어딘가 있다는 공장을 가고 싶었습니다
먼저 떠날수록 어떤 희망이 공장안에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지요

어쩌면 당신은 나보다 빨리 와 먼저 가버린 것
산다는 것은 무용無用한 것이 아니라 괴로운 것이란 걸
짧은 생으로 보여준 것
불가항력으로 노동은 중독되는 것이고 중독 없이는
살 수 없는 몸뚱이들이 손가락이 잘리고 허리가 뒤틀리고
머리가 바숴져
아, 사다리에서 떨어진 지지리 불운한 내 형은 발바닥에 철핀이 박혀
여태껏 다리를 절고 내 몸에 몇 있는 상처도 철판에 찍히고
용접불똥에 데인 그런 자국들인데

무덤 앞에서 내 아들보다 한 살 많은
열다섯 아이를 만나는 불우함은 누구의 것입니까
당신이 머금은 독하고 무거운 물질은 이제 누구의 것입니까
매일 매일 줄을 선 죽음의 대기자들은 누가 매겨준 순번입니까,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뜨거운 바퀴 아래 깔려서,
이 세상의 모든 회전체와 구동체 속에서, 갖가지 밥벌이만큼
그만큼은 불행이 예고된 길 위에서
말려가고 낙하하고 맥없이 쓰러지는 죽음들은,
하루 7명씩의 사라지는 이 서러운 죽음은 이제 누구의 것입니까
아무도 이 죽음만은 덜어가지 않습니다 대신 죽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고즈넉한 저녁밥상이 있는 시간이 다수의 오늘이 아님을 압니다
다만 궁금하기만 한 것은 당신은 지금 어떤 세상에서,
어떤 식솔을 꾸려서 밥을 자시는지
지하에서만 자란다는, 혹은 천국에서만 자란다는 식물성 밥상을 차려놓고
이 풀도 타는 가문 세상을 시청하며 고요와 평온이 없는 노동을 비평하고
애틋해하며 그저 싱거운 일인데도 파안대소 하며
식구들의 입을, 밥알을 흘리고 침이 튀겨도 이쁘기만 한 식구들을

바라보는 저녁이 있기도 한지 궁금하기만 한 것입니다 


송면이가 잠들어 있는 묘 앞에서 88년 7월2일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산업재해 인정을 받아 산재 지정병원으로 옮긴 지 3일 만에 숨을 거둔 송면이를 기억하는 문근면 형님과 김은혜 선배가 모인 이들을 대표해 헌화했다. 모두가 묵념을 한다. 24년 전 노동자들이 겪었던 아픔과 고통이 오늘 날은, 적어도 내 아이들이 일할 때는 없어지도록. 직업병임을 몰라 병원마다 돌아다니지 않기를, 정보를 얻기 힘든 노동자가 직업병임을 인정받기 위해 수많은 날을 보내지 않도록, 병명과 원인을 알아도 산재인정이 두 달, 석 달 걸리지 않기를.

문송면 묘를 지나 모란공원에 묻힌 산업재해로 사망한 이들을 돌아본다.

1990년 3월에 입사해 4월4일, 야간작업 중 기계에 휘말려 세상을 뜬 강민호(당시 24세), 원진레이온 노동자로 직업병 투쟁의 밑거름이 된 강희수(당시 45세), 137일의 장례투쟁으로 원진레이온 노동자 역학조사를 이끌어낸 김봉환(당시 53세), 남들이 부러워한다는 삼성에 2010년 입사해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다 2011년 회사 기숙사 건물 13층에서 투신해 사망한 김주현(당시 26세), 1989년 5월10일 선반공으로 입사해 24일 오후 30kg의 추에 뒷머리를 맡아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진 조정식(당시 25세)…. 역사는 이들을 기억하지 않지만 가족과 그들 동료의 가슴에는 영원히 기록될 산재사망노동자들이다.

직업병, 새로운 노동조건과 고용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해 

문송면·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을 기억하고 이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일과건강 포럼 '2012 송면이를 만나러 지금, 갑니다'도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1일까지 북한강 연수원에서 열렸다. 포럼은 1세션 △지역사회와 노동안전보건운동 2세션 △직업병 수난사와 현 시기 과제, 두 가지로 나눠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안전보건을 주제로 지역사회와 나눌 수 있는 방법과 한계, 고민을 나누고 직업병 예방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진지한 토론이 오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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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건강포럼 첫 번째 세션 '지역사회와 노동안전보건운동' 토론 모습. 경남 양산의 웅상지역, 전남 여수·광양, 서울 성동구, 대구 성서공단에서 노동안전보건이 지역운동과 결합하는 다양한 방식의 활동사례가 발표되었다. ⓒ일과건강

두 번째 세션에서 '한국의 직업병 역사와 주요 발생 사례'를 발제한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직업성 근골격계질환센터 소장은 시대별 직업병 발생 특징과 주요사례, 이와 맞물린 정책제도 변화를 정리했다. 이윤근 소장은 "한국사회는 고령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건강 불평등, 서비스업 비중 확대, 직업성 암 등 새로운 노동조건과 고용방식 변화에 따른 건강문제는 물론 전통적인 직업병 문제를 동시에 풀하는 처지"라며 "직업성 암, 감정노동, 노동강도와 관련된 직업병 등 예측 가능한 직업병이 사회문제로 나타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 토론자로 나선 주영수 노동건강연대 대표는 최근 진행된 연구 '산업재해, 직업병 의료체계 개선방안'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산재의료체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중 산재전문의사 제도가 참가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주영수 대표는 "산재전문의사는 산재환자 주치의 개념으로 산재환자에게 의료체계를 전달하는 문지기 역할을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윤간우 녹색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과장은 직업병 통계가 가진 함의를 중심으로 '숨겨진 직업병을 드러내기 위한 활동 전략'을 전달했다. 윤간우 과장은 산업재해 보상통계와 근로환경조사통계에서 나타난 업무상 질병, 사고 통계의 차이점을 얘기하며 "작업현장의 실제 재해가 통계로 나타날 수 있어야 보다 정교한 직업병 예방정책을 세울 수 있다"며 직업병 통계의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토론은 광주전남에서 실제 산업재해 업무를 담당하는 문길주 활동가가 맡았다. 문길주 활동가는 "작업환경측정 부실, 질병을 발견하거나 예방하지 못하는 건강검진, 부실한 산재통계 등이 유지되는 한 직업병 예방의 미래는 없다"고 직설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불행하게도 사건이 이슈가 되어야만 풀리는 곳"이라며 금속노조의 직업성 암 인정투쟁처럼 "숨어있는 직업병을 발견해 사회에 알리고 끈질기게 싸워야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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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산재사망노동자 합동추모제'에 참여한 사람들 앞으로 문송면의 영정이 보인다. 직업병 예방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집중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는 언제든지 또 다른 문송면이 나타날 수 있다. ⓒ일과건강 



빼앗긴 건강과 생명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세션 2 발제와 토론자, 참가자들은 공통되게 비정규직, 사내하청, 여성, 이주노동자 등 소외된 노동계층의 건강문제에 사회가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1988년 노동자들이 겪었던 직업병 문제가 지금은 바로 이들에게 이동했을 뿐, 본질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대와 환경 변화에 따라 직업병 발생에도 새로운 변화가 있다. 24년 전, 문송면이 병원을 전전하고 몇 달을 싸워 직업병 인정을 받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갔던 현실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변화에 대응하고 기존에 해결되지 않는 직업병 문제를 푸는 데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집중되어야 한다. 직업병이 앗아간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은 어떤 방식으로도 원상복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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