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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리비(Libby)지역의 석면 경고 표시. 암과 폐질환을 일으키는 석면이 있어 관계자외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가 쓰였다. ⓒ earthfirst.com

 

간접노출로도 악성중피종 발병

 

인류가 석면을 사용한지는 4천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석면의 위해성 기록은 1890년대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초창기부터 영국에서는 석면광산, 석면방직공장, 석면건축재공장 등에서 다수의 석면피해가 꾸준히 발생하였다. 석면피해 연구는 대부분 직업적으로 노출된 노동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환경노출로 질병이 발생하는 사례도 증가했다.

 

석면으로 발생한 대형 참사는 미국이 선구적이다. 미국 몬태나 주 리비(Libby)라는 곳에 있는 석면광산에서는 1930년께부터 석면의 일종인 질석을 생산했다. 질석은 단열재, 비료, 화분 흙, 브레이크 패드 등의 주원료로 사용되었다. 광산을 운영하던 그레이스 사는 수많은 노동자와 주민들이 죽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하루 수천 톤의 질석을 가공했다. 그러나 석면피해가 늘어나면서 결국 1990년 광산은 문을 닫게 되었다. 2003년까지 리비에 살던 주민과 노동자 1만 2천여 명 가운데 200여 명이 석면폐증, 폐암, 악성중피종으로 사망했다고 한다(안종주, 침묵의 살인자 석면). 미국 환경청에서는 2000년경부터 1천2백만 달러를 들여 리비 지역에서 석면에 오염된 토양과 시설물을 철거하는 중이다.

 

석면노동자들은 작업장에서 일하면서 머리카락, 피부, 옷, 작업도구 등이 온통 석면 투성이가 되는데 그 상태로 퇴근하면 가족들도 그대로 석면에 노출된다. 집에서는 보통 노동자 의복을 다른 가족 빨랫감과 섞어서 빨래하기 때문에 가족의 옷에도 석면이 들러붙어 가족과 주위 사람들도 석면을 들이마시게 된다. 석면노동자의 가족은 100~250명 중 1명꼴로 악성중피종에 걸린다고 한다(석면과 무관한 악성중피종 발생 수는 연간 100만 명당 1~2명 정도). 이들은 석면을 취급하는 작업에 종사하지 않았어도 단지 노동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치료법도 없는 암에 걸리게 된다. 악성중피종에 걸린 여성의 절반 정도는 가족 중 석면노동자가 있고 그를 통해 석면에 노출된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1972년부터 석면노동자들에게 일이 끝나면 작업장에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퇴근하도록 법으로 강제하였다. 그 이후 가족들이 석면에 노출되는 정도가 줄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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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면폐 흉부사진. ⓒ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국가 책임 물은 구보타 쇼크

 

일본의 최초 석면소송은 1970년대 후반 일본 최대의 석면기업인 일본아스베스토(니치아스) 노동자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었다. 당시 소송은 한창 진행 중이던 1980년, 합의금 8천만 엔에 양측이 합의하였다. 이후에도 미츠비시중공업, 구보타 사, 일본정부 등을 상대로 30여건의 소송이 이어졌다. 2001년에 제기된 ‘에타닛트 파이프’ 사건에서는 석면파이프공장 노동자의 아들이 아버지를 통해 간접으로 노출된 석면 때문에 악성중피종에 걸렸다고 하여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아들의 병이 악성중피종이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원고 청구를 기각하였다.

 

2005년 6월 일본 효고 현의 건설자재생산업체인 구보타 사는 자사에서 일하던 근로자 97명과 주민 3명에게 악성중피종이 발생하였다고 발표해 전 일본을 경악케 하였다. 구보타는 1957년부터 1975년 사이 청석면과 백석면을 사용해 석면시멘트 파이프를 만들었다. 그 기간에 10년 이상 석면에 노출된 노동자 278명 가운데 무려 124명(44.6%)이 악성중피종, 폐암, 석면폐증에 걸렸다. 공장 주변 도로포장도 석면으로 한 사실이 드러났다. 공장 바로 옆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있었다. 공장주변 주민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악성중피종 등 석면질환자가 다수 발견되었다.

 

구보타 사건은 환자와 가족이 석면기업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데서 끝나지 않고 국가의 책임을 묻는 여론으로 확산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현재까지 구보타 공장 근로자 120여 명과 인근 주민 100여 명이 석면질환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구보타 쇼크 이후 일본정부는 부랴부랴 석면피해자를 구제하는 특별법(석면에 의한 건강피해의 구제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고 2008년 3월까지 폐암과 악성중피종 1,400여 건을 보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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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면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 지난 6월 24일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앞에서 석면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최예용

 

해자 많아지자 적용 법률 바꾼 근로복지공단

 

우리나라에서도 일제 때 아시아 최대의 석면 광산이 있었던 충남 보령·홍성지역 인근 주민과 부산 제일화학 노동자들이 입은 피해가 사회적으로 문제되고 있다. 제일화학 노동자들은 악성중피종으로 산재승인을 받은 원점순 씨 사례가 알려지면서 하나둘씩 모이게 됐다. 이들은 처음에 자신들의 기침과 호흡곤란이 결핵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러나 결핵은 6개월간 약을 먹으면 낫는 병인데 이들은 2~3년씩 약을 먹어도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증세가 악화됐다. 이들은 자신들이 걸린 병이 단순한 결핵이 아니라 석면폐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요양을 신청하였다.

 

처음에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제일화학 노동자들이 석면에 의한 직업병을 앓고 있다고 인정하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법)’을 적용해 산재요양을 승인하였다. 그러나 신청자 수가 많아지자 나중에는 석면폐증은 석면에 의한 진폐증이라고 하면서 재해자들에게 산재법이 아닌 ‘진폐의 예방과 진폐근로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진폐법)’을 적용하였다. 산재법을 적용하면 제일화학 노동자들은 다른 직업병처럼 석면폐증에 걸려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소견만 있으면 요양급여와 휴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진폐법을 적용하면 엑스레이상 석면폐증이 상당히 진행되어야 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다. 석면폐증도 일종의 진폐증이기는 하지만 석면은 석탄분진과 달리 매우 독성이 강한 발암물질이고 엑스레이상 큰 이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증상은 매우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들은 1970년대 제일화학에서 청춘을 보내 이제는 50~60대에 접어들었다. 제일화학 노동자들은 아직도 가족을 위해 한창 일해야 될 나이이지만 호흡곤란으로 겨우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정도이다. 지금 근로복지공단의 태도로 보아서는 석면폐증만 있는 상태에서는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고, 악성중피종이나 폐암에 걸려 죽을 때가 되어야 보상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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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원점순 씨의 생전 입원모습. ⓒ MBC 캡처

 

길고 힘겨운 소송과도 싸워야하나

 

현재 산재보상체계로는 제일화학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없다. 보령·홍성지역 주민들도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석면을 취급한 노동자의 가족이 석면 때문에 암에 걸리더라도 역시 보상받을 길은 없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국가나 사업주(폐업하지 않고 남아 있다면)를 상대로 길고 힘겨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1심 판결에만 10년이 걸린 담배소송을 볼 때 석면집단소송을 제기하더라도 피해자들이 살아서 배상받을 것 같지는 않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일본처럼 특별법을 만들어서 간단한 절차를 거쳐 신속하게 석면피해자들을 구제해야 한다.

 

악성중피종을 일으키는 것은 석면 외에는 없으므로 악성중피종 환자는 진단서만으로 바로 보상하고, 폐암, 석면폐증 환자는 상당기간 석면에 노출된 사실이 있으면 보상해야 한다. 현재 국회에서는 석면피해구제특별법이 심사 중이다. 신속하게 처리된 미디어관련법 등과 달리 석면특별법은 언제 통과될지 알 수가 없다.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아직 국회까지 안 들리는 것인지,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더 나와야 하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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