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일과건강 2009년 1월호로 기획되었던 내용입니다. 뒤늦은 '1월호부터 휴간 결정'으로 종이매체로 발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소중한 기사를 주신 필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본 내용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이 기사 필자는 변호사이면서 산업의학전문의이신 박영만 님입니다.


기업부담 최소화한 산업안전보건법

 

통계청에 따르면 2007년도에 우리나라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7,600명 정도였다고 한다. 한국산업안전공단은 2007년 한 해 동안 산업재해를 입은 근로자가 90,147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2,406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같은 사고 중에서도 교통사고는 강력한 단속과 지속적인 교육, 홍보로 급격하게 줄어드는 추세인데 비해 산업재해는 줄기는커녕 여전히 중요한 사망원인이다.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이라 함)을 잘 만들어 제대로 시행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산안법은 전두환 정권이 1981년도에 처음 만들어 시행하였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노동3권을 제약하면서 이에 대한 반발을 막기 위해 개별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근로기준법을 구체화한 산안법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업부담을 최소화한다는 이유로 별로 실현성이 없는 내용으로 법을 만들었다. 그것이 몇 차례 개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어쨌든 산안법상으로 노동자는 작업현장의 위험요인을 알 권리, 위험한 작업에 관해 교육받을 권리, 유해공정을 점검할 권리, 급박한 위험으로부터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권리, 안전보건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보면 작업장 내에서 각종 유해요인과 위험을 해결하는 의사결정에 노동자가 참여하는 길은 매우 제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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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계(아시바) 위에서 곡예 수준의 작업을 수행하는 한국의 건설현장(왼쪽)과 계단과 통로를 완벽한

구조물로 갖추고 작업하는 스웨덴 스톡홀름의 건설현장. ⓒ 한겨레

 

 산안법에서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의 직무내용, 작업환경측정결과 설명회개최, 공정안전보고서 작성내용, 안전보건개선계획 수립에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또는 근로자 대표의 의견을 듣는 절차가 있다. 그러나 사업주가 행한 제반 안전보건 활동에 대한 사전 감시 또는 참여제도가 극히 제한적이어서 노동자가 실질적으로 감시하거나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위원이라 하더라도 작업장 내 위험요인을 검토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을 제도적 절차가 없다. 작업중지?대피권도 마찬가지이다. 산안법에는 급박한 위험이 어떤 경우인지, 급박한 위험에 처해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하는 절차는 무엇인지 그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그리고 근로자가 작업중지 및 대피행위를 한 후에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도 미흡하다. 마지막으로 산안법상 갖추어야 할 안전관리체계는 대형사업장에만 적용되어 재해율이 높은 영세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법적 처벌 혹은 경제적 이득

 

산업재해는 단순히 사업주나 근로자 개인에게만 그 원인과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 전반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정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산업재해 예방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산업재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제도적 조치는 법률적 방식과 경제적 방식이 있다고 한다.

 

법률적 방식은 정부가 개인의 행동에 일정한 기준을 정하고 이를 위반하면 처벌하는 방식이다. 처벌을 통해 관련자들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적극 유도하는 것이다. 경제적 방식이란 일정한 행위에 경제적 이익을 제공함으로써 자발적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정책 목적에 도달하는 구체적 방법, 과정 등을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긴다. 최근 외국의 경향은 경제적 방식을 주로 하면서, 법률적 방식은 경제적 방식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강력한 제재를 가하면서 실시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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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동자의 외줄타기 작업은 흔한 모습이다. 강력한 처벌이 없는 산안법 체계는

 노동현장에서 이처럼 '생명'을 담보로 일하게 만든다. ⓒ 건설노조

 

사업주 위반내용, 세밀하고 구체적이어야

 

죄를 저지른 자는 원칙적으로 형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자신이 수행하는 업무와 관련하여 과실로 다른 사람이 죽거나 다치게 한 경우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처벌받는다. 그러나 산업현장에서 각종 위험과 유해요인에 노출된 근로자에게 사업주가 고의든 과실이든 필요한 안전보건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형법이 아니라 특별히 산안법에 따라 처벌한다.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범한 자는 5년 이하의 금고형에 처하게 되어 있지만, 산안법에서는 사업주가 안전보건조치를 취하지 않아 근로자를 사망하게 하면 7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고 있다. 이처럼 형법보다 엄한 처벌을 하는 조항은 2006년도에 신설되었다. 그 이전에는 사업주가 안전보건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 자체만을 문제 삼아 처벌하였으나, 근로자가 사망까지 한 경우 사업주를 더 중하게 처벌하는 조항이 신설된 것이다.

 

형법은 범죄자를 일률적으로 처벌하여 국민 전체를 범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범죄행위를 저지른 경우 원칙적으로 누구나 똑같이 처벌받는다. 그것이 정의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형법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범죄를 저지르려고 하는 자를 처벌하지 않는다. 범죄행위를 하고 그에 따른 나쁜 결과가 발생한 경우에 한해 범죄자를 처벌하여 사후적으로 정의를 실현할 뿐이다. 반면에 산안법은 일반적인 정의 실현보다는 구체적인 재해예방을 그 목적으로 한다. 물론 사업주가 산안법에서 정한 기준에 따르지 아니하여 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에게 재해발생이라는 결과 자체에 책임을 묻기도 한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법규를 준수하여 사전에 재해발생을 방지함으로써 근로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따라서 산안법은 재해발생이라는 나쁜 결과에 상관없이 법이 정한 기준을 지키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사업주를 처벌한다(위에서 본 2006년도에 신설된 사업주 처벌조항은 어찌 보면 산안법의 성격에 비추어 예외적인 조항이지만 사업주에게 근로자 보호조치를 좀 더 엄하게 강제하기 위해 만든 조항이다). 그러므로 산안법에서는 사업주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위를 하여야 하는지, 어떠한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 위반내용을 보다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

 

그러나 현행 산안법은 처벌조치를 크게 제66조의 2부터 제72조에 걸쳐 몇 가지로만 나누어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재해예방업무의 중요도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적용한다. 이처럼 법률위반 범위나 정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 방식으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현장에서 구체적인 사안에 맞닥뜨려 법이 전혀 실현이 안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편 처벌수준을 정할 때에도 사업주가 법에서 정한 안전보건기준을 지키는데 실제 드는 비용을 고려하여야 한다. 법을 지키는데 드는 비용이 처벌로 인한 손해보다 크다면 처벌을 감수하고라도 불법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엄하게만 처벌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위법행위를 너무 엄하게 처벌하면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처벌을 피하려고 하므로 부패가 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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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식의 포괄 규정으로 정부를 소극적으로 역할하게 만들었다. ⓒ 교육센터

 

의무 아닌 포괄로 규정된 정부역할

 

산업재해에 대하여 법률적 수단만으로 사업주를 제재할 경우 산안법의 기준을 지키는 데만  급급하게 되어 재해예방제도가 제대로 시행되기 어렵다. 따라서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업주에게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는 방법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세제, 보험제도, 정보제공, 보조금 등 사업주를 유인할 경제적 방식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한다. 사업주의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노력을 평가할 수 있는 제도도 현행 산안법상 화학공장 등 일부 유해 사업장, 상시근로자 100인 이상 사업장에만 극히 제한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또한 제도 실행에 필요한 구체적인 방침도 없다. 이에 따라 사업주가 행한 산업재해 예방노력 정도에 따라 가할 수 있는 경제적 제재 조치도 미흡하다. 또한 법조문 자체에서 ‘정부나 노동부장관은 무엇 무엇을 적극적으로 하여야 한다.’가 아니라 ‘필요한 경우… 예산의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다.’는 식으로 규정되어 정부의 역할이 소극적으로 한정되어 있다.

 

한편 업종 간 재해발생을 비교할 경우 건설업이 제조업에 비하여 월등히 높은 사망률을 보이는데도 현행 산안법상 조문의 수나 내용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되어있다. 더구나 산안법은 동종업종 내 모든 기업에 일률 적용하고 있어 비효율적이기도 하다. 각 기업마다 기술적, 경제적, 환경적 요인이 다르므로 효율적으로 재해를 예방하는 방법도 다를 수 있다. 그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법적용을 하면 각 기업이 비용을 덜 들이면서도 산업재해를 많이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독자적으로 연구하기 어렵다. 즉 사업주로서는 법적으로 요구되는 최소한 구비요건 충족에만 노력하게 될 뿐 스스로 적은 비용을 투자하여 효과적으로 산업재해를 줄일 수 있는 연구에 소홀하게 된다.

 

신종 재해 대처할 제도 마련해야

 

산안법과 산재예방제도는 그동안 여러 차례 제기된 문제점이 개선되지 아니한 채 해가 바뀌었고 현장에서는 참사가 끊이질 않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작업이 복잡해질수록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신종 재해에 신축성 있게 대처할 수 있는 법과 제도도 필요하다. 새해에는 좋은 법이 만들어져 제대로 시행되기를 기원해본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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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주요내용은 황세욱 님의 논문 ‘우리나라 산업재해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를 참조 하였습니다.(필자 주)

잡지로 발행된 일과건강에서 제공했던 내용은 관점있는 노동안전보건 인터넷 뉴스 '일과건강'에서 계속 제공합니다.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들의 많은 방문,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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