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10 13:07
이 기사는 일과건강 2008년 12월호 기획특집 '노동자 건강권 운동, 식탁 위 쇠고기처럼' 내용의 하나 입니다. 글 필자는 서비스연맹 여성부장 정민정 님이며 사진과 글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고맙습니다.
영등포역 앞에서 열린 캠페인에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보였다. ⓒ 이현정
2007년부터 준비해 온 (물론 민주노총 노동안전위원회에서는 2006년부터 고민되어온) 의자캠페인 사업이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이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받는 사업으로 일단락되었다.
고용불안 저임금 아우를 건강권 주제 선정
‘의자’에 공감한 많은 조직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전국으로 크게는 14개 지역, 이를 세분화하면 훨씬 더 많은 지역의 캠페인단이 구성되고 운영되었다. ‘의자캠페인’을 준비하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며, 또한 이 사업이 전국으로 확대되어 진행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과연 이 많은 조직과 사람들을 모아낸 ‘의자’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이것을 아는 것이 ‘서서 일하는 서비스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국민캠페인’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비스노동자의 건강권이라는 막연한 개념을 가지고 도대체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하는 것인지 막막하기만 했다. 또 3개월짜리 계약서에 이어 백지계약서까지 하루하루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일하는 서비스노동자에게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가 아니지… 그래서 “여러분도 건강하게 일 할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면 “아이고 속 편한 소리하지마세요. 다리 좀 아파도 됩니다. 일하게만 해 주세요.”하고 현장 노동자들이 우리를 답답하게 여기지는 않을까 우려도 되었다.
하지만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하는 것과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찾아가는 투쟁은 각기 다른 사업이 아니었다. 비정규직 철폐도, 건강권 쟁취도 노동자들이 힘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고 이를 위해 우리는 현장의 노동자를 노동조합으로 묶어내야 했다.
600만 서비스노동자라 한다. 지금 현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소속의 노동자는 약 18,000명 정도로 겨우 0.3%의 조직률을 보인다. 이 0.3%로의 조직률로는 서비스업종에 무자비하게 파고드는 비정규직화를 막아 낼 수 없으며, 서비스노동자의 고용불안과 저임금화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열악한 상황으로 내몰리는 서비스노동자의 조직화를 위한 과제로 우리는 ‘건강권 쟁취 투쟁’에 주목하게 되었다. 서비스노동자도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는 서비스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존중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비스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노동 가치를 자각하고 사회에 요구하며 권리를 찾는 일에 적극 나설 수 있게 하기 위해 이 사업을 계획하였다.
서비스연맹에는 미조직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직사업을 하는 조직 활동가들이 있다. 이 동지들의 주요 활동 중에 하나가 현장으로 가서 그들의 고충을 상담하는 일과 노동조합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는 선전 활동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통노동자 권리 찾기’ 서명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현장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에 우선 거리감을 두었고 서명은 더더욱 하기를 꺼려하였다.
존중받을 권리에 감동받은 서비스노동자
하지만 의자서명은 달랐다. 현장 노동자들이 더욱 열렬히 반응하였다. 노동조합이라는 곳아 ‘우리의 다리 아픈 문제까지 관심을 갖는 곳이구나’하며 멀게 느껴지고 때론 무섭게 느껴지던 노동조합이 친근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서 한 곳에서 서명을 하면 그 언니가 다른 매장의 언니를 소개해 주고 주변 사람을 모아 서명을 하도록 홍보해 주었다. 서명을 하신 분들에 ‘어느 매장에 의자가 제공되었습니다’하고 문자를 보내면 ‘잘 되었네요. 수고하십니다’ 등의 답장이 심심치 않게 왔다. 이전의 ‘권리 찾기 서명’과는 180도 다른 반응이었다.
현장의 노동자들을 움직이게 만든 것이 무엇이었을까? 우선은 ‘의자는 존중입니다’라는 슬로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객에게 무조건 친절과 미소만을 강요당하던 이들에게 ‘서비스노동자를 존중해 주세요’ 라는 말은 너무나도 가슴 벅찬 말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두 번째로는 사업주가 ‘의자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법에도 명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의자를 제공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면 많은 현장의 노동자들의 첫마디가 ‘어휴~~ 회사에서 의자를 놓으려고 하겠어요?’였다. 그래서 법에 이러한 내용이 명시되어 있음을 알려주면 다들 깜짝 놀라면서 현실에서 가능하겠구나 생각하며 서명에 동참해 주었다.
해외에서는 의자에 앉아서 일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 www.cmedia.or.kr
현장 노동자들에게는 여전히 법은 노동조합과 마찬가지로 멀게만 느껴지는 존재이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부당해고, 임금체불 등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데 많은 사람들이 부당함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일한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은 아예 들어보지도 못한 생소한 법이었다. 산재라는 단어조차 익숙하지 않는 이들에게 ‘서비스노동자도 건강하게 일 할 권리가 있다’라는 이야기는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산재인식 키우고 노조 이해 높이고
의자캠페인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뤄낸 소중한 성과 중에 하나는 현장에서의 산재 인식 확산이었다. 예를 들어 족발코너에서 오랫동안 일을 한 여성노동자는 손목이 아파 더 이상 족발을 자를 수 없게 되자 회사를 그만두었다. 몸이 아픈 것은 개인 문제이기에 당연히 일을 그만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의자캠페인을 선전하는 사람으로부터 서비스노동자도 산재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이분이 서비스연맹으로 문의해 왔고 결국엔 산재로 인정받아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족발코너 사례 외에도 냉동식품을 정리하다가 다친 언니 등 예전에는 개인의 잘못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문제들이 이제는 일과 연관되어 보상 받을 수 있는 문제로 인식되며, 산재 인식이 확대되었다.
또 다른 성과는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 변화이다. 이는 앞에서도 언급하였기에 다시 하지 않겠다. 그리고 가장 큰 성과는 하루하루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위축되었던 서비스노동자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계기가 된 점이다.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냐고 고개 흔들던 현장의 노동자에게 마산의 대우백화점에서, 사천의 휴게소에서 의자가 제공되었다는 소식, 또 롯데백화점이 12월까지 의자를 제공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들을 전하면 그리고 자신들의 사업장에 의자가 제공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요구하면 ‘현장이 달라질 수 있구나’ ‘우리도 할 수 있구나’ 라는 자신감을 심어 준 것이다.
서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앉을 권리를
사업주는 ‘의자 제공’을 계산원 노동자로 한정하고 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굳이 서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자에게는 앉아서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 대상이 계산원으로 한정되는 것은 우리가 의도하는 바가 절대 아니다.
하기에 지금의 ‘의자’는 시작일 뿐이다. 서비스노동자의 노동이 존중받고 그들의 건강권을 사회에서 관심 갖고 제도로 보장하는 과제들이 남아있다.
물론 ‘의자’는 꼭 제공되도록 끝까지 사업을 진행할 것이다. 어느 하나의 사업장도 예외가 되지 않도록 노동부의 근로감독 강화를 요구할 것이며, 지역의원들을 통한 지역 조례 등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법을 위반하는 사업장은 고발조치 등을 통해 의자가 제공될 수 있도록 강제할 것이다.
서비스연맹은 이제 ‘시즌2’를 준비하고 있다. ‘시즌1’에 너무나 큰 호응을 받았기에 후속작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이 사업에 동의하며 흔쾌히 함께 해주신 많은 동지들의 성과를 시즌1로만 마무리 할 수는 없기에 더욱 많은 고민들을 가지고 후속사업을 고민할 것이다. 동지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며 ‘시즌2’에서도 또다시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의자캠페인에 함께 하신 고마운 분들
지면을 빌려 ‘서서 일하는 서비스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에 함께 해 주신 전국의 모든 동지들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특히 원진노동안전보건교육센터 교육실장 김신범 동지를 비롯하여 서비스연맹 김형근 위원장님, 민주노총 김지희 부위원장님, 김은기 노동안전국장님, 김정아 여성부장님, 한국여성노동자회 김양지영님, 여성민우회의 박정옥님, 민주노동당 장지화국장님, 전국여성연대의 홍경미님, 노동건강연대 이현진님, 원진노동환경연구소 강진주님 그리고 자문단의 정진주(이화여자대학교 연구교수) 이윤근(노동환경건강연구소 책임연구원·산업보건학박사), 정최경희(경희의료원 산업의학과 임상전문교원), 윤간우(녹색병원 산업의학과), 이수정(민주노무법인 공인노무사) 선생님들 모두다 너무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