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민주노총은 예전과 다른 4월, 예전과 다른 4・28 추모제를 준비한다. 가슴이 설렌다. 드디어 4・28이 우리사회에 새롭게 자리 잡을 계기가 마련될 듯해서이다.

 

2005년에 첫 추모제 열려

 

우리나라에서 4・28 추모제가 시작된 것은 지난 2005년이었다. 교육센터는 4・28 추모제에 대해 할 얘기가 많다. 왜냐하면 4・28 추모제를 국내에 도입하자고 제안한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2005년 당시 교육센터는 4월사업공동추진위원회에 결합하고 있었는데, 외국의 노동자건강권 운동을 검토하다가 4・28 산재사망추모제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육센터에서는 우리나라에서도 4・28 추모제 행사를 개최하자고 적극 제안하였고, 4월사업공동추진위원회가 받아들였다. 교육센터에서는 해외 4・28 행사를 적극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하는 역할을 하였고, 4・28 포스터 도안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어느덧 2008년이 되었고, 이제 더 이상 4・28 행사는 낯설지 않게 되었다. 불과 4년 만에 4・28 산재사망추모제는 노동자건강권 운동 진영의 대표적 행사가 된 것이다. 그러나, 2005년 첫해부터 4・28 추모제가 제 모습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아니,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그동안 한 번도 우리나라의 4・28 추모제는 아직 적극적으로 그 의미를 살려본 적 없었다.

 

산재사망에 사회가 함께 분노하는 자리

 

노동자의 산재사망은 누구의 책임인가? 근본적으로는 기업주이며, 확대하자면 정부까지는 책임자이다. 여기까지는 딱 부러진 대답을 노동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래서 영국 등에서는 기업살인법을 추진해온 것이다. 기업살인법은 국가는 기업의 책임을 강력히 묻고, 기업은 산재사망에 책임을 확실히 져야한다는 거대한 가치의 실현이다. 하지만, 기업살인법이 그냥 만들어지겠는가? 산재사망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조성될 때 가능한 일이다. 4・28 산재사망 추모제는 바로 “산재사망에 대한 사회적 공분”을 조성하는 자리이다. 해외의 4・28 추모제는 지역별로, 도시별로 이루어진다. 사망한 노동자의 유가족들이 참석하며, 종교단체의 장, 지자체 장이 참석하고, 시민들이 함께 한다. 사망한 노동자를 기억하면서, 산재사망을 줄여나가기 위한 공동의 노력에 대해 논의한다. 정부 역할과 기업 책임이 당연히 거론될 수밖에 없다. 필요한 이슈를 제기하는 행진이 열리기도 하며, 법원에 입법청원운동이 전개되기도 한다. 4월 28일 이 날, 산업재해 문제는 노동자 문제를 뛰어넘어 전 사회 문제로 인식되는 것이다. 노동자 생명과 건강에 대해 사회의 책임을 얘기하는 자리인 것이다.

정리하자면, 노동자 산재사망에 대한 사회적 공분을 조성하며, 각 국가와 지역에서 산재사망을 위해 할 일을 제시하는 것이 4・28 산재사망추모제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살인기업 선정식을 전체 운동의 고민으로

 

바로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4・28 행사가 본래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고 평가한 것이다. 소수의 노안활동가들이 광화문에 모여 추모제를 열면서, 그것도 차별철폐 대행진에 묻어서 조직 동원을 해야 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4・28 추모제는 하나마나한 행사로 전락하게 될 것이 뻔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이 있다. 2005년에는 또 하나의 운동이 출범하였었다. “산재사망공동캠페인단”이 그것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그리고 노동건강연대와 매일노동뉴스가 공동으로 구성한 사업단이다. 이들은 살인기업 선정식을 치루면서 산재사망이 가장 많이 발생한 기업 이름을 사회적으로 다시 인식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후속사업으로 산재사망관련 정보공개 운동, 산재사망관련 공청회, 산재사망노동자지원센터의 건립 등을 목표하기도 하였다. 산재사망에 지속적 사회공감대를 형성하는 운동을 기획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공조체계가 깨지면서, 산재사망 캠페인단 활동은 확대되지 않았다. 2007년에도 살인기업 선정식은 진행되었으나, 노동건강연대와 매일노동뉴스가 주최하였고, 살인기업 선정식 이외의 다른 활동으로 확대되지는 못하였다. 당시 그것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노동건강연대는 그 어느 곳보다 가장 적극적으로 산재사망을 고민해온 단체이며, 우리사회에 기업살인, 살인기업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도록 만든 고마운 조직이었다. 그 고민을 우리 사회 노동자건강권 운동 전체 고민으로 발전시키지 못함에 따라, 값진 기획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는 안타까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이제는 민주노총이 노동건강연대에게, 노동건강연대가 민주노총에게 서로 제안해주기 바란다. 노동건강연대와 민주노총은 보다 적극적으로 애초 캠페인단이 목표한 것을 “사회화”하기 위한 새로운 기획을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조합원과 공감하는 추모 세트

 

사회적인 공분 조성이 가능하려면 조합원과의 공분부터 조직이 되어야 한다. 민주노총이 올해 4월에 전국순회투쟁을 기획한 것은 위에서 내려박는 사업으로서 4월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4월이 다 되어서야 사업 기획안이 제출되었던 여느 해와 다르게 지난 1월부터 4월 사업이 기획된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각 연맹이 자신의 주제를 고민하면서 4월 사업이 어떻게 결합할 것인지 고민한 것은 정말로 중요한 발전이다. 전국의 지역별 순회와 연맹별 고민은 하나로 묶이고 있다.

 

포항에서 공공운수노동자들이 길에서 죽어간 화물노동자를 기억하라며 외칠 수 있을 것이다. 건설노동자들은 이천참사와 하이닉스 건설현장의 사망재해를 얘기할 것이다. 여수에서는 건설노동자와 화학노동자가 함께 모여 백혈병과 폐암 등에 대한 대책을 요구할 것이다. 창원과 울산에서는 자랑스런 금속동지들이 함께 할 것이다. 광주에서는 전남대병원의 간호사 자살 얘기를 보건의료노조 동지들이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각 조직의 산재사망과 산업재해 이슈를 찾아내고 있으며, 그것을 조합원들과 시민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다만, 이러한 고민이 총연맹 중앙과 연맹 중앙에서는 무르익고 있으되, 지역본부와 각 사업장 노동안전보건활동가까지 전달되지는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 한 달 이상 남아있다.

 

민주노총과 각 연맹・노조는 전국의 모든 노안활동가들에게 산재사망의 의미를 조합원과 어떻게 나누고 민주노총의 4월 사업계획에 어떻게 동참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도록 이끌어내야 한다. “3종 세트”라고 표현된 5천원짜리 “리플렛, 추모 양초, 추모 리본” 묶음세트는 전국의 노안활동가들이 조합원과 함께 산재사망을 얘기할 수 있는 매개체로 기획된 것이다. ‘3종 세트’ 판매를 단순히 4월 사업비를 만들어낼 목적으로 연맹과 노조별로 분담시켜서는 안 된다. 노안활동가 한 명 한 명이 내가 만나는 조합원들과 산재사망을, 전국 순회 투쟁을, 4・28 추모제를 얘기하기 위해 진짜로 쓰여야만 한다. 

 

보라색 물결은 노동자 생명의 가치

 

올해는 문송면 사망 20주기이며, 원진레이온 직업병 인정 투쟁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2008년 새해 벽두부터 이천산재참사로 40명의 산재살인이 발생하였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일까? 노동자 건강권은 어느 수준에 도달한 것일까?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 이런 고민들이 4월을 준비하면서 나눠지게 되기를 기대한다. 4월을 맞아 지역별 투쟁을 진행하면서 조합원들과 시민들에게 전달되기를 기대한다.

 

민주노총이 준비한 양초와 리본은 보라색이다. 보라색은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우리는 산재사망 노동자들을 잊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자. 우리 사회가 기업살인을 잊지 않고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사회가 되도록 만들어보자. 2008년 4월, 뜨거운 마음을 가진 소수의 보라색 무리들이 전국을 돌아다니겠지만, 앞으로 몇 년 후 해마다 4월이면 전국이 보라색으로 물결치게 만들어보자. 노동자 생명이 소중한 사회를 만들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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