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또 올게. 외로워하지 말고 잘 있어.”

 

납골당을 떠나는 마지막에 정애정 씨는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남편을 떠나보낸 지 3년이 되었지만 슬픔의 깊이가 잦아들지 않은 울음이다. 정애정 씨 남편은 1997년 7월 삼성전자(주) 반도체사업부 기흥공장에 입사, 1라인 설비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2004년 10월 급성림프모구성 백혈병을 진단받고 항암 치료 중 2005년 7월에 사망한 故 황민웅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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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 일한 공장인데, 백혈병과 관계없어?

 

정애정 씨는 남편을 너무 혈기왕성하고 감기도 잘 안 걸리는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혹시라도 감기 기운이 있으면 미리 약을 사서 먹을 정도로 몸을 챙겼던 황민웅 씨는 군 제대 후 바로 삼성에 입사하여 기흥공장을 떠난 적이 없었기에 정애정 씨는 남편의 백혈병 발병 원인이 공장 내에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자신도 기흥공장에서 10년을 일했던 노동자이기에 반도체 공정의 유해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의 생각은 달랐다. 백혈병이 걸렸을 시기에 황민웅 씨가 공장에 있었을 뿐으로 반도체 공정이 병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산재인정 여부는 아직 진행 중이다.

 

정애정 씨는 “노동자를 대변하는 집단이 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 것”이란다. 노동조합 역할을 모를 때 “아! 삼성은 무노조라더라. 그게 나한테 좋은 지 나쁜 지도 몰랐다. 없어도 월급 제대로 나와, 이익금도 돌려준다고 해, TV에서 보이는 싸움도 없어 굉장히 평화적이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남편 일을 당하고 나니, 엄청 냉정하고 회사 입장에서만 생각을 한다며 이것은 경험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다. 회사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접하지 않으면 삼성은 마이다스 손으로 밖에 다가오지 않으니까 헌신하게 되는 것 같단다. 정애정 씨는 연말에 주는 특별성과급이 노동자를 달랬던 것 같다고 밝혔다. 

 

대기업 삼성은 불법 경영승계로도 유명하지만 그에 앞선 것이 무노조 경영이다.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낌새만 있으면 그 주체는 탄압받다 해고되기 일쑤이고 해고 뒤에도 끊임없이 감시, 추적당한다. 그래서 굴지의 대기업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노조가 없는,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다. 노조가 없어도 임금과 복지에서 다른 기업에 꿀릴게 없는 삼성이라 쳐도 그 외 노동자의 권리는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노동자 건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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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으로 억울한 마음 처리하는 회사

 

“노조가 없으니까 사원들이 회사 방침에 무조건 따라 갈 수밖에 없다.”는 김갑수 씨.
삼성계열에서 일하다 해고, 해복투와 삼성반도체 집단백혈병 진상규명 및 노동기본권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에서 활동하는 그는 “산재은폐는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그 자신도 산재를 당했던 사람이다. 생산라인이 멈출 정도의 산재가 발생했고 당사자가 산재를 원했지만 공상처리를 ‘당했다’고 한다.
브라운관을 만드는 공정에서 진공을 시키는 작업을 담당했던 김갑수 씨는 브라운관 폭발로 병원에 입원했고 병실에서도 산재로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일반으로 바뀌어 있더란다. 원무과에 알아보니 회사가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환자복을 입은 채로 회사를 방문, “산재로 처리 해 달라.”고 했지만 그의 뜻은 반영되지 않았다.
브라운관을 진공시키는 과정에서 내부에 찬바람이 닿는다든가 외부에 충격이 가해지면 브라운관이 폭발, 유리파편이 노동자에게 튀어 얼굴, 눈, 손 등 신체에 상처를 내는데 그런 사건이 굉장히 많은데, 삼성은 이미 그런 사실을 잘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사고를 다 공상처리를 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만든다. 사고가 났을 때 지정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은 뒤 며칠 쉬고 오면 회사 근태에는 다 출근한 것으로 처리하는 식이다. 그런 식으로 묵인되어 흘러가는 상황이라고 한다.

 

김갑수 씨는 “현장에 있는 화공약품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인체에 해로운 것인지 아무것도 모른다. 선배들이 사용해 왔으니까, 설마 회사가 노동자들 속이고 나쁜 것들을 사용할까? 이런 방식이다 보니 문제가 계속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가 났을 때 산재를 해야 되는 것은 안다. 하지만 지식이 없어 회사에서 어떻게 해주겠지 생각하는데, 회사는 공상처리를 해 외부에 산재가 알려지지 않도록 한다.”고 밝혔다. 김갑수 씨는 과로사로 사망을 당한 유족들은 본 적이 있는데 처음에는 너무 억울해 하고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결국엔 개인처리를 하고 만다고 말을 이었다. 즉, 삼성이 산재를 인정받았을 때 유족이 받는 보상금액을 미리 계산해서 삼성에서 제시한 금액과 갈등하게 만든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돈’으로 억울한 마음을 처리한다는 것이다. 전체 노동자 문제로 확산되지 않게 문제를 마무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삼성의 방식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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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해환경은 카메라에 담지 못해요

 

물론 삼성에도 안전보건 교육이 있다. 하지만 김갑수 씨와 정애정 씨가 말하는 교육이란 것은 보호구 착용 정도였다. 공정 중에 사용하는 유해물질이나 산재와 관련된 얘기는 없었다.
정애정 씨는 “(안전보건) 교육도 회사 입장에서만 하고 노동자 입장에서 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회사는 법만 피해가면 되니까 환경안전 교육을 몇 시간 받으면 된다는 조항만 채우면 된다는 식”이었다며 “우리가 무슨 가스를 쓴다는 공정과 관련된 교육은 없었고 보호구를 착용해야 하고 착용방법 정도를 교육했다.”고 밝혔다. 그 교육마저도 물량이 많고 바쁘면 가라 사인을 했고 누가 물어보면 ‘했다고 해라’는 주문을 받았다고 한다. 회사는 감사 왔을 때 필요한 증빙 자료를 갖추는 선에서 교육을 한 것이다. 그리고 설사 공정과 관련된 교육이라도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정도의 ‘한번 스쳐가는’ 방식이라 노동자도 산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접근을 못하는 수준이었다고 정애정 씨는 전했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의 백혈병 발병 사례는 황민웅 씨에 그치지 않는다.
2007년 3월 황유미 씨, 2006년 6월 이숙영 씨도 백혈병으로 사망했고 신원을 밝히지 않은 또 다른 2명도 백혈병으로 사망했고 한 명은 투병 중이다. 삼성반도체 천안공장에서 일했던 한 여성 노동자도 백혈병 투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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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씁쓸한 대기업 노동자의 개차반인 실상

 

한편, 김갑수 씨는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과 관련해서 “삼성은 백혈병이 산재로 인정을 받느냐 마느냐는 다음이고 제3의 제보자가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를 젤 시급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최대한 제보가 나오지 않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제보가 안 들어오면 그 다음이 산재 불승인일 것”이라며 삼성의 행보를 예측했다. 그는 이런 문제로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것은 다 알지만 삼성이 워낙 거대한 조직이고 사회에 영향력이 어떻게 뻗치는지를 삼성 교육을 통해서 아는 노동자들은 본인이 적극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삼성 경영자는 노조가 없어 행복할지 모르나 노동자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도, 집단도 없는 노동자는 행복하지 않다. 노동조합 활동은 임금․복지만이 아니라 노동과 관련된 모든 조건을 유지, 개선하기 위해 늘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 중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노동자 건강권이다.

 

정애정 씨는 요즘 삼성 이미지 광고를 보면 채널을 돌린다. “실제 안은 개차반인데 이 세계를 모르는 사람들은 (광고를 보고) 삼성은 인간적이라고 인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그의 말은 조직되지 않은 대기업 노동자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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