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14 16:15
"날 짓누르는 조직과 질서 앞에서 지난 두 명의 죽음을 약하고 못나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죽음으로 내 진심을 보여 주고 싶다. 공공조직의 말단에서 온갖 지시와 명령에 따라야 하는 일개 부속품으로서 하루하루를 견딘다는 건 괴물과의 사투보다 더 치열하다."(지난 3월19일 울산에서 사망한 36세 공무원의 유서 중에서)
사회복지공무원 4명 중 1명이 최근 1년 사이 자살충동을 느낀 것으로 조사됐다. 자살충동 이유로 절반 이상이 직장 내 문제를 꼽아 직무 스트레스가 자살충동의 주요요인으로 나타났다.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태영빌딩 T-아트홀에서 열린 ‘사회복지·법원공무원 노동조건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공직사회 노동조건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이 사회복지공무원 건강실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지난달 8일부터 22일까지 사회복지공무원 5천966명을 대상으로 건강실태를 설문조사한 결과다.
이날 토론회는 전국공무원노조(위원장 김중남)와 오제세·이목희·유기홍 민주당 의원과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이 공동주최했다.
“과도한 업무와 장시간 노동이 우울증 일으켜”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27.5%(1천627명)가 “최근 1년간 자살충동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정부가 2009년 실시한 ‘국민건강영향조사’에서 일반 국민이 느끼는 자살충동 경험(16.4%)보다 10%포인트 높았다. 자살충동의 이유로 62%는 직장 내 문제를 꼽았다.
우울증도 심각했다. 중등도 우울 상태는 23.7%(1천367명), 심한 우울 상태는 14.2%(822명)로 37.9%가 심리상담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원인은 업무량과 장시간 노동으로 보인다. 응답자의 95%가 최근 1년간 업무량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현재의 업무를 소화하려면 6.7명(71.3%)의 인력증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업무량은 증가했지만 인력충원이 없어 장시간 노동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사회복지공무원의 평균 주당 노동시간은 51.8시간으로 조사됐다. 주당 노동시간이 길수록 우울증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상혁 소장은 “이렇게 높은 수준의 직무스트레스와 탈진 상태는 어떤 연구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다”며 “사회복지공무원의 우울과 자살충동을 느끼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연구소가 2011년 10~11월 법원공무원 3천380명을 대상으로 한 건강실태 조사에서 고도 우울 상태는 12.1%, 중등도 우울 상태는 17%로 모두 29.1%가 심리상담와 치료가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강승복 공무원노조 법원본부 사무처장은 "최근 3년간 자살한 15명을 포함해 법원공무원 43명이 사망했다"며 "법원 구성원들이 잇단 동료들의 죽음에 심각한 정신적 충격과 함께 직장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사회복지공무원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있어야”
2010년 6월 기준으로 전국 3천467개 읍·면·동 중 사회복지공무원이 배치되지 않은 곳은 51곳, 1인이 배치된 곳은 1천880곳으로 조사됐다. 제갈현숙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최소한 읍·면·동에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을 2명 이상으로 충원해야 한다”며 “초과근무 감소를 위해 인력을 충원하고 초과근무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중남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사회복지·법원·교육청·구청 등에서 공무원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며 “업무와 관련한 스트레스가 주된 원인이기 때문에 범정부적 대책을 통해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소장은 “공무원집단은 지금까지 건강 문제를 개인적 수준에서만 바라볼 뿐 이를 확대 해석하지 못했다”며 “실태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실현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기사의 저작권은 매일노동뉴스에, 사진의 저작권은 전국공무원노조에 있습니다.
추가: 이날 토론회에서 발표한 임상혁 소장의 실태조사 결과를 첨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