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위생은 우리나라 노동자들에게는 낯설다. 본래 산업위생은 '인더스트리얼 하이진(Industrial Hygiene)'이라는 영어를 번역하여 만들어진 말이다. 작업환경 중의 위험한 물질이나 위험요인을 찾아내서 평가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일을 하는 분야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폭좁게 작업환경측정이라고 인식되고 있지만, 원래 측정은 산업위생의 한가지 도구에 불과하다.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는 산업위생실이 있다. 지난 2008년 12월 30일에 1박 2일로 수련회를 다녀왔다. 2009년 산업위생실의 야심찬 신년계획을 들어보자.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산업의학실, 산업위생실, 인간공학실, 교육센터로 구성되어 있다. 2009년 현재 연구소 상근인력이 총 16명인데, 이 중에서 산업위생실은 8명이 있는 거대조직이다. 실장 한 명에, 작업환경측정팀 4명과 분석팀 3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1999년 연구소가 설립될 때부터 산업위생분야가 있었기 때문에, 이제 만 열 살이 되는 셈이다.
이들은 2008년 12월 30일과 31일을 함께 보냈다. 지난 10년 산업위생이라는 학문이 우리 사회에서 무엇을 어떻게 역할하였는지 차분히 검토하였다. 학문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으나, 현실 속에서는 노동자들로부터 신뢰를 받지도 못하고, 기업주들로부터도 필요한 학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평가할 수 있었다.
한국사회 산업위생의 문제는 전문성과 윤리의식의 부족, 그리고 잘못된 역할설정에 있었다.
작업환경측정을 해서 법적인 노출기준과 비교하여 기준 미만이면 위험하지 않다는 잘못된 입장을 막아내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유포시키는 주범이 산업위생 전문가들이었다. 측정결과가 법적인 노출기준 보다 낮더라도 위험할 수는 있다. 이러한 판단을 정확하게 내리기 위하여 연구하고 전문적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산업위생전문가 스스로의 기본적 노력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발암물질로 인정하지 않지만, 국제적으로는 발암물질로 보고있는 유해물질이 있다면 최대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기업이 마련하도록 이끌어내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물질에 대해서도 노출기준 미만이면 아무런 권고도 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 측정기관의 모습이다. 이러한 행위는 노동자의 생명을 다루는 전문가로서 심각한 윤리의식 부족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산업위생을 전공한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기업주를 설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현장에서 사업주를 만나기는 커녕, 공장장이나 담당임원도 아닌 기껏해야 환경안전팀이나 만날 수 있을 뿐이다. 만날 수도 없는 사업주를 설득하는 것이 자신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이상,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심지어 어떤 전문가는 현장에서 발암물질이 발견되었는데, 조용히 관리자를 만난다. 노동자들이 알기 전에 빨리 대책을 세우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좋은 관리자라면 대책을 세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관리자도 그동안 발암물질에 노출되었다는 얘기를 노동자들에게 사실대로 들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노동자는 나중에 암에 걸리더라도 자신이 일하면서 마신 발암물질 때문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한다. 산업위생 전문가의 잘못된 역할모델 때문에 노동자의 알권리를 오히려 침해당하고, 현장에서 작업환경의 문제는 의제화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산업위생실 위상은 어떠해야 할까? 이것이 이번 엠티의 주제였다. 가장 높은 전문성으로 가장 윤리적으로 옳은 접근법을 택하여, 노동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고 노사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작업환경과 노동자 건강의 문제를 비중있는 의제로 다룰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2009년 열 살을 맞는 연구소 산업위생실은 2009년 초 '발암물질센터'를 발족한다. 산업위생은 유해물질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야인데,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서서 한국사회의 유해물질 제조, 유통과 사용현황을 감시하고, 발암물질 등 유해물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노동자와 국민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이미 많은 대학교수들에게 기획안을 발송하여 검토를 마무리하고 있다.
두번째는 석면의 이슈를 만들어내는 정책집단이 되려고 한다. 국내외 석면동향을 정리하고, 우리나라의 실태를 감시하여 국민과 노동자들에게 알려내는 역할을 하고, 어떠한 정책이 필요한제 끊임없이 제기하는 노력을 할 것이다. 그간 연구소에서 수행한 석면관련 연구들을 집대성하여 책으로 발간할 계획도 세웠다.
마지막으로는 작업환경측정이라는 법제도를 뛰어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자 한다. 지난 10년간은 현실 제도 안에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하였으나,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제는 낡은 틀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틀을 스스로 만들 때이다.
김신범, 곽현석, 김원, 우지훈, 선옥남, 정연희, 강진주, 그리고 출산휴가중인 최인자. 2009년에 이들이 시도할 새로운 노력에 현장의 관심과 격려를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