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세계일보의 기획기사 ‘대한민국 농촌, 가장 위험한 작업장’을 인용했음을 알립니다. 기사 내용과 사진을 사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③ 농민 잡는 농약


농촌진흥청이 2006년 ‘농작업 위해요인’을 조사한 결과 농민들은 농약(41.2%)을 가장 위험한 요인으로 꼽았다. 농약을 뿌린 후 30% 이상이 심하게 지치거나 두통과 어지럼증, 눈의 자극 등을 느꼈고 구역질과 구토증이 나타난다는 응답도 36.6%에 달했다. 하지만 농민들이 농약 중독에 대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방제복은 비싼 가격과 홍보 미비로 보급률이 미미하다. 수천만원이 든다는 농약 자동살포 설비 설치도 농민들에게는 언감생심. 농약 값이 크게 올라 효과 좋고 독성 덜한 고급 농약을 쓰는 것 마저 어렵다.


국내 유통되는 농약은 모두 1329종. 농약은 동물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맹독성 · 고독성 · 보통독성 · 저독성으로 나뉜다.  가격이 싸고 효과가 좋아 널리 쓰이는 고독성 농약은 사람이 1~3g만 먹어도 사망할 정도로 위험하다. 작업 중 일정 시간 이상 노출되면 급성 중독을 유발할 수 있다. 보통독성이나 저독성 농약도 장시간 노출되면 급성중독을 유발한다. 


c_20091009_875_1985.jpg

▲ 농약을 살포하는 농민. 방독면과 방제복을 입은 농민이 농약을 뿌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의 농민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상관없습니다. ⓒ www.women.paju.go.kr



농약은 생명을 위협하는 독극물이지만 관리는 허술하다. 고독성 농약을 사고팔 때는 ‘농약 취급제한기준’ 고시에 따라 판매자가 사는 사람 이름과 주소 · 품목명 · 수량 등을 반드시 기록하고 안전사용 리플릿 배포, 교육이수 확인서를 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를 따르지 않는 판매상이 많다. 저독성 농약은 말할 것도 없고 고독성 농약조차 어떻게 유통되고 쓰이는지 알 길이 없다. 만성중독은 측정할 근거조차 없다. 미국은 일정 교육을 받고 허가증을 딴 사람만 고독성 농약을 사용할 수 있다.


국내에 등록된 농약은 특별한 제재가 없는 한 10년에 한 번씩 위해성을 재평가 받는다. 유럽연합(EU)은 올해 초 농약 697개 성분의 사용금지를 결정했다. 국내에서 사용되는 농약에 든 155개 성분도 여기에 해당된다. 이 같은 위험성에도 우리나라에는 아직 제대로 된 중독 통계조차 없다. 급성 중독 농약은 통계청에서 조사하는 농약으로 인한 사망 통계가 전부다.


④ 산재보험 사각지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2008년 산업재해 발생 통계 일반 근로자 재해율은 0.71%이다. 반면, 산재보험에 가입한 농업종사자(기업형 농장과 농산물 가공공장 근무자)의 재해율은 1.39%로 전체 근로자 평균 재해율의 두 배에 달했다. 대부분의 농민은 산재보험 가입자격이 없어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했을 때 육체 · 정신적 고통은 물론 경제적 손실로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


농민을 재해로부터 보호할 대체 수단으로는 ‘농업인 안전공제’제도가 있다. 하지만 강제가입이 아닌 임의가입 형태여서 빈농은 금전적 부담으로 가입을 꺼릴 수밖에 없다. 농협에 따르면 2008년 말 현재 농민 167만명 중 76만4천명(45.7%)이 농업인 안전공제에 가입했다. 


우리나라 산재보험 대상에 자영 농민이 포함되지 않은 것과 달리 대부분 선진국가는 농민을 포괄적인 노동자 개념으로 인식해 산재보험이나 이와 비슷한 형태의 보험에 가입토록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등 18개국이 강제로 산재보험에 농민을 가입시키고, 노르웨이 일본 등 4개국이 임의가입제도를 운영한다. 


c_20091009_875_1986.jpg

▲ 쪼그리고 앉아 고추 모종을 심는 농민. 농작업은 근골격계질환 발생빈도가 높지만 이를 직업병으로 

아는 농민은 거의 없다. 설사 직업병임을 안다해도 농민은 산재보험 가입자격이 없어

보상을 받을 수 없다. ⓒ 노동환경건강연구소



⑤ 뒷짐 진 정부


우리나라 농민정책은 오랫동안 농촌 근대화와 식량 증산, 수입시장 개방 대비에 주안점을 뒀을 뿐 농민 건강 문제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정부가 농민 건강에 최소한의 정책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은 2004년부터다.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산어촌지역 개발 촉진에 관한 특별법’과 ‘농어촌 주민의 보건복지 증진을 위한 특별법’이 한꺼번에 만들어졌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2005년 6월 제1차 농어촌 보건복지 기본계획(2005∼2009년)을 내놓았다. 하지만 정부가 농민 건강을 챙기겠다고 나선 것은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과 자유무역협정(FTA) 등 시장개방 정책으로 발생하는 농촌 사회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관련 정책은 실효성에서 여러 한계점을 드러냈다.


일선에서 농작업 재해 방지에 앞장서는 각 지역 농업기술센터 인력난도 심각하다. 전국 169개 농업기술센터에서 일하는 생활지도직(농작업 재해 예방과 환경 개선 담당) 공무원은 579명으로 센터당 3.4명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농촌 소득 개선 상담과 농사 기술 이전에 힘써야 할 농촌지도직 공무원까지 농작업 현장에 나가 재해 안전 교육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정부와 국회는 “농민 건강을 위한 구체적 지원이 없다”는 농민들의 불만이 이어지자 뒤늦게 제도 손질에 나섰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이어질지 미지수다. 농식품부는 지난해부터 65세 이상 농민의 의료비 본인 부담금을 지원해주고 농부증 개념 정의 및 데이터베이스 구축, 전문병원 설립 방안 등을 중·장기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나라당 김우남 의원은 지난 8월 24일 농민들의 업무상 재해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교육·사업지원 업무를 담당할 ‘농작업안전보건센터’ 설치를 주내용으로 하는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산어촌지역 개발 촉진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농식품부와 행정안전부는 “재해 감소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센터를 설립하는 문제는 아직 결론을 내린 것이 없다”고 밝혔다.


노동환경연구소 이윤근 책임연구원은 “현 법제상 농민의 안전에 국가가 관여할 근거가 없는 만큼 조속히 농작업 재해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번호 제목 날짜
499 [속보] 경총은 경거망동 하지 말고 조용히 자숙하며 반성하라! file 2012.04.04
498 [속보] 고인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라 file 2012.04.04
497 [속보] 엘지화학 여수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 file 2012.04.04
496 근로착취공단 file 2012.03.12
495 산재불승인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5명 심사청구 제기 file 2012.03.11
494 개정 1년 산재보험, 전면 개혁 필요하다 file 2012.03.11
493 연장·야간·무휴영업에 무너지는 서비스유통노동자 건강권 file 2012.03.11
492 산업안전보건위원회도 사업주 입맛대로? file 2012.03.11
491 삼성·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서 ‘백혈병 유발 의심’ 벤젠 검출 file 2012.03.11
490 질판위 운영 뒤 산재 승인율 뚝! file 2012.03.11
489 진폐브로커 근절위해 일벌백계 필요 file 2012.03.11
488 정부 관심 필요한 군 건축물 석면사용 실태와 제거 file 2012.03.11
» 민, 산재보험 가입자격 없어 이중고 겪어 … 정부는 뒷짐 file 2012.03.11
486 농작업 재해 · 농부증에 무방비 노출된 농민 file 2012.03.11
485 신종플루에서도 차별받는 비정규직노동자 file 2012.03.11
484 쌍용차 노동자 심리상황, 파업 때보다 악화됐다 file 2012.03.11
483 미국 노동안전보건에 밝은 미래 올까? [38] file 2012.03.11
482 산업재해통계, 사회경제요인 반영한 분석 필요하다 [42] file 2012.03.11
481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사망사고, 회사 관리책임 있다 [42] file 2012.03.11
480 디클로로메탄 급성중독 사망재해 발생 [51] file 2012.03.11
479 발암물질 최루액 사용 당장 중지해야 [47] file 2012.03.11
478 직업성 암, 예방 관점의 관리체계 마련하자 [47] file 2012.03.11
477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스트레스로 조합원 또 사망 [43] file 2012.03.11
476 사회안전망으로서 산재보험 ‘철학’이 있어야 [38] file 2012.03.11
475 산재보험법 소급적용 위헌, 본질은 소득재분배다 [42] file 2012.03.11
474 일본, 부하직원 괴롭힘으로 발생한 자살 산재인정 [38] file 2012.03.11
473 방송 프로그램 내 안전보건 불감증 퇴출된다 [45] file 2012.03.11
472 석면피해 규모 잡을 감시체계 구축 시급 [51] file 2012.03.11
471 노동부 환경부 석면 정책 어긋났다 [45] file 2012.03.11
470 아시아에서 석면 사용? 앞으로 만만치 않을 듯 [44] file 2012.03.11
Name
E-mail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