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0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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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능 검사를 받는 플랜트건설노동자. 검사 중 가장 힘들어 보였다. ⓒ 일과건강
2010년 8월 16일 오전 8시30분.
여수시 소라면 소라초등학교 강당에 있는 녹색병원 건강검진센터 인력의 손놀림이 분주해졌다. 이날부터 일주일 일정으로 여수지역건설노동조합(여수건설노조) 조합원 건강검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9일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간 여수건설노조는 조합원 건강검진을 하나의 조합원 참여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하루 2백에서 3백명의 플랜트건설노동자가 이곳 소라초등학교 강당을 오고갈 예정이다.
▲건강검진 전체모습. 설문과 문진을 시작으로 모두 11개의 검사를 받게 된다. ⓒ 일과건강
배치전 검진에 없는 ‘폐기능·석면검진’
여수건설노조는 이번 건강검진에 일반건강검진 항목 외에도 폐기능 검사·석면검진·혈액질환·청력검진·근골격계질환 등을 포함시켰다. 석화학사업장의 플랜트 현장에서 조합원들이 일하면서 소음, 분진, 중금속, 유기용제, 발암물질, 석면 등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계전과 보온에서 경력 6년인 한 노동자는 “일하면서 이런 검진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배치 전 검사는 간단한 피검사 소변검사 혈압검사로 오늘처럼 한 적은 없었다”는 그는 노조가 마련한 건강검진이 “참 고맙다”고 전했다. 그는 또 “사업주들이 석면을 전혀 안 쓴다고 하지만, 스팀라인 감는 게 다 석면테이프”라며 그걸 최대한 물에 담갔다가 사용한다고 밝혔다.
“(스팀라인) 열이 6백도, 7백도라 화상을 입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도 있지만 사실은 석면가루 날리는 걸 되도록 마시지 않으려고 물에 푸욱 담갔다”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공장에서는 석면을 안 쓴다고 하는데 알게 모르게 안 쓸 수가 없다. 다 쓴다”는 것으로 봐서 석면 규제는 아직 법으로만 있을 뿐 일하는 작업장 구석구석까지 미치지 못함을 알 수 있었다.
※배치 전 건강진단 : 특수건강진단 대상 업무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다른 업무로 배치 전환될 때 배치예정업무의 적합성 평가를 위하여 사업주가 실시하는 건강진단.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별표12의 2에서 정한 177종의 특수건강진단 대상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노동자는 유해인자로 발생할 수 있는 직업병을 조기발견하기 위하여 특수건강진단을 받아야 한다.
계전에서도 용접을 많이 한 경력 20년의 김종칠(54세) 노동자도 폐기능 검사나 석면검진 등은 처음이다. 김종칠 씨는 “용접 흄이나 석면에 노출돼서 이런 검사를 꼭 받아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전에는 설마 우리가 아프겠냐며 검진을 소홀하게 여긴 적도 있지만 지금은 석면위험이 많이 알려져 인식자체가 검진을 꼭 받으려고” 한단다. 그렇지만 배치 전 검진 외에 자신이 어떤 검진을 받을 수 있는지의 정보는 없었다. 특수건강검진은 정규직에게만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조합원 인터뷰 김기옥(계전분회, 남, 48세) | |||
노동자를 위한 병원 필요해 - 계전은 어떤 일인가? - 주로 다닌 현장은 어디인가? - 이런 검진을 받아 본 적이 있나? - 검사를 받아보니 어떤가? - 어떤 일을 할 때 석면에 노출된다고 생각하나? - 플랜트건설노동자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 |||
ⓒ 일과건강
ⓒ 일과건강
▲플랜트건설노동자들이 꼭 받고 싶었다는 석면검진은 노동자들로부터 객담을 받아 분석에 들어간다. 위에서부터 객담 정도를 확인하고 분석을 위해 슬라이드 작업을 하는 모습. ⓒ 일과건강
직업성 암 기초자료 만들겠다
여수건설노조가 조합비를 따로 들여 건강검진을 기획한 것은 2009년 소규모 석면검진결과와 올 2월 노동부가 발표한 3년에 걸친 여수·광양산단 역학조사 결과 때문이다. 2009년 여수 플랜트건설노동자 1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석면검진의 유병률은 10.8%로 높은 수준이었다.
당시 석면검진을 맡았던 녹색병원·노동환경건강연구소 윤간우 산업의학과장은 검진인원이 많을수록 문제의 심각성이 증가할 수 있다며 석면질환자 발견을 체계화하고 관리하기 위해 추가 검진 필요성을 제기했다. 2010년 1월 노동부가 발표한 여수·광양산단 역학조사 결과는 이 지역 플랜트 건설노동자가 벤젠, 1-3 부타디엔, 염화비닐 같은 발암물질에 기준치 이상으로 노출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각종 유해물질에 노출되면서도 잦은 현장이동이라는 특수성과 비용, 고용불안 문제가 얽혀 플랜트건설노동자는 특수건강검진 혜택에서 빗겨나 있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한 여수건설노조가 조합원의 현재 건강을 챙기는 것은 물론 앞으로 발생할 직업병에 대비하기 위해 조합원 건강검진을 기획한 것이다.
여수건설노조 이정진 노안국장은 “플랜트 건설노동자에게 당장 직업성 암이나 근골격계질환 같은 직업성 질환이 계속 드러나는데 정부에서는 노출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건설노동자 직업성 암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이번 검진에서 우리 스스로 직업병 노출 정도를 파악해 정부에 법 개정을 요구하고 산재가 발생했을 때도 인정 자료로 활용할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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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학전문의 상담을 받으며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 플랜트건설노동자. ⓒ 일과건강
▲산업의학전문의 상담을 받으며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 플랜트건설노동자. ⓒ 일과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