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교육센터 한인임(uldam@dreamwiz.com), 일과건강 2007년 1월호 기획특집
글 제목을 읽고 화를 내는 동지들이 많을 것 같다. 필자도 제목을 정하고 생뚱맞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렇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는 의미를 가질 뿐 그 이상은 아님을 소명한다.
본론을 시작하기 전에 더 분명히 짚어야 할 것이 있다. 2006년 3/4분기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가구(2인 이상) 가계소득(본인+배우자+…) 중 근로소득은 상위 10%가 하위 10%의 37.8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자 가구의 소득차는 좀 덜하다. 10배가량으로 나타난다. 물론 근로자 가구의 최저 10%에 속하는 사람들의 가계소득은 1인 최저생계비 수준도 채 되지 못한다(662,432원). 상위 10% 그룹은 6,485,546원. 그렇다면 이 하위 10%에 포함되는 혹은 20%이내, 월 150만원이 평균 가구 수입인 30% 그룹 이내에 포함되는 노동자들은 과연 누구일까?
거침없이 얘기하건데 이들은 비정규직·영세·유통·서비스·여성·이주·장애노동자들임에 틀림없다. 이들의 불행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들에게는 고용안정성이 없다. 따라서 이들의 직장은 안전보건문제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를 뒷받침하는 통계는 너무나 많다. 특히 여기에서 유통·서비스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는 가장 열악한 조건에 있다고 단적으로 얘기할 수 있다.
고용된 노동자 중 서비스직종과 판매에 종하는 노동자 수는 전체적으로는 24.7%이나 여성취업자 중에서는 무려 36.9%나 된다. 남성노동자들이 주로 기능분야나 조립분야 노동자에 많이 고용된 반면 여성은 서비스 및 판매 노동에 고용되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직종 밀집도의 차이가 아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임금 등에 있어서의 문제이다.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불문하고 서비스판매직은 정액급여로만 확인해보면 사무직보다 낮은 임금수준을 나타낸다. 물론 그보다 더 낮은 생산직이 있다. 직업군을 네 분야로 나눠보면 하위에 포함되는 것은 맞다. 거기에 더해 동일 직종에서도 여성이 겪는 임금격차는 그 어떤 직업군보다 크다. 특히 35세 이상이 되면 더욱 그렇다.
이 같은 상태는 위와 같이 높은 이직률을 보이게 된다. 즉, 불안정고용을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또한 제조업에서처럼 장시간노동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회적 임금이라 얘기되는 4대 보험 문제도 역시 이들에게는 사각지대이다. 거기에 더하여 더 위험하고 더 쇠약하다. 즉 비정규·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재해율에서는 두 배 이상, 산재사망률에서는 4배~10배 이상 높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죽음이나 재해가 아니라 할지라도 건강상태 자체가 아주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사망과 아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는 연구가 이미 존재한다.
남성 노동자의 1/3, 여성 노동자의 2/3가 비정규직인 상태에서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건강지표에 있어 남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자가평가 건강수준, 만성질환 유무, 지난 1년간 의료기관 방문 여부에 대해 모두 남성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높은 위험도를 보였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만성질환 유무에서 여성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높은 위험도를 보였으나 자가평가 건강수준과 지난 1년간 의료기관 방문여부에서는 여성 정규직 노동자와 유의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는 여성 노동자 전체의 불건강과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의료기관 접근성 문제로 생각된다.”고 분석하였다. 여기에 서비스·판매직종의 여성들이 겪는 ‘감성 노동’ 스트레스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노동자 계층 내에 ‘밑바닥 계층’이 더욱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이것이 더욱 고착화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 가장 밑바닥에 불안정고용과 저임금과 불건강과 여성이 있다. 이 글에서 주장하는 바는 평생직장을, 고임금을, 질 높은 사회복지를 제공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는 해야 된다는 얘기를 하고자 한다.
최근 날치기 통과된 비정규법은 ‘밑바닥 계층’을 더욱 확산시킬 전망이고 여기에는 소멸해가는 1차 산업과 굴뚝산업에서 떨어져 나온 여성들이 서비스·판매직이라는 이름으로 대거 진입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사회 속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할 주체는 바로 나고 우리이다. 이제 이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