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건강 2008년 6월호 기획특집
교육센터는 지난 2006년에 12월 간담회를 열어 우리 사회의 안전보건 취약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동자건강권 운동진영의 역할을 모색하였습니다. 그리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 산하 취약분과에서 첫 사업으로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의 건강권을 택하였을 때, 그것을 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유통서비스 분야 여성노동자의 문제를 조사하고, 어떤 의제로 사업을 할 것인지 만드는 일을 하였습니다. 조급하지 않게 긴 호흡으로 천천히 준비해온 사업이 드디어 본 궤도에 오르려고 합니다.
2006년 12월호 일과건강의 기획특집 주제는 “안전보건 취약노동자의 문제를 제기하자!”였습니다. 이어진 2007년 1월호에는 “유통서비스 노동자의 건강권과 조직화”를 기획특집으로 다뤘습니다. 그리고 2008년 6월, 우리는 또다시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의 건강권을 특집으로 다룹니다. 원래는 서비스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조사결과를 집중적으로 다룰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자회견을 앞두고 있어 조사결과를 일과건강이 공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1년 반 동안 교육센터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과 함께 해온 일을 정리하였습니다. 어떠한 방식으로 사업을 만들어냈는지 정리해서 공유하고자 합니다.
# 해외 사례 살펴보며 공감 주제 찾아내
2006년 8월 10일.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는 중요한 사안을 의결하였다. 위원회 산하에 비정규, 영세, 여성, 이주노동자 등 안전보건 취약 노동자의 건강권 의제를 개발하고 운동을 진행하는 단위를 두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2007년 6월 취약분과가 발족하였다. 민주노총에서는 취약분과가 단순히 취약노동자의 건강문제를 제기하는 창구로서 역할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속에서 주체를 세우고 지속적인 건강권 운동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지원역할을 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교육센터에서는 민주노총의 이러한 결정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판단하였고, 적극 지원하기로 방침을 정하였다.
2006년 가을, 취약분과 준비를 위하여 서비스연맹, 여성연맹을 방문하여 연맹 상황을 파악하고 노동자건강권에 대한 연맹의 입장을 확인하였다. 지역노조와 특수고용직노동자 대책위원회를 만나 함께 고민을 나누었다. 만나본 조직들은 서로 처한 상황이 매우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건강권이 중요하지만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충분히 예상되었던 것이다. 건강권은 배부른 활동이라고 여기거나, 남는 힘이 없으니 건강권 운동을 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동지들을 욕할 것이 아니라, 건강권 운동이 조직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 설득하는 접근법이 필요했다. 사례가 필요했다.
해외사례부터 찾아보았다. 여성노동자의 건강권 의제들을 찾아보았고, 특수고용직 노동자와 관련하여 운수노동자의 의제를 확인하였다. 영세사업장 노동자와 관련한 지역운동사례들도 찾아보았다. 해외의 성공적 운동사례들이 여러 가지 발견되었다. 그 중 하나가 유통서비스 분야의 다양한 건강권 운동이었다. 해외 서비스 노동조합들은 하루 종일 서서 일하지 않고 중간 중간 앉을 권리를 요구하고, 자유롭게 화장실 가는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업은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중요한 과정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마침 서비스연맹은 이랜드 투쟁을 겪으며 백화점 조직화를 모색하는 중이었다.
2006년 12월 8일, 교육센터는 취약노동자 건강권 운동을 주제로 한 간담회를 개최하였다. 어떤 식으로 운동을 시작할 수 있는지 길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건설연맹 최명선 국장, 비정규노동센터 김주환 부소장, 서울지역일반노조 임재경 위원장이 함께 하였다. 간담회의 결과는 매우 유익하였다. 업종에 따른 특정한 주제를 잡아내어 구체적인 운동을 전개하고 확산시키는 형태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이 마련되었다.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제공하는 운동은 꽤 적절하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민주노총에서는 서비스연맹부터 사업을 시작하는 것에 동의하였다. 그리고 서비스연맹도 해외 사업사례를 확인하면서, 적극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2006년 12월 19일,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는 취약분과 건설과 관련한 방침을 확정한다. 유통서비스여성노동자를 중심으로 모범적 건강권 활동사례를 만들어 취약노동자 전체적으로 확산하기로 한 것이다. 교육센터는 이에 발맞추어 2007년 교육센터 핵심사업으로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 건강권 사업을 하겠다고 결의했다. 그리고 2007년 1월 유통서비스여성노동자의 건강권 문제를 일과건강 기획특집으로 다루었다.
# 몸과 마음 존중하자는 구체 사업이 추진되다
간략하게 주요 경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의자캠페인 사업의 주요 경과 | ||
2006년 8월 10일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 06년 제2차 회의에서 취약분과와 건설분과를 노동안전보건위원회 산하에 만들기로 결의. 취약분과는 비정규, 여성, 이주,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단위. |
상당히 긴 시간동안 현장에서 문제를 찾아내고, 어떤 것부터 해야 할지 연맹과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체 과정을 다시 간단히 정리한다면, 네 가지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현장의 안전보건 문제 확인과 의제 발굴
의제를 발굴하기 위하여 택한 방법은 현장 노동자 의견수렴, 서비스산업의 안전보건 문제 문헌자료 수집과 분석이었다.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한 의제들이 발굴되었고, 관련된 운동경험이 축적되었기에 발굴된 의제들이 어떤 식으로 운동이 이루어졌는지 확인하였다. 선정된 의제와 관련하여 제도적 대책이 필요할 경우를 대비하여 다른 나라 산업안전보건법이 정한 서비스노동자 관련 조항을 분석하기도 하였다. 해외사례는 큰 도움이 되었다. 나라마다 문화와 역사가 다르지만 노동자를 대하는 자본과 사회의 태도는 너무도 흡사하였다. 다양한 방식의 건강권 의제가 개발되고 운동으로 조직되어온 과정을 확인하면서, 우리나라 유통서비스 분야에서 건강권 운동의 전망을 모색할 수 있었다. 법제도 검토도 도움이 크게 되었다. 건강권 운동이 활성화되지 않은 분야는 산업안전보건법의 기본적 권리들조차 실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법에 정해진 기본적 권리들을 실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현실적인 목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핵심 의제 선정과 운동 목표 수립
서비스 분야의 건강권 문제는 매우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장시간 서서 일하는 문제, 근골격계질환, 성대 결절, 화장실을 자주 못가는 것, 휴식공간의 부족,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제대로 조치해주지 않는 회사의 관행, 친절에 대한 모니터링, 고객으로부터 받는 인격적, 물리적 폭력 등등으로 이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감정노동에 의한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였다. 서비스연맹에서도 감정노동의 심각성은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맹에서도 동의한 것은 감정노동부터 문제제기를 해서는 답이 나오기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피부로 와 닿을 수 있는 다른 문제를 찾아내서 그것을 해결하는 경험을 쌓는 것이 서비스 연맹에게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였다. 여기에 딱 맞는 것이 화장실을 마음대로 가는 것이나 의자를 제공하여 고객이 없을 때 앉아서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영국에서 진행된 서비스노동자를 존중하는 캠페인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캠페인은 서비스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을 예방하기 위하여 고객과 회사를 상대로 진행되는 운동이다. 백화점과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직접 물어보았다. 많은 노동자들이 의자를 선택하였다. 서비스연맹에서도 의자를 놓는 것이 매우 현실적으로 가능한 목표라고 판단하였다. 특히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 산업보건기준에관한규칙 제277조에 “장시간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 제공”하라고 분명히 정해졌기 때문에 그러한 판단에 힘이 실렸다.
다음 단계는 의자를 제공하라는 요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립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현장에서 앉아 일하기 위해 우리가 운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서비스 여성노동자는 노동을 천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모든 문제들이 비롯되므로, 의자를 놓는 것에서부터 서비스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존중하는 운동이 시작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궁극적으로 감정노동의 문제까지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셋째, 사업계획 마련과 확정
약 8개월 정도의 시간을 들여서 대략적인 그림을 완성하였다. 서비스연맹 주요 간부들이 과연 이 사업에 동의할 것인지 매우 궁금하였다. 마침 11월 중순에 “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자 현실과 과제”라는 세미나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건강문제를 발표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세미나 자리는 서비스연맹 소속 노동조합 간부들이 참석할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작업내용을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백화점과 마트에서부터 서비스노동자에게 의자를 제공하라는 슬로건이 갖는 의미에 피자헛 노동자들, 호텔노동자들, 경비업체 노동자들, 관광회사 노동자들 등 다양한 서비스 노동자들이 동의해주었다. 매우 적극적으로 운동의 필요성에 공감해주었고, 이 경험은 이후 서비스연맹이 적극적으로 연맹 대의원대회 때 교육을 배치하는 계기가 되었다. 민주노총과 서비스연맹은 “서비스 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이라는 슬로건에 동의하였고, 이를 2008년 건강권 의제로 선정하였다. 이 시점에 중간보고서 형태로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의 건강실태와 의자 놓기 운동 의미를 자료로 배포하기 시작했다. 외국사례 등을 다양하게 담아놓은 자료였기에 이후 언론에서 기사를 작성하는데 많이 인용되었다. 서비스연맹과 함께 논의하여 전국적인 캠페인 사업으로 가져가기로 합의하였고, 세부 사업계획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서비스연맹 대의원 대회에서 2008년 중요 사업으로 의결되기에 이른다.
넷째, 사업추진
서비스연맹에서는 고객 지원을 받는 운동을 기획하였다. 고객이 동의하지 않으면 의자를 놓는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보다 설득력 있게 내용을 준비해야했다. 2008년 3월부터 5월까지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화장품 판매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무엇이 힘든지, 서서 일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며 어떤 건강상의 문제들을 안고 있는지 설문조사를 하였다.
하지정맥류 건강검진을 배치하여 서서 일하는 탓에 하지정맥류가 얼마나 발생하는지 확인하였다. 다리 근전도 변화를 측정하는 실험연구를 배치하여 서서 일하는 노동자와 앉아서 일하는 노동자 사이의 근육긴장 및 피로의 차이를 조사하였다. 그리고 백화점에 방문하여 의자에 앉을 수 있는지 없는지, 화장실은 몇 개나 있는지 등 구체적인 노동 조건을 현장조사 하였다. 이러한 연구조사는 서비스 건강권 사업 자문단을 민주노총 취약분과에서 구성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문단에는 정진주(사회학,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이윤근(인간공학,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책임연구원), 이수정(노무사, 민주노무법인), 정최경희(산업의학, 경희의료원), 윤간우(산업의학, 녹색병원) 등의 연구자들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서비스연맹의 캠페인 사업 준비를 위한 전문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조사는 매우 잘 이루어졌고, 사회적으로 설득력 있게 의자의 필요성을 제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본격으로 캠페인을 전개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사회의 진보단체와 여성단체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이 사업에 동참하느냐였다. 논의결과 캠페인단 발족을 위한 워크샵을 가져서, 각 단체의 담당자들과 서비스여성노동자의 건강실태와 캠페인 사업 의의와 방향에 공감대를 형성하기로 하였다. 6월 18일 워크샵에 이어 6월 30일 드디어 캠페인단이 발족한다. 한편, 서비스연맹은 조합원들에게 지속적인 선전사업을 통하여 의자캠페인을 알려오고 있다. 조합원의 호응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 건강권 의제 발굴의 본보기로 확산될 것
한 번 떠들고 끝나는 사업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노총의 원칙이었다. 건강권 운동의 주체를 형성하고 지속적인 건강권 활동이 연맹단위에서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 목적은 달성되고 있다. 서비스연맹은 아직 노동안전보건 담당자를 임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연맹의 정책국장과 여성부장, 그리고 조직 활동가들이 이 사업의 내용과 방법을 숙지하고 있으며, 의자 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건강권 사업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함을 잘 이해하고 있다.
한편, 아직 노동자건강권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는 노동조합 조직에서 건강권 의제를 발굴하고 사업으로 만들어나가는 일련의 과정이 정리된 것도 성과이다. 앞으로 민주노총은 아직 노동안전보건위원회에 결합하지 못하는 다양한 연맹들에서 의제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건강권 운동 조직화를 시도하게 될 것이다.
이번 사업을 통하여 교육센터 역시 큰 깨달음을 얻고 있다. 한국사회는 아직까지 제조업 노동자와 대규모 사업장 정규직 노동자, 남성노동자의 건강문제가 중요 의제들을 차지한다. 교육센터는 무언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번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 과정에서 한국사회의 취약노동자들이 갖는 특성을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취약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건강과 안전이 법에 의해 제도적으로 보호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설령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주장하기 쉽지 않지만, 자신들의 노동이 현재와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모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건강권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은 새로운 노동을 꿈꾸는 것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이번 사업에서 많이 확인할 수 있었다. 의자를 제공하도록 법에 정해져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서비스 여성노동자들이 놀라는 표정을 바로 앞에서 확인하는 것은 너무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고객이 없을 때 앉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 노동자들 얼굴 가득 기쁜 웃음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서, 현실적 목표를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의 중요성을 더욱 크게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법에 있다고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건 노동자들이 잘 알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고객과의 공동행동을 제시했을 때 비로소 의자 캠페인은 현실이 될 수 있었다. 우리는 서비스 노동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을 바꾸는 운동을 하게 될 것이다. 공부를 못해서, 가난하니까, 기술이 없으니까 이렇게 노동해도 되고 그렇게 노동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우리사회에 팽배하다. 이 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서서 일할 수밖에 없고, 위험한 물질을 먹을 수밖에 없고, 단순반복 작업으로 골병에 들 수밖에 없다고 사회가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리 노동자들에게 큰 위험이다. 취약노동자에 대한 사회 시각을 바꾸고 노동을 존중하게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운동영역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정리하자면 취약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중요한 과제가 세 가지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첫째는 조직화로 권리실현의 주체형성, 둘째는 법과 제도에 정해진 권리의 현실화, 셋째는 노동자 존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형성. 이러한 과제를 풀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서비스 여성노동자와 함께 한 지난 1년 반의 시간은 얼핏 답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민주노총과 서비스연맹의 동지들, 그리고 자문단의 여러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