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조각이 된 조사보고서
지난 12월 3일 (화) 오후 2시~4시 프란치스코교육회관 220호에서 문재인 정부의 중대재해사업장조사위원회 권고와 이행실태 점검 토론회 '휴지조각이 된 조사보고서'가 진행됐다.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조사위원회, 집배원 노동조건개선 기획추진단,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사건 관련 진상대책위원회, 구의역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에 참여한 조사위원과 현장 노동자들이 참석했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서울의료원 간호사 자살 진상대책결과에 대한 평가를 진행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0회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에서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4개 위원회가 잇따라 꾸려졌다. 수개월의 조사 끝에 권고안을 내놨다. 하지만 토론회 참석자들은 여전히 현장은 바뀌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여전히 깜깜한 발전소 현장
지난 8월 특조위가 내놓은 보고서는 “일터는 깜깜했습니다.” 라고 시작한다. 김용균 사망 후인 지난 1월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특별근로감독 결과에서도 조명 설치는 안전조치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한국남부발전의 하동발전본부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보내온 영상에 따르면 현장은 여전히 칠흑같이 어두웠다. 남부발전은 지난 5월 정부에 긴급 안전조치 추진 현황을 보고하면서 조명 등 설치여부에 대해 "완료"라고 답한 곳이다.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 노동자를 직접고용하고, 2인1조를 위한 필요인력 충원 등 특조위가 내놓은 22개 권고안 중 특진마스크 지급을 제외하면 제대로 이행된 게 없다. 특조위에 참여했던 전주희 조사위원은 "고인의 죽음은 고용형태와 얽혀 있는 죽음이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권고했는데 정부는 '안전대책은 권고안대로 할 수 있지만 직접고용은 어렵다'거나 '임금 착복 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데 직접고용은 어렵다'는 식으로 권고안을 선별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규직 인력충원 약속 대신 배달대행서비스 업체와 위탁계약 맺은 우정사업본부
집배원 과로사 문제가 대두되자, 2017년 8월 우정사업본부 노사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집배원노동조건개선기획추진단'을 만들었다. 기획추진단 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집배원의 연간 노동시간은 2천745시간이다. 한국 임금노동자 연평균 노동시간(2천52시간)보다 693시간 길다. 하루 8시간 노동시간으로 따지면 평균 87일을 더 일한 셈이다. 게다가 높은 노동강도와 스트레스로 뇌심혈관계질환에 걸릴 위험이 교육공무원에 비해 평균 1.23~2.95배 높았다.
기획추진단은 지난해 10월 △정규직 집배원 순차적 증원 △토요근무 폐지를 위한 사회적 협약 △안전보건관리시스템 구축 △집배부하량산출시스템 개선 △조직문화 혁신 △업무완화를 위한 제도개편 △재정 확보를 골자로 한 7개 권고안을 제시했다. 우정사업본부는 2020년까지 집배원 2천명을 증원하고, 토요일 배달업무를 중단하는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안을 발표했다. 우정사업본부는 통상우편물 감소로 우편사업 적자 폭이 커지자 정규직 인력을 늘리는 대신 '와사비앱' 같은 배달대행서비스 업체와 위탁계약을 맺고 노무관리를 강화했다.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다단계 하도급, 조선업 중대재해는 여전히 진행 중
2017년 5월 삼성중공업에서 크레인 참사가 벌어졌다. 사상자만 31명. 같은해 8월 STX조선해양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노동자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정부는 민간전문가 중심으로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조사위가 9개월 만에 발표한 조선업 중대재해 근본 원인은 다단계 재하도급, '위험의 외주화'였다. 국민참여조사위는 다단계 하도급의 원칙적 금지를 권고했다. 하지만 다단계 하청구조는 지금도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미봉책으로 가득한 서울의료원 혁신방안
지난 1월 이른바 '태움'에 시달리던 고 서지윤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사건 관련 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진상대책위는 9월 서지윤 간호사 사망 관련 책임자 징계를 포함한 34개 권고안을 발표했다. 지난 12월 2일 (월) 서울의료원은 혁신방안을 내놓았다. 핵심 권고사안인 ‘경영자·간호 관리자 징계’와 ‘인력충원’ 방안이 빠져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획추진단·국민참여조사위·특별노동안전조사위·진상대책위. 이름만 그럴듯한 기구를 꾸려 노동계 투쟁과 사회적 공분을 잠재우는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권고안 내용이 당장 실현되지 못하더라도 해법을 찾겠다는 입장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내놓아야 할 것이다. 토론회에서는 모든 권고안에 대한 감시·점검이 가능하도록 통합적 이행점검위원회 설치가 제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