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후기] 캐런 메싱 강연회
글 : 김태을 (서울동부비정규노동센터 소장 · 일과건강 회원)
한마디로 낚였다. 난 캐런 메싱을 몰랐고, 그가 썼다는 책도 읽은 적이 없다. 그저 이메일로 날아온 강연회 포스터에 ‘한국여성노동자 건강권 운동의 역사’ 라고 적혀 있길래, 그래서 갔다. ‘여성노동자’와 ‘건강권’은 평소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들 중 하나다. 당연히 시큰둥 하는 주변 동료 그 누구도 설득시키지 못했다. 늦은 시간 혼자 강연을 들으러 가야 했다. 그래도 들어야 뭐라도 하지 싶어서. 그런데 이런, 당황스러워라. 뒤늦게 강연 제목 ‘공감 격차 줄이기’가 눈에 들어왔다. 여성노동과 건강권 이야기보다,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본인이 인간공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라고 소개하는 외국인의 강연 내용에서 처음 듣는 것은 없었다. 뒤이어 진행된 한국여성노동자 건강권 운동의 역사 강연에도 처음 듣는 것은 없었다. 언젠가, 어디에선가 한번쯤 들어 봤던 이야기들이었다. 그들이 그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들이었구나 하는 걸 알게 됐다.
건강권 사업을 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돈’ 이었다. 조사·연구 사업을 하는데도, 교육을 받고자 해도, 건강검진이든 스트레칭 교실이든 산재 신청이든, 나에게는 돈이 제일 힘들었다. 사실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이후 자치구별로 노동복지센터가 만들어 지면서는 노동법교육, 무슨 무슨 문화강좌, 실태조사 사업 등은 원 없이 하고 있다. 돈 없어서 사업 못한다는 말을 양심상 하지 못한다. 그래도 안전보건사업 쪽은 늘 돈이 부족했다. 그래서 노동자건강센터가 번듯하게 지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영세사업장 밀집지역인 성수동에 이 지역을 전담하는 작업환경의만 배치되면 절반 이상은 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작업환경의나 노동안전보건활동가들은 노동자들에게 꼭 필요하지만 시스템 안쪽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노무사들도, 변호사들도. 노동자들을 부단히도 시스템에서 최소화 하거나 배제하려는, 이를 위해서 노동자를 길들이려는 이 사회에서, 특히나 노동자들의 생명과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강권 문제를 해결하려면 역시나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첫 번째라고 생각해 왔다.
그날 강의실을 채운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때론 웃기도 했다. 나는 그들과 살아 왔고 살아갈 날들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그날 강연을 들으면서는 그렇게 생각했던 내가 새삼 우스웠다. 노동복지센터 같은 지원조직에서 일하는, 동네에서 매일같이 얼굴 보는 활동가들 생각도 났다. 그들도 비슷한 고민들이 있을 수 있겠다. 그래서 캐런 메싱의 책 ‘보이지 않는 고통’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지금 책은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있다. 캐런 메싱, 외국인 노학자에게 나는 속 시원하게 까이는 중이다.
강연 말미, 한 간호사분은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울먹였다. 환자의 죽음을 접하면서 괴롭다는 그 분의 이야기에, 그날 그 곳에 모인 분들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새삼 다가왔다. 많이 고맙다. 많이 응원하니 힘들 내시라고 이야기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