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정보] 건강검진, 비싼 게 좋은 건가요?

by 일과건강 posted Apr 0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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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검진 비싼게 좋은건가요(2006).pdf | 원본보기 | 내려받기 ]

이 글은 노동건강연대 이상윤 선생님이 작성해 주신 것입니다. 2006년 2월호 일과건강에 실렸습니다. 당시 이상윤 선생님은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속이었습니다. 그림까지 있는 파일로 보시려면, 첨부한 PDF 파일을 봐주세요.

건강검진, 비싼 게 좋은 건가요?
건강검진, 질병의 조기진단이 아닌 과시용 상품으로 전락한 건 아닐까?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이상윤(maxime68@dreamwiz.com)
꿈틀, 2006년 2월호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건강검진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높아져 가고 있다. 그러한 관심을 반영해서인지 요즘 건강검진을 보면, 건강보험공단에서 무료로 실시하는 성인병 건강검진부터, 대형병원에서 경쟁적으로 유치하는 100만 원을 넘는 건강검진까지 그 가격과 종류도 다양하다. 그래서 고가의 건강검진 쿠폰이 효도 선물 품목의 하나로 각광받고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경향은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소위 좀 ‘잘 나가는’ 대기업 노동조합들은 조합원들 이해를 만족시키기 위해, 법적인 건강검진인 성인병 검진 및 특수건강진단 외에 ‘종합검진’이라는 형태로 상대적으로 고가인 건강검진을 조합원들에게 제공해주려고 열심인 경우가 많다. 조합원들의 건강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노동조합 간부의 충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솔직히 필자는 이러한 모습을 보면 좀 씁쓸한 생각이 든다. 심지어 ‘노동조합이 종합검진 비용으로 조합원 건강을 위한 다른 프로그램에 투자하는 게 더 나을 텐데……’하는 심정인 경우가 많다. 과연 비싼 검진은 조합원들의 건강에 도움이 될까?

어떤 검진항목을 건강검진에 포함시킬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있어 기준이 되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검사 방법의 정확성이다. 검진항목에 포함된 검사 방법이 여러 연구들을 통해 정확한 것이라고 입증되지 않은 것이라면, 이는 건강검진에 포함시키기 어렵다. 최근 의학기술이 발달하면서 검사 방법도 첨단화되고 있는데, 신기술이라고 이야기되는 검사 방법 중에는 아직 충분히 그 정확성이 입증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

둘째는 검사 항목이 조기 진단과 치료가 가능한 방법인가에 대한 것이다. 건강검진을 하는 목적은 질병을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하기 위함이다. 건강진단으로 특정 질병을 늦게라도 발견해서 내가 무슨 질병에 걸렸는지 좀 일찍 알고 죽는 것은 의미가 없다. 또한 조기 발견되더라도 현대 의학에서 그 질병에 대한 치료 방법이 없다면 이러한 질병은 조기 발견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질병이 진행 경과가 너무 빨라서 순식간에 치명적인 정도로 발전하는 질병은 건강검진의 대상 질병이 될 수 없고, 조기 진단을 해도 치료 방법이 없는 불치병 역시 건강검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셋째는 비용과 효과에서 이익이 있어야 한다. 특히 이 원칙은 ‘집단’ 검진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번 검사에 10만 원 하는 검사 방법이 있는데, 이 검사 방법으로 만 명을 검사해 보아야 한 명 조기 진단이 가능할까 말까하는 경우에는 ‘집단’ 검진에 이 검사 방법을 포함시키기 힘들다. 비용에 비해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검사 방법을 ‘개인’ 검진에 포함시키는 것은 가능하다. ‘개인’ 검진은 본인이 그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위험을 덜고자 하는 개인의 합리적 선택 행위에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칙들에 의거해 판단해 보면, 노동자 집단 검진은 가격이 비싸다고 다 좋은 것은 절대 아니다. 사실은 제대로만 받으면, 노동자 입장에서 가장 싸다고 할 수 있는 건강보험공단의 성인병 검진과 암 검진, 사업장에서 실시하는 특수건강진단이 노동자 건강에는 가장 좋은 검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이러한 검진은 무료이니까 싼 게 비지떡이라고 생각하면서 제대로 검진에 임하지 않는다. 
검진 전 금식도 하지 않고, 그 전날 엄청난 술을 마시고 와서 형식적으로 건강검진에 임하는 경우도 많다. 자신의 건강에 대해 아예 무관심한 이라면 이러한 것을 탓할 수 없겠으나, 나중에 검진 결과를 받아보고 ‘엉터리’라고 투덜거리며, 더 비싼 검진을 주선하라고 노동조합에게 요구하는 조합원이 있다면, 이러한 시각은 교정해 주어야 한다.
물론 건강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성인병 검진이나 암 검진, 그리고 사업장 특수건강진단으로 조기 진단이 가능한 질환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 검진으로 발견되지 않는 질환은 어떤 검진을 하더라도 조기 진단과 치료가 어려운 경우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조기 진단은 가능하지만 그 방법이 비용-효과적이지 않은 경우이다. 위에서 말한 검진 대상 질병이 아닌 경우에는, 증상이 나타났을 때 병원에 가서 의사와 상담하고 진료를 받는 것이 훨씬 낫다.

사실 요즘 세태를 보면, 건강검진이 본래 목적인 질병의 조기 진단을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기보다, 개인이나 집단의 과시용 상품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강남의 유명 대형병원 종합검진센터에서 100만 원이 넘는 검진을 ‘소비’하는 이들은 실제 ‘건강’을 구매 한다기보다는 건강과 웰빙 ‘이미지’를 구매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차별화하고 있다. 
자,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노동자들도 그들이 구매하는 ‘건강 이미지’를 ‘평등’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싸우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그 여력으로 우리의 건강을 좀먹는 제반 노동조건을 바꾸기 위해 싸우는 것이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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