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산재신청 전원 불승인

by 일과건강 posted Mar 1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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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5일.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 천안지사에서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산재인정 여부를 판정하는 자문의사협의회가 열렸다. 제목에서 본 바와같이 전원 불승인. 기사에 천안지사에서 피해자 진술을 했던 박옥이, 김지연 씨 진술 내용을 같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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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 모습. 반올림은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얼굴 한번, 진료 한번 한 적 없고 현장도 안 가본 자문의사가 생존이 걸린 산재판정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 이현정




1년 이상을 끌어온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산재신청에서 전원이 불승인되었다.


# 근로복지공단, 평택/천안지사에서 자문의사협의회 개최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노동자는 故황유미, 황민웅, 이숙영(이상 기흥공장) 씨와 김옥이, 박지연(이상 온양 공장) 씨로 모두 5명.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5월 15일(금) 이들의 산재승인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이유로 평택지사와 천안지사에서 각각 자문의사협회를 열었다.


평택지사 자문의사협의회에서 피해자 진술을 한 유족들은 피해 당시 작업환경과 치료과정의 어려움을 사실대로 밝혔다. 故황유미 씨 유족 황상기 씨는 방사선 작업에서 인터락(안전장치)을 안 했던 점과 사고 뒤 2년 뒤에나 진행된 역학조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故황민융 씨 유족 정애정 씨는 스스로가 삼성반도체 노동자였기에 알 수밖에 없는 작업환경을 전달했다. 그러나 피해자 진술은 자문의사협의회에 참여한 의사들에게 효과가 없었다. 



천안지사 자문의사협의회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박지연 씨 진술
▲ 피해자 얼굴이 그려진 선전물. / 故황민웅(왼쪽), 황유미 씨 얼굴이 그려진 선전물에 발암물질과 방사선에 노출된 반도체 노동자를 보호하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 이현정

저는 2004년 12월 27일 온양반도체(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하여 2년 8개월간 QA그룹이라는 검사과에서 일하다급성 골수성백혈병(M1)이라는 암에 걸려 2년째 투병중인 피해자 박지연입니다. 입사한지 2년 8개월만인 2007년 9월 12일 21살의 젊은 나이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5번의 항암치료를 받아 2008년 4월 29일 골수이식을 어렵게 받았습니다.


이식후 합병증으로 응급실을 3번이나 갔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도 있었지만 고비는 넘겨 이식한지 1년이 지난 지금 2주에 한번 서울 성모병원으로 통원치료를 다니고 있습니다. 지난 1년여 동안 병원비로만 수 천 만원을 썼고 어려운 형편에 부모님께 효도해 보고자 대학도 포기하고 삼성이라는 대기업에 취업했지만 3년도 안되어 저에게 돌아온 결과는 TV 드라마에서나 나오던 백혈병이라는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감기한번 걸리지 않고 건강했던 제가 하루아침에 생사를 넘나드는 병에 걸렸다는 게 꿈만 같았고 삼성을 선택한 제가 원망스럽고 후회스러울 뿐이었습니다. 한참 젊은 나이에 병에 걸려 충격은 더욱 컸고 감당하기조차 힘이 들었지만 주위 사람들의 격려와 엄마의 지극한 정성과 보살핌에 꿋꿋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제가 몸담아 일했던 곳은 1라인으로 Dram Front 공정부터, Mold, Finish, Gate, Test 공정까지 돌아가며 조립, 검사공정에서 제품의 외관검사 및 X-Ray 검사, Finish 공정의 품질 실험 특성검사인 도금 접착성 실험등 제품의 불량유무를 검사하는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Mold 공정에서 X-Ray 검사가 비중이 제일 컸고 더군다나 X-Ray 설비는 10년이 넘은 노후설비라 안전장치 등 잠금장치조차 없어 바쁘게 일하다보면 설비가 켜져 있는지도 모른 채 문을 열고 닫고 작업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Finish 공정에선 도금공정이 끝난 Lead Frame 자재를 날개로 잘라 Bake oven 2HR, Steam aging 8HR, 넣어 놓은 후 FLUX라는 끈적끈적한 노란색 접착제 역할을 해주는 약품에 제품을 담갔다가 245도씨의 녹아있는 납에 담가 솔더(납)을 입혀 제품에 솔더가 잘 입혀지는지 테스트하는 도금접착성 검사를 했습니다. 솔더가 입혀지면 세척제 역할을 하는 141B 약품에 담근 다음 SCOPE 검사를 하는 작업을 수없이 했습니다. 납에 제품을 담글 때, 하얀 연기가 나는데 그 연기는 코로 바로 흡입이 되어서 역겹고,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으며, FLUX 용액과 141B 용액을 교체하며 다루는 과정에 화학약품이 손에 묻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장갑이라고는 면장갑을 착용했지만 약품이 그대로 손에 스며들었고 물로 씻어도 약품이 남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거의 마스크를 하지 않았고 실험시 필요한 안전보호장비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솔더 포트 장치의 연기가 빠져나가는 후두에서 불이 난 적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위험하고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일하며 건강만 잃고 제 인생은 송두리째 날아가 버려 지금은 부모님께 불효자식이 되어서 큰 상처만 남긴 채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음에 진단을 받았던 병원 교수님께서는 ‘화학약품을 다루었냐’는 질문을 하셨으며, 주위에 유산을 경험한 동료도 있었고, 병이 나기 몇 달 전 생리불순은 물론 하혈을 하여 방진복에 피가 묻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4조 3교대가 원칙이지만 사실상 2교대 근무에 2주 연장 야간 일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피로가 누적되고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면역력이 저하되고 방사선과 화학약품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업무상 질병으로 충분히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산업재해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향후 5년을 바라봐야 완치가 되는 병이라고 하는데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떨며 살아가야 하고 재발이 되기라도 한다면 더 이상 치료할 비용도 없을 뿐더러 밥벌이도 못하고 이대로 병원비, 약값으로 엄마가 식당일로 벌어오는 생활비를 다 쓰기만 한다면 생계유지가 안 될 것 같고,  살 수가 없을 것 같아 아프고 불편한 몸 이끌고 답답한 마음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더 이상 저와 같은 병에 걸리는 사람이 나오지 않길 바라며 앞으로 제가 병원비, 생활비 걱정만은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근로복지공단은 치료비 보상과 생존권 보장을 마땅히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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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 진술을 마친 유족. 평택지사 자문의사협의회에서 피해자 진술을 마치고 내려온 유족이 내부 상황을 이야기 하고 있다. ⓒ 이현정





# 피해자 작업환경 한 번 본적 없는 자문의가 생사 결정


자문의사협의회가 열리는 동안 반올림(반도체 노동자 건강과 인권 지킴이)은 평택지사에서, 삼성백혈병충남대책위는 천안지사에서 각각 기자회견을 개최하였다. 반올림은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들이 입사할 당시 건강상태가 양호하였고 가족력에서도 백혈병은 물론 비슷한 질환의 병력도 없었다.”면서 “같은 사업장 인접 부서에서 백혈병과 림프종 등 림프조혈기계 암 환자가 다수 존재하고 작업환경 상 백혈병 유발원인 존재 가능성을 추정할만한 근거가 충분하다.”면서 산재인정을 촉구하였다.


반올림은 특히 이미 피해자들의 산재인정을 판정하는데 왜 자문의사협의회를 개최하는 지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며 공단을 비판했다. 반올림은 “직접 진찰과 치료는커녕 얼굴 한번 본 적 없고, 반도체 공정을 잘 모르는 자문의사가 몇 시간 만에 서류 몇 장 읽고 업무 관련성을 평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면 “자문의사가 판정할 안건은 피해자 다섯 명의 단순한 산재승인 여부를 떠나 사회보장제도인 산재보험 이름으로 다섯 노동자와 가족의 생존권과 인권을 보장할 것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이라며 자문의사의 책임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에도 결과는 불승인이었다. 공단으로부터 서류상으로 통보가 오진 않았지만 반올림이 확인해본 결과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기 곤란하므로 불승인 결정에 이르렀다.”고 공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상 불승인 결정에 심사청구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평택지사 자문의사협의회에는 혈액내과 전문의 4명와 산업의학 전문의 1명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천안지사에는 故황유미, 이숙영 씨 주치의였던 아주대병원 혈액내과 전문의 박준성 교수가 참가하여 피해자의 작업관련성을 설명하였다. 




천안지사 자문의사협의회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피해자 김옥이 씨 진술
ⓒ 이현정

지금 저는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어야 합니다. 일하고 싶습니다. 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저 때문에 가정 경제가 파탄이 오고, 가족들이 힘이 듭니다. 이제는 검사비 조차도 힘듭니다. 의료보험도 안 되는 검사가 너무 많습니다. 왜 제가, 제 남편이, 아이들이 고통당해야 합니까?


저는 억울합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회사를 위해 일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잘 했습니다. 그 대가가 백혈병입니까? 이런 제가 치료비가 없어서 죽어야 합니까?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계시지요? 백혈병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운 병인지… 고액의 치료비가 드는지… 백혈병 환자는 병원에 1~2천만원 정도의 예탁금을 걸지 않으면 입원조차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제가 의사선생님들께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10년 전 제가 일했던 환경이나 자료에 대해 다 보셨는지요? 얼마나 알고 계시고 충분히 검토하셨는지요? 제가 일했던 현장에 한번이라도 가보셨는지요? 피해자인 저에게 사전에 질문 하나라도 하셨는지요? 그러고도 이 자리에서 승인여부를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제 질문에 의사로써 부끄럼 없이 대답하신다면 선생님들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1년 넘게 전문가들이 역학조사를 했고, 그 결과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선생님들이 며칠, 몇장의 자료만으로 어떻게 결정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문제가 선생님들의 가족이라도 이렇게 처리하겠습니까? 환자들의 고통과 아픔과 고액의 치료비 현실을 누구보다도 옆에서 보시는 선생님들 아닙니까?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우는 공기관에 명예를 팔고, 양심을 파는 선생님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피해자들은 계속해서 나옵니다. 제가 작년 4월에 산재신청 할 때만해도 저 혼자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저와 함께 일했던 동료 중 2명의 피해자가 더 나왔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죽고, 고통당해야 합니까?


이런 상황 속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자문의사협의회를 열고, 역학조사 자료를 왜 공개하지 않는지, 최소한 당연히 당사자에게 만이라도 공개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당사자 김옥이가 죽었습니까? 장님이라서 못 봐서 안보여줍니까? 저는 지금이라도 제 권리를 찾겠습니다. 역학조사 자료를 지금 공개하든지, 공개하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박지연 씨가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하나입니다. 살고 싶다는 거, 치료비가 없어서 치료 못 받고 죽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이런 마음, 이런 현실 여러분들은 아시나요? 그런데 제가 더 분하고 화가 나는 건 지금 앞에 계신 의사선생님들의 몇 글자에 나의 모든 걸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승인은 나에게, 지연 씨에게, 죽으라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사형선고 받으러 이 자리에 나와 앉아 있습니다. 이 심정 짐작이나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