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까지는 운전대 잡아야 하는데 건강은 무슨…

by 일과건강 posted Mar 10, 201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이 기사는 3월 10일(수) 시작한 화물운송노동자 무료건강검진 사업 내용입니다. 무료건강검진사업은 앞으로 열흘동안 휴게소에 이동 검진센터를 차려 진행합니다. 기사와 사진을 인용하실 때는 출처를 밝혀주세요.




c_20090311_670_1384.jpg

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오전 11시 무료건강검진사업 기획의도와 계획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 이현정





장거리 심야 운전, 부족한 휴식으로 건강 챙기기 힘들다


“무슨 병이 있을까봐 검진을 못 한다.”

화물운송노동자 길거리 무료건강검진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장거리 운전, 심야운전, 부족한 휴식시간, 매연 및 분진에 상시노출, 좁은 운전석에서의 운전과 수면 등으로 몸에 이상이 있음은 느낀다는 화물운전노동자. 하지만 이들은 건강보험공단에서 나오는 일반건강검진을 받으려면 최소 이틀은 ‘공’치기 때문에 검진을 받으러 가기 쉽지 않다.


이런 노동자들의 사정을 아는 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녹색병원?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화물운송노동자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길거리 무료건강검진을 기획해 3월 10일(수) 인천지부부터 시작했다. 이날 운수노조는 화물운송노동자 집단 건강검진 실시 기자회견을 열고 검진사업 시작 일을 “아주 소중한 발걸음을 내딛는 날”이라고 평했다.


“장거리 운전에 일감을 놓고 건강검진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노조 표현대로 화물운송노동자는 건강검진을 포기하고 살아왔다. 그래서 건강에 위협을 받고 그 위협이 노동환경에서 왔지만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태이다. 이에 노조는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화물운송노동자가 휴식을 취하는 휴게소로 직접 찾아가는 검진을 실시하게 된 것이다. 운수노조는 검진결과가 나오면 화물운송노동자가 노동자로서 받아야 할 당연한 사회적 보호와 권리를 주장할 계획이다.




70 넘어도 힘 있으면 운전대 잡아
무료건강검진에 임하는 화물운송노동자들. 설문 작성을 마치면 키, 시력, 혈액 체취, X-레이, 심박동 변이 검사, 의사면담을 순서대로 진행한다. ⓒ 이현정

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오승석 수석부본부장 인터뷰


Q : 화물운송노동자들이 실제 건강검진을 많이 못 받는가? 
A : 화물운송노동자는 약 97%가 지입차주라서 건강검진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또, 경제가 안 좋아지면서 곧 쓰러져 죽어도 일이 있으면 운전을 한다. 일을 쫓아다니는 형국이다. 나 역시도 장이 탈났을 때와 차에서 떨어져 병원에 간 것 외에는 일부러 건강을 확인하려고 간적이 없다.


Q : 화물노동자 노동환경은 어떤지?
A : 대부분 장거리 운전이다. 낮에 짐 싣고 밤에 운전해 오전 8시까지 배송을 완료한다. 피곤하다 보니까 빨리 가려는 마음에 과속도 하게 된다. 화물운송노동자는 차와 차끼리의 직접 충돌은 거의 없다. 가다 혼자 사고가 난다. 뇌심질환을 의심하는데, 운전하는 도중에 그럴 수 있는 환경이다.


Q : 이번 무료검진사업 기획이유는 무엇인가? 
A : 90년대 초반만해도 지입차주도 산재보험이 적용되었다. 사업주랑 50:50으로. IMF 이후부터 회사도 산재보험을 내지 않았고 화물운송노동자도 경제적인 이유로 내지 못했다. 그런데, 사고로 병원 신세를 지면 차 할부에 생계, 치료비에… 많이 어렵다. 이번 검진으로 화물운송노동자에게도 사회제도를 적용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화물운송노동자는 지입차주지만 사업주 지시와 통제를 받는다.


지입차주란?
화물운송업이 허가제로 운영되던 시절에 화물차 운전기사들은 직영으로 고용된 노동자였다. 그러나 98년 화물운송업 진입규제가 풀리면서 시·군·구청에 등록만 하면 되는 신고제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화물운송 노동자 대다수(약 97%)는 ‘지입차주’라는 특수고용 비정규직 신세로 전락한다. 차량을 현물출자하는 방식, 즉 지입차주로 존재가 뒤바뀐 것이다. 일감을 따려면 어쩔 수 없었다. 화물운송 노동자들은 지입차주란 허울을 걸치고 있지만 차량 주인이면서도 소유권을 전혀 행사하지 못한다. 차량 명의가 회사 앞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한겨레 21, 458호 기사에서)





c_20090311_670_1385.jpg

모든 검진을 마치면 산업의학전문의를 만나 진료를 받는다. ⓒ 이현정




찾아가는 검진, 비용은 무료!


길거리 화물운송노동자 무료 건강검진은 고혈압, 당뇨, 간장질환, 고지혈증, 흉부질환 등을 판단할 수 있는 일반건강검진에 뇌심혈관계질환 위험도를 평가하는 심박동 변이검사, 정신건강을 심층분석하는 설문조사도 진행된다. 검진비용은 무료이다.


이번 사업에는 운수노조 노동안전보건국과 녹색병원 건강검진센터,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의학실 약 10여 명이 한 팀으로 이뤄져 10일 동안 화물운송노동자가 모이는 휴게소를 찾아가 검진에 임한다. 연구소 윤간우 산업의학 전문의는 “10일 동안 약 1천여 명 검진을 목표로 실제 어떤 질병이 있는 지 구체 확인이 되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것 같아 검진 회피

이재준 노동자가 심박동 변이검사 중이다. 이 검사는 뇌심혈관계질환 위험도를 평가하기 위함이다. ⓒ 이현정

이날 화물운송노동자 무료건강검진에 참여한 경력 20년의 이재준 노동자는 건강검진을 딱 두 번 했다. 그 두 번은2007년에 화물연대에서 한 검진과 3월 10일 시작한 이번 검진이다. 이재준 씨는 “걱정은 많이 하면서도 모르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건강검진을 회피해 왔다.


그는 “야간에만 운전하는데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체력이 많이 떨어진다.”면서도 “쉬고 싶어도 쉴 수 없으니까 죽기 전까지는 운전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역시 경제적 이유였다. 사고로 다쳐도 쉴 수 없는 사람이 많다는 이재준 씨는 깁스를 하고도 운전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래서 산재보험 적용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산재보험 적용을 받으면 적어도 다친 기간 동안 제대로 치료도 받고 일을 못하는 기간은 적은 금액이나마 휴업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검진은 화물운송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하는 휴게소에 천막과 버스로 진료소를 차리고 진행된다. 이날도 화물연대본부 인천지부 앞에 천막 2동과 버스 2대를 동원해 검진을 했다. 뒤로는 컨테이너가 가득했고 사거리에는 연신 화물운송차들이 속도를 내 달렸다.


천막과 버스를 이용한 이동검진소가 앞으로 9번 더 있다. 검진에 함께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아프지 말고 무사하게 검진을 마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