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의 짧은 기간 동안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큰 것을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제가 얼마나 멍청한지 깨달았습니다. 일본에 가서야 한국을 알겠더군요. 3회에 걸쳐서 일본방문기를 소개합니다. <김신범>
지난 해 말에 원진직업병관리재단 박현서 이사장님으로부터 일본에 같이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이사장님께서 그간 일본과 맺어온 인연을 소개해주고 싶다는 말씀이셨다.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진짜로 이렇게 가게 될 줄은 몰랐다.
간또고신에스(關東甲信越)는 도쿄를 중심으로 한 관동지역과 고슈, 신슈, 에슈 지역을 묶은 일본 중부 블록을 뜻한다고 한다. 이렇게 묶인 지역의 교류회라고 할 수 있다. 관동지역에는 동경도, 가나가와현, 사이따마현, 도지기현, 군마현, 이바라기현, 지바현 등이 속해있다. 고슈는 야마나시현, 신슈는 나가노현, 에슈는 후꾸이현이 있다. 일본에는 이러한 블록이 더 있다. 관서블록, 큐슈블록, 홋카이도블록이다. 그리고 안전보건 운동 조직인 「일하는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전국센터(이하 이노껭전국센터)」의 지역조직들이 각 지역별로 결성되어 있다.
그러니 이번 간또고신에스학습교류집회는 일본중부 블록의 이노껭전국센터의 교류집회인 셈이다. 이렇게 중부블록으로 교류를 시작한 것은 이번이 8회째이다. 사실, 안전보건 운동의 역사로는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관서지역이 더 유명하다고 한다. 관서지역에서는 작년에 이노껭센터 50주년 행사를 했다고 한다. 도쿄는 그에 비해 좀 늦게 시작했다. 도쿄의 가나가와 현 센터가 40주년 되었다고 한다.
2월 20일 금요일 오전 9시경에 인천국제공항에서 박현서 이사장님을 만났고, 11시 조금 넘어서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본에 도착해서 전철을 세 번 정도 갈아타고서 숙소에 도착했다. 오후 네 시. 도쿠야마 토오루라는 좋은 인연을 얻게 된 첫째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람들에 대한 얘기는 두 번째 글에서 소개하자. 일본방문기 첫 번째 글에서는 이번 집회의 내용과 진행과정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집회는 아타미(熱海)라는 온천지역의 한 호텔에서 열렸다. 13시부터 집회가 시작되는데 동경에서 신간선을 타고 아타미역에 내려 호텔까지 걸어갔다. 12시 30분에 도착했다. 우리가 메일로 보낸 자료가 자료집에 들어있고, 발표순서가 정해져있는 것을 먼저 확인했다. 참석인원을 물어보니 총 160명이 참석하였다고 한다. 참석자들 중에는 의사나 변호사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지역센터 상근자, 활동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었다. 특이한 것은 노동조합 활동가도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의 노동조합운동의 모습이 반영된 탓이다.
전체회의가 시작되었다.
13시 정각 주최측인 이노껭(일하는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전국센터) 가나가와현센터의 사무국장 기쿠타니 세쓰오씨의 환영인사로 시작했다. 곧이어 전노련 가나가와현 위원장이 인사말을 전했다. 그리고 “무너지는 현장”이라는 주제로 사세야마 나오또(笹山尙人) 변호사의 특별강연이 시작되었다. 성희롱과 폭력의 문제를 노동안전위생의 측면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이며, 성희롱의 문제점과 사례, 해결법에 대해 들려주었다.
사세야마 나오또 변호사의 특별강연 "무너지는 현장"
한시간 반 정도 특강이 끝나고서 특별보고 시간이 이어졌다. 수도권 건설석면의 소송대응과정에 대한 보고, 이노껭 이바라기현 센터의 건설과정 보고에 뒤이어 내가 한국의 노동재해현황에 대한 보고를 발표하였다. 한국의 왜곡된 산재통계를 일본인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표와 그림으로 준비하였는데 일본의 동지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일본이나 우리나 비정규직의 산업재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 때문에 많은 공감대가 형성된 듯하다.
제8회 간또고신에스학습교류회 1박 2일 프로그램 |
<첫째날> <둘째날> |
한국의 산업재해 상황을 설명하는 필자와 박현서 이사장
뒤이어 분과회의가 시작되었다. 분과는 총 여섯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분과회 |
테마 |
조언자 |
제1 |
직장에 도움되는 안전위생위원회 활동 |
角入則夫氏 (사이따마센터이사) |
제2 |
과로성 질병의 인정, 보상, 재판투쟁의 도달점과 그 대응방법 교류 |
提浩一郞변호사 (요코하마미나미법률사무소) |
제3 |
교직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대응전략 |
高橋信一氏 (전일본교직원연합중앙집행위원) |
제4 |
마음의 병 예방과 피해자의 직장복귀 |
岩田 俊 의사 (멘탈클리닉) |
제5 |
진폐, 석면 문제의 대응방법 |
藤井正實 의사 (시바병원원장) |
제6 |
의료노동자의 작업환경에 대하여 |
阿部眞雄 의사 (나스메사까 진료소소장) |
먼저, 제1분과에 참여해보았다. 일본의 현장 노동안전보건활동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분위기는 약간 침체되어 있다고나 할까. 제조업 보다는 시청 공무원, 장애인학교 교사 등의 노동자들이 사업장에서 안전위생위원회(우리나라의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조직한 경험을 나누고 있었다. 이건 우리나라가 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제1분과의 회의모습
첫째날 분과회의를 마치기 전에 제6분과로 빨리 자리를 옮겼다. 의료노동자와 관련하여 어떤 얘기들이 오가는지 알고 싶었으나, 너무 늦게 가는 바람에 알 수는 없었다. 다만, 내가 최근에 궁금했던 사항을 물어볼 수 있었다. 수술실과 내시경실에서 사용하는 포름알데히드라는 발암물질을 일본에서도 사용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 이 발암물질을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하지는 않았는지 물어보았다. 고개를 갸우뚱한다. 안전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이 없다는 답이다. 나는 몇해 전 일본의 사업장을 방문해 본 적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 안전하게 사용한다고 할 경우 진짜로 안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발암물질은 가급적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의 친구들은 생각이 다를 수도 있었다. 두 번째 질문을 하였다. 우리나라는 여성방사선사가 임신을 앞두고서 병원을 그만두는 것이 관례적인데, 일본은 어떤가 하는 질문이었다. 일본에서는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생각할 수 없으며, 노출이 되지 않는 사무직 업무만 보거나 간혹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보호구를 착용하여 대책을 세운다고 한다. 업무전환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확인한 셈이다.
제6분과 회의 모습
이날 밤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이노켄 야마나시센터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호사카 다다시씨는 뒤풀이 시간에 박현서 이사장과 나를 소개하면서 원진레이온 직업병 인정투쟁에 대해 참석자들에게 한참을 설명했다.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지만, 나중에 소개하자.
다음날 아침에는 제2분과에 참석했다. 제2분과는 준비자료도 많았고, 회의도 다른 분과보다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주제 자체가 가장 관심있고, 오래된 주제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제2분과의 주제는 "과로성 질병의 인정, 보상, 재판투쟁의 도달점과 그 대응방법 교류'이다. 분과회의는 좌장과 조언자가 이끈다. 조언자는 분과의 주제에 따라서 전문가나 경험이 풍부한 활동가가 맡는 것 같다. 주제가 과로사인만큼 조언자는 요코하마 미나미법률사무소의 변호사가 맡았다. 좌장은 사회이고, 조언자는 중요한 지점을 정리하고 의미를 해석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참석자들은 경험을 얘기하고 서로 질문했으며, 잘 정리가 안되는 것은 좌장과 사회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제2분과회 과로성 질병의 인정, 보상, 재판투쟁의 도달점과 그 대응방법 교류 |
조언자 : 提 浩一郞 변호사(요코하마미나미법률사무소) <프로그램> |
제2분과 회의모습
제2분과회의는 진정으로 경험과 방법을 나누는 공간이었다. 그것은 제2분과 회의가 준비한 아래의 자료들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노동부 및 산재심사기구와 법원을 상대로한 투쟁방법을 세세히 매뉴얼로 제공하고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제2분과회의에서 준비한 자료들 |
1. 1년간의 투쟁의 전진 2. 提 浩一郞 변호사 “사상까재판, 다까라꼬야마 사건”의 성과와 교훈 3. 提 浩一郞 변호사 “노재직업병사건에서 배운 것” 4. 3번자료의 속편 전국센터-「일하는 사람의 생명과 건강」 5. 동경사회의학연구소에서 발간한 「일하는 사람의 건강」 ① 국립순환기질병센터 - 무라까미 유우꼬 과로사 승리판결(간호사의 과로사) ② 치바현 덤프트럭 운전수 뇌출혈, 과로장애가 노동재해보험심사에서 승리 ③ 가나가와현 플라이스공 요시히로상의 과로장애 노동재해 승인 ④ 나가노현 세이꼬엡손회사의 직원 이누까이 동경 고등법원에서 역전 승리 ⑤ 시즈오까현 소학교 교사 과로자살 동경고등법원에서 역전 승리 판결 ⑥ 삿뽀로 고등법원에서 북양은행 과로사 승리 판결 ⑦ 나고야 지방법원에서 도요타자동차(우치노 공장) 과로사 승리 판결 ⑧ 나고야 고등법원에서 중부전력에서 발생한 폭력피해 승리 판결 ⑨ 나고야 지방법원에서 대기업약국의 체인점에서 근무하는 스기야마씨 과로사 사건 승리 판결 6. 노동기준감독국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과로자살을 법정투쟁으로 승리하기 위한 매뉴얼 7. 정보공개를 얻어낸 노하우 소개 8. 투쟁사례보고 ① 지부심사회에서 승리, 니이가따현 직원 오오바시씨의 과로자살 사건 ② JR 와따나베 다쓰미씨의 대법원 상고 ③ 동경고등법원에서 오꾸노 도미시게씨의 과로사 인정 ④ 야마가따현, 공무재해인정은 본부심사회와 행정재판으로 이관 9. 과로사, 과로자살의 노재인정 추이 10. 야마나시현 ‘과로사와 노재문제를 생각하는 모임’이 다루어온 사례 11. 작년의 제7회 집회의 제2분과회 개략 보고 |
제2분과회의 좌장(오른쪽)과 조언자
일본의 과로사 운동은 우리나라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과거 1990년대 후반에 노동과건강연구회 안에 과로사상담센터를 만든 것도 한일간의 교류로 인한 성과였다. 하지만, 일본의 과로사 수준이 우리나라보다 높은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일본의 환자수보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심혈관계질환에 의한 사망자수가 더 많아 보인다. 대신 일본에서는 과로의 개념을 폭넓게 정립하였으며, 과로로 인한 심혈관계질환 뿐 아니라 스트레스와 정신질환, 자살, 그리고 근골격계질환까지 포괄하는 운동적 '개념'을 사회적으로 형성했다는 느낌이 든다. 체계가 잡혀있다고 할 수 있겠다.
년도 |
과로장애 |
정신장애 | ||||
청구건수 |
인정건수 |
인정된 건수 중 과로사 |
청구건수 |
인정건수 |
인정된 건수 중 과로자살 | |
1992 |
458 |
18 |
|
2 |
2 |
0 |
1993 |
380 |
31 |
|
7 |
0 |
0 |
1994 |
405 |
32 |
|
13 |
0 |
0 |
1995 |
558 |
76 |
|
13 |
1 |
0 |
1996 |
578 |
78 |
36 |
18 |
2 |
1 |
1997 |
539 |
73 |
47 |
41 |
2 |
2 |
1998 |
466 |
90 |
49 |
42 |
4 |
3 |
1999 |
493 |
81 |
48 |
155 |
14 |
11 |
2000 |
617 |
85 |
45 |
212 |
36 |
19 |
2001 |
690 |
143 |
58 |
265 |
70 |
31 |
2002 |
819 |
317 |
160 |
341 |
100 |
43 |
2003 |
705 |
312 |
157 |
438 |
108 |
40 |
2004 |
816 |
294 |
150 |
524 |
130 |
45 |
2005 |
869 |
330 |
157 |
656 |
127 |
42 |
2006 |
938 |
355 |
147 |
819 |
205 |
66 |
2007 |
931 |
392 |
142 |
952 |
268 |
81 |
일본의 과로사 피해 가족
일본말을 알아들을리 없는 내가 조금씩 회의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의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위의 사진이 첫번째로 내가 알아본 피해자들이었다. 나는 이 때부터 한국과 일본의 운동모델에 대해 비교하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 얘기는 두 번째 방문기로 미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