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60년대 시설 70년대 노동환경, 무조건 견뎌?

by 일과건강 posted Mar 1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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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일과건강 2008년 12월호 '현장에서' 꼭지의 하나 입니다. 기사와 사진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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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작업환경 실태를 알린 세림산업지부 선전물 ⓒ 교육센터




너무나 뜨거워 견딜 수 없다

충남 홍성의 세림산업 노동자들을 한 번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11월 9일 전국노동자대회 때 받은 한 유인물 때문이었다. 안전화, 작업복도 없이 먼지와 고열을 견디며 일하지만 월급은 최저임금뿐이라는 글은 자욱한 먼지와 딱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양변기나 세면대를 제각각의 반팔 옷차림을 한 여성노동자 둘이 옮기는 사진은 ‘세상에…’ 그 자체였다.

노동조합 인정과 정리해고 철회, 작업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며 6개월째 투쟁 중인 이들을 공장 옆 컨테이너에서 방에서 만났다. 아침 집회를 마치고 모인 노동자들 대부분은 여성이었다. 열악한 작업환경, 법에 저촉되지 않을 만큼의 임금, 관리자들의 비인격적 대우 등 많은 이야기 속에 가장 많이 나온 내용은 ‘뜨거운’ 일터였다.

세림산업은 양변기, 세면대, 탱크(양변기 뒤의 물통)를 생산하는 곳이라 고열작업이 필요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다고 한다.


“동종 업체에 가봤는데 거기는 먼지도 거의 없고 일하는 사람이 땀에 젖지 않았다. 세림은 사우나다. 온도가 4~50도 되는데, 작업시작 5분도 안 돼 살기위해 창문 쪽으로 뛰어간다. (너무 뜨거워) 탈진해서 쓰러진 사람도 있다.” 뜨거우니 땀이 많이 나서 물을 많이 마셔야 하지만 제대로 된 물이 공급되는 것도 아니란다. 공정상 고열이 필수이지만 고열로부터 작업자를 배려한 조처는 어디에도 없다. “땀띠는 기본” “옷을 짜면 물이 나올 정도”였지만 상황을 견기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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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을 넘긴 세림산업 노동자들의 투쟁. 투쟁 장기화로 생계 곤란을 겪는 이도 생겼다. ⓒ 이현정



일하다 다친 것은 ‘개인 사정’

고열 외에도 소음, 먼지, 힘으로 중량물 이동, 쥐가 나오는 탈의실 등 전반의 작업환경이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일을 시킬 수가 있는지’ 자체가 의문이었다. 임경아 씨는 “(너무 시끄러워) 라디오를 켤 수도 없고 3~40m 거리도 소리를 꽥꽥 질러야 하고 가래를 뱄으면 흙이 나온다.”고 밝혔다. 2007년 7월에 입사했다는 박경숙 씨는 처음 일하러 갔을 때 현장 모습을 “먼지가 너무 많아 자욱한 안개가 낀 것 같았다.”고 표현하며 “원래 현장이 이런가보다.” 했단다. 문제는 이런 작업환경에서 제대로 된 마스크 지급도 안 되는데 그나마 지급된 1회용 마스크도 교체회수가 적다. 마스크 교체를 얘기하면 관리자로부터 “왜 이렇게 마스크를 많이 쓰냐?”는 핀잔이 날아왔다.

작업환경측정을 할 텐데 그럴 때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느냐고 했더니 돌아오는 답은 이랬다. 측정 나오기 일주일 전부터 먼지가 안 나게 물청소를 하고 작업화와 마스크를 나눠준다. 분진 측정은 흡입구를 휴지로 막고 측정기를 단 사람은 일을 안 시킨다. 투쟁 과정에서 열악한 작업환경을 노동지청에 이야기했지만 불시에 오지 않고 사전에 고지하고 근로감독을 나오니 무용지물이었다고 한다.

작업환경이 열악하니 사고나 직업병이 없을 리가 없었다. 산업재해에 대처하는 회사 반응은 ‘그것은 당신 사정’이었다. 이곳에서 17년을 일했다는 박성자 씨는 “(일하다) 허리 디스크가 생겼지만 (회사는) 더 힘든 일만 시켰다.”며 허리고통을 호소하면 회사는 개인사정이라며 외면했고 의료보험으로 치료를 했다고 전했다.


가운데 손가락이 부러져 병가를 한 달 낸 노동자는 나와서 일하라는 회사 독촉에 일을 하다 결국 손가락을 아예 못쓰게 되었다. 지혈이 필요할 정도의 사고도 까만 테이프를 붙이고 다시 일한다. 자동화된 동종업체의 성형부 생산량이 하루 40개인데 자동화가 안 된 세림은 60개이다. 중량물을 사람 힘으로 옮기다보니 근골격계질환이 비켜갈리 없다. 하지만 이 역시 ‘당신 사정’이다. 전온규 부지부장은 노동자들이 어깨, 허리 안 아픈 곳이 없어 월급 대부분이 병원비로 나갈 정도라고 밝혔다.

지게차에 깔리거나 탱크 통에 맞아 사망한 노동자가 있었지만 산재로 처리되지 않았다. 한 조합원이 “쌓아둔 생산물이 떨어진 적이 있었는데 관리자가 사람이 다쳤나 안 다쳤나 보는 게 아니라 멀리서 “어이구, 사람하나 죽었네.” 한다.”며 어이없는 표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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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들은 함께 점심 식사하는 것으로 오전 일정을 마무리 한다. 각자 추렴해 마련되는 식사 질은 회사의 그것보다 훨씬 좋다고 말했다. ⓒ 이현정



12시간 꼬박 일해도 최저임금

이렇게 일했지만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급여는 법정 최저임금에 맞춘 일당이었다. 새벽 5시, 6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꼬박 12시간을 일하는데 10년을 일한 사람이나 1년 된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80만원 정도이다. 잔업을 해도 100만원 넘기가 쉽지 않다. 세림만의 독특한 계산법도 있다. 명절 때 일을 하면 휴일노동에 맞는 수당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떡해서든 평일 임금으로 조절한다. 평일에 하루 일을 안 하고 토요일에 특근을 하면 이를 수요일에 일한 걸로 치는 셈법도 있다. 임경아 씨는 쉬는 날 일해도 평일 임금 받는 거 따지면 최저임금보다 못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홍성은 공장이 별로 없어 세림산업이 두 번째로 큰 제조업체라고 한다. 축산업 위주의 지역경제가 구제역과 광우병으로 무너지자 돈을 벌기 위해 갈만한 곳이 없거나 배운 게 이것뿐이었던 지역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이곳을 다녔다.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고자 노동조합을 만들었지만 돌아온 것은 예의 휴업, 직장폐쇄, 정리해고와 노동조합 탄압이었다. 전 직원이 조합원으로 가입했던 초기에 비해 지금은 조합원도 줄었고 그 중 절반은 정리해고 되었다. 장기투쟁으로 가자 각 가정의 경제사정도 어려워져 밤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과수원에 사과를 따는 일용직을 나가기도 한다. 그래도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환경을 위해’ 세림산업 노동자들은 회사와 정부를 상대로 싸울 것이라고 한다. 21세기에 60년대 시설에서 ‘야!’ ‘아줌마!’로 불리는 자신들이 노동자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해서이다.

지금 MB정부와 한나라당은 부자와 재벌 살리기 총력에 나섰다. 그들이 총력을 다할 곳은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서민’, 노동자의 고통을 해결하고 어루만지는 것이다. 노동부가 노동자를 위한 건지 사업주를 위한 건지 모르겠다는 세림산업 노동자들의 힘겨울 겨울나기가 어서 끝났으면 좋겠다.